스리랑카에서 부르는 '클레멘타인'

[김해성 목사 현지보고 ②] 쓰나미 때문에 노모-자녀 잃은 어부

등록 2005.01.14 00:58수정 2005.01.1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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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 없는 지진해일(쓰나미)로 남아시아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 중 스리랑카는 1만3천여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을 정도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번 재난 복구에 힘을 보태기 위해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스리랑카에 머물렀던 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인 김해성 목사가 <오마이뉴스>에 두번째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a 콜롬보 해변의 폐허가 된 가옥. 지붕도 모두 날라가고 두 벽만 남았다.

콜롬보 해변의 폐허가 된 가옥. 지붕도 모두 날라가고 두 벽만 남았다. ⓒ 김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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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성 목사-현지보고①] 시신 확인하는 가족도 없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딜 가느냐?


이번 지진과 해일 참사 이후 스리랑카의 '길티'라는 형제가 연락을 해 왔다. 탕갈레(스리랑카 남부 해안 지역)가 고향이고 해변에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누나 가족, 사촌형 가족, 사촌동생 가족의 생사가 불명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눈물의 호소였다.

그래서 스리랑카 방문의 첫번째 진료 지역을 탕갈레의 난민수용소로 미리 점 찍어 놓고 답사를 겸해서 먼저 길티의 사촌동생 가족을 찾게 나서게 됐다.

지난 5일 물어 물어 찾아 간 탕갈레에는 해일이 온통 쓸고 간 곳으로 집터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근처의 난민 수용소에서 금방 사촌동생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바짝 야윈 모습으로 피골이 상접한 채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눈의 초점을 모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우리를 소개했지만 그저 고개만 끄떡인다. 사고 이후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기력도 전혀 없고 밥을 입에 넣고 싶지 않다고 했다. 길티의 사촌 동생 서짓 꾸마라는 힘 없는 걸음으로 우리를 현장으로 안내했다.

서른살의 어부 서짓 꾸마라, 모든 것을 잃다


a 망연자실해 있는 서짓 꾸마라 부부. 이들은 이번 쓰나미로 어머니와 아들·딸을 잃었다.

망연자실해 있는 서짓 꾸마라 부부. 이들은 이번 쓰나미로 어머니와 아들·딸을 잃었다. ⓒ 김해성

서짓 꾸마라는 올해 서른살로 바닷가에 사는 어부다. 할아버지도 어부였고, 아버지도 어부여서 자기도 어부가 됐다. 어쩔 수 없이 운명지어진 어부지만 그래도 바다가 좋아서 바다와 벗하며 살았다. 아버지는 바닷가에 파도 끝자락이 닿을 듯 말 듯한 곳에 집을 지었다. 그동안 지진이나 해일은 경험하지 못했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보지도 못했다.

쉼 없이 밀려 오는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고 처마 밑까지 찾아와 두들기는 파소 소리에 잠이 깼다. 아버지는 바다에서 잡은 고기로 자식들을 길렀으며 붉은 벽돌을 사서 야자 나무 사이 모래 사장 위에 집을 지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들인 서짓 꾸마라가 대물림해 홀로 된 어머니와 아들, 딸을 데리고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사고가 나던 지난 12월 26일 물고기를 잡고 집에 돌아온 서짓 꾸마라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고기도 내리지 않고 먼저 아이들부터 끌어안았다.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 주던 것으로 언제부턴가 자신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어쩌면 바다 속 죽음의 자리를 헤치고 나와 사랑하는 자식들을 다시 만났다는 감격일 수도 있다. 그때 갑자기 아내 싸미라가 다급하게 외쳤다.

"여보, 이상해요. 저기를 보세요. 바다가 이상해졌어요."

아내의 손끝을 따라 눈길이 닿는 그곳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높이의 물길이 달려 오고 있었다. 그것은 26일 스리랑카를 덮친 두차례의 해일 중 조금 작은 첫번째 해일이었다.

a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인근 해변 모습. 그야말로 폐허가 됐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인근 해변 모습. 그야말로 폐허가 됐다. ⓒ 김해성

서짓 꾸마라는 "처남을 빨리 데려와. 어서! 고기를 내려야 돼"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아내가 처남을 부르러 간 사이 물이 빠른 속도로 빠져 나갔다. 난생 처음 겪는 상황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는 사이 다시금 나무 만큼이나 높은 두번째 해일이 밀어닥쳤다.

꾸마라가 뒤돌아 보는 동시에 뒤쪽에 있는 두살배기 딸 싸하르와 여동생의 딸인 여조카가 순식간에 휩쓸려 솟구쳐 올랐다. 꾸마라 가까이 있던 어머니는 손자를 끌어 안고 거의 동시에 솟구쳐 올랐다. 물살에 휩쓸려 떠올랐던 꾸마라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는 키 큰 야자나무의 높은 부분을 붙잡을 수 있었다.

꾸마라의 옆에는 손자를 안은 어머니가 떠 있었고 그는 한 손을 내밀어 아들을 안은 어머니의 손을 잡아 끌었다. 한 손으로는 야자나무를 잡고 한손으로는 노모의 손을 잡고 사투를 벌이던 중 꾸마라의 손에는 힘이 점점 빠졌다. 그리고 끝내는 어머니를 잡은 손을 놓치고 말았다.

오늘이 죽은 딸의 생일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눈앞에서 그렇게 물속으로 빠져 들었다. 얼마 후 물이 빠지고 나무에서 내려와 여기저기를 둘러 보다가 철조망 사이에 끼인 채 누워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여기가 어머니가 죽어 있던 자리입니다. 서둘러 인공 호흡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꾸마라는 열댓걸음을 옮겼다.

"이 나무 아래에 딸과 조카가 죽어 있었습니다. 저기에서는 아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꾸마라는 여전히 푸르는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저 나뭇가지에 걸린 파란 옷이 내 아들이 입던 옷입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침묵하던 그가 다시 우리를 바닷가 쪽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빨간 벽돌만이 흩어져 있었다. 이곳이 자신의 집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몇 걸음 옮겨 집터 안으로 들어가자 꾸마라는 가방 하나를 가리켰다.

"아들 녀석이 매일 학교에 메고 다니던 책가방이지요."

a 꾸마라는 딸이 좋아하던 인형을 집어 들고 망연자실했다.

꾸마라는 딸이 좋아하던 인형을 집어 들고 망연자실했다. ⓒ 김해성

그는 허리를 굽혀 헝겊으로 만들어진 기린 인형 하나를 주워들었다.

"딸아이가 아주 좋아하던 인형입니다. 매일 잠 잘 때도 끌어안고 있었지요. 사실은 오늘이 죽은 딸의 생일입니다. 그 딸이 보고 싶은데…."

꾸마라는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 말을 듣는 나도 눈물이 쏟아져 나와 나무 뒤로 숨어 뒤돌아 서서 울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그는 먼 하늘만 맥없이 쳐다 보았습니다.

"아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차마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밥 한번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죽을 수도 없습니다. 아내는 지금 임신중이구요. 얼마 있으면 출산하게 되는데 어디에서 몸을 풀어야 할지…."

꾸마라는 또 다시 말끝을 흐렸다. 서짓 꾸마라는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과 딸을 잃었다. 그리고 집도, 배도 잃었다. 그는 눈물도 잃었고 희망도 잃었다. 어느 누가 그의 눈에 눈물이라도 흘릴 기력을 줄 수 있을까? 늦은 밤 스리랑카의 하늘 밑에서 나는 다시금 조용하게 노래를 불렀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딜 가느냐?

덧붙이는 글 | 후원하실 분들은 연락처 02-863-6622 / 후원계좌 외환은행 035-22-04431-7(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

덧붙이는 글 후원하실 분들은 연락처 02-863-6622 / 후원계좌 외환은행 035-22-04431-7(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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