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추워하는 것 같아요"

낙동강 미래세대가 지구촌에 보내는 메시지

등록 2005.01.09 00:40수정 2005.01.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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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낙동강 하구 을숙도.

낙동강 하구 을숙도. ⓒ 한나라

'습지와 새들의 친구'. 환경에 대해, 특히 습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습지보전단체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이하 습새)'는 단체의 이름에서 대번에 알 수 있듯 습지보존운동을 필두로 하고 있는데, 이와 겸하여 습지에 대한 시민 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홍보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지닌 세계적 자연유산인 낙동강 하구의 습지를 보호하는 활동을 주로 펼치고 있다.

낙동강 하구는 겨울에도 얼지 않기 때문에 독수리, 물수리, 고니, 저어새 등 온갖 희귀조와 수십만의 철새가 찾아오는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로서 1966년 문화재보호구역(천연기념물 179호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으로 지정되어 연안오염특별관리구역·자연환경보전지역·자연생태계보호구역 등 4개 법으로 보호받는 우리나라 유일의 습지다.

그러나 1987년의 하구둑 건설과 뒤이은 서부산개발사업으로 명지, 신호, 녹산 등에 공단과 주거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곧 명지대교와 명지주거단지의 고층화 문제 등 각종 개발 사업이 이어질 예정이어서 이곳 철새도래지의 앞날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부산시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낙동강 하구가 시름시름 앓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부산시만의 문제로 국한시켜 보아서는 곤란하다. 낙동강 하구는 온갖 새들이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해 지구 곳곳에서 몇 천 킬로미터를 날아 찾아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새들이 낙동강을 잃게 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다. 때문에 전지구인이 함께 아파하고 염려해야 할 전 지구적 공동체의 문제인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이익에 급급해 전 지구적 생명의 보고인 낙동강 하구를 외면하고 있는 어른들. 이에 '습새'는 미래에도 낙동강 하구를 끼고 살아갈 어린이들의 손에 '카메라'를 들려주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그러져 가고 있는 삶의 터전에 대한 기록을 미래시대의 주인인 아이들에게 맡겨보자는 것. 이름하여 "낙동강 하구의 미래세대가 지구촌에 보내는 메시지 만들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모두 여덟 명. 남매인 봄이(고1)와 찬용이(중2), 현석이(중2), 현중이(초6), 남매인 정태(초6)와 예슬이(초5), 역시 남매지간인 혜린이(중1)와 준혜(초6)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을 도와 '어른'인 박중록 '습새' 운영위원장(대명여고 교사)과 참가한 아이들의 어머니 네 분('습새'회원이거나 '창조어머니회'회원)이 낙동강 하구 탐사에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소개하지 않은 또 한 명, 바로 8명의 '리포터'들과 함께 영상자료를 제작하게 될 푸른 눈의 외국인 그레그 마이클씨가 있다. 그레그 마이클은 '월드스쿨네트워크(World School Network)'의 환경활동가로 8명의 리포터 아이들과 소통하며 함께 영상자료를 제작하는 임무를 맡았다. 아이들이 리포터가 되고 그레그가 피디가 된 셈. 리포터와 피디의 의사소통은 필수! 그레그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불가피하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될 듯하다.

1월 6일 첫 만남을 통해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지만 낙동강 하구 현장 탐사를 위해 이틀만에 다시 모인 이들은 아직은 서먹한 눈치다. 낙동강 하구를 관통하는 자연바람은 무시무시한 수준이라서 모두 파카에 목도리와 장갑, 심지어 마스크까지 완전 무장을 했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을숙도. 그레그가 오늘 탐사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연을 느껴보라는 그레그. 아이들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느린 속도와 쉬운 단어로 배려해 주었지만 아이들이 알아듣는 단어는 'feel', 'wind'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그레그가 먼저 싸늘한 냉바닥일 게 뻔한 풀 바닥에 땅과 하나가 되는 듯한 몸짓으로 누웠다. 다들 따라 누워본다. 그러나 영 어색한 모양이다. 자연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라고 했는데도 키득키득 웃기만 하고, 아예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앉아있기만 하는 녀석도 있다. 참다못한 박중록 선생님이 '자연과 2분씩 만나보기' 엄명을 내렸다. 어색해하던 녀석들도 저마다 자리를 잡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말라비틀어진 풀잎사귀들도 만져 보고 갈대도 꺾어본다.

a 풀바닥에 드러누워 자연을 느껴보는 아이들.

풀바닥에 드러누워 자연을 느껴보는 아이들. ⓒ 한나라

"How did you feel? What sound did you hear?(느낌이 어때? 어떤 소리가 들려?)"

그레그의 질문에 아이들은 'cold' 'warm' 'sunshine' 'windy' 등 짧은 영어지만 최대한 자신의 느낌을 전하려고 애쓴다.

낙동강 하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을숙도. 지금의 을숙도는 수많은 개발로 인해 본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한다.

"을숙도의 원래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지금은 갈대밭이 왼쪽과 오른쪽 부분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모두다 뒤덮여 있었어요. 그 사이사이에 작은 물줄기들이 흐르고, 새들과 고기들과 어부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낙동강 하구의 상징새는 무엇일까요?"
"고니요!"
"자, 저기 보이는 고니들이 모두 몇 마리일까요?"

아이들은 적게는 400마리에서 많게는 800마리까지 저마다 가늠 지어 말한다.

"많을 때는 고니가 30만 마리씩 찾아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낙동강 하구가 많이 오염되고 쇠퇴해서 예전만하지 않아요. 습지에 새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그 습지가 깨끗하고 건강하다는 반증인데…."

"고니는 추위를 피해 되도록 안쪽으로 오고 싶어 해요. 을숙도는 양쪽이 갈대밭으로 덮여 있고 북쪽에는 언덕이 있어 3면이 싸여 있는 형국으로 추위를 피하기 좋지요. 그런데 이곳이 보호지역임에도 보호 장치도 없고 관리인도 없어 사람들한테 바로 노출되어 있는 탓에 고니가 가까이 오지를 못해요. 사람들이 무서운 거지요. 세계적으로 이런 곳이 없는데 하나도 지켜내지 못하는 거예요."

박중록 선생님의 안타까운 설명이 이어지자 아이들의 눈도 이내 심각해진다. 저마다 망원경을 설치하고 고니의 생김새를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다. 제일 막내격인 예슬이는 한번 망원경으로 들여다보고 돌아섰다가 "또 볼래요!"하며 다시 줄을 선다.

a 명지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고니.

명지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고니. ⓒ 한나라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명지갯벌.

"원래 명지갯벌 규모의 3분의 2가 매립되어 지금은 명지주거단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곧 명지대교가 지어지고 아파트가 계속 지어지면 명지갯벌을 찾는 고니와 마도요, 개꿩, 황오리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겠지요."

"너무 가까이 가면 새들이 도망갑니다. 추위를 피해 마땅한 장소를 고르고 먹이가 있음직한 곳을 봐둔 새들이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 먹이도 포기하고 추위도 피하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거죠."

a 봄이가 Greg에게 카메라 작동법을 배우고 있다.

봄이가 Greg에게 카메라 작동법을 배우고 있다. ⓒ 한나라

새들의 살 곳을 빼앗아버린 속죄를 하는 듯 되도록 새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탐조를 해달라는 박중록 선생님의 말씀이 간절하다. 아이들은 이미 을숙도에서 한 번 경험한 탓인지 조심스레 망원경을 꺼내고 자세를 낮춘다. 그레그는 앞뒤로 쫓아다니며 아이들의 탐조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고 직접 아이들에게 카메라 작동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학년이 높은 봄이와 현석이는 어느새 통역관이 되어 박중록 선생님이 안내한 내용을 바로바로 그레그에게 통역해준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학교 방송반이 되었다는 예슬이. “방송반에서 PD를 맡고 있는데요, 낙동강에 있는 새들의 모습을 많이 찍어서 다른 나라의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어요”라고 씩씩하게 말한다. 예슬이는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방송반에서 이미 기기를 다뤄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비디오카메라를 손에서 잠시도 놓지 않고 이곳저곳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둔치도. 낮에 습지에서 먹이를 구하던 새들은 밤이 되면 어디로 갈까? 둔치도는 근처에 있는 논밭으로, 날이 저물어 습지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된 새들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날아드는 곳이다. 정말 그럴까? 아이들은 재미있는 게임을 하게 됐다. 바로 이곳이 사람뿐만 아니라 새들이 기거하는 장소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를 한 가지 씩 찾아내는 것!

아이들은 이내 흩어져 증거가 될만한 것들을 찾아 논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증거를 찾아 논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봄이의 엉덩이춤에 논물기가 스며들자 "봄이 똥 쌌다"며 모두들 봄이를 놀려대기도 했다.

a 논밭에 새들이 기거했다는 증거로 찾은 것들을 모아보고 있다.

논밭에 새들이 기거했다는 증거로 찾은 것들을 모아보고 있다. ⓒ 한나라

아이들이 찾아 온 증거들을 모아 보았다. 새의 깃털과 새가 습지에서 물어왔음직한 고동, 새똥. 가장 확실한 증거는 새털이련만, 아이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인 것은 바로 '새똥'이었다. 저마다 '큼큼'대며 새똥 냄새를 맡아보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아직 물기도 남아있고 벼를 베어내고 난 뿌리도 남아있어 떨어진 이삭들이 새들의 좋은 먹을거리가 되어주던 이쪽 논과는 달리 도랑을 경계로 나란히 있던 다른 논은 완전히 갈아버려 바닥이 버석버석해져있었다. 이런 논에서는 새들이 먹이를 구할 수가 없다고. 둔치도를 떠나오면서 바라본 들녘에는 대를 세워 온통 반짝거리는 것들을 매달아 놓은 미나리밭이 있었는데 먹이를 찾아 밭으로 날아드는 새들을 쫓기 위해 장치한 것이라고 한다.

"새들이 찾아들 곳을 당장에 돈이 된다고 매립하고 시멘트로 발라버리니 새들이 먹이를 구할 곳이 없지요. 굶주린 새들은 근처 공항에 들어가 비행기에 충돌하면서까지 먹이를 찾아 다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으니까요. 인위적으로 자연의 섭리를 막으려드니 인간에게도 피해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이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치등'에서는 부산 아시안게임 때 행사 종료 후 철거하기로 약속하고 설치했다는 조정경기장이 2년이 지나도록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기껏 돈 들여서 설치한 것이니 그냥 놔두자는 것이 시의 입장인데, 이런 경제 논리에 의해 얼마나 더 낙동강 하구를 빼앗겨야 할 것인가. 시민과의 약속도 저버리면서 말이다.

둔치도에서 준비해 온 간식을 먹기도 했지만 점심때를 훨씬 넘겨가며 탐사에 임한 어린 리포터들. 탐사를 마치고 나서야 그새 잊었던 '허기'가 밀려오는 듯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가까스로 식당을 찾았지만, 식당 앞으로 흐르던 냇가는 이미 죽은 물로 가득했다. 이 냇가도 낙동강의 물줄기를 타고 만들어졌을 터인데, 인간 세상으로 조금만 발을 들여도 이토록 더럽혀지고 마는 모습을 보고 말았으니 어린 리포터들의 임무가 더욱 막중해졌다.

첫 번째 탐사를 무사를 마친 8명의 리포터들에게 그레그가 물었다.

"What is your message about Nakdong river? What did you feel?(낙동강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있어? 뭘 느꼈니?)"

"을숙도를 나오며 보았던 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생각나요. 고구마와 마를 썰어 낙동강의 고니들에게 줄 먹이들을 준비하는 모습이요. 낙동강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봄이)
"새가 갑자기 날아갈 때 왠지 내가 바로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리 위에서 더러운 물을 보았을 땐 걱정이 되기도 했구요."(현석)
"음. 갈매기가 갯벌 위에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어… It's funny!(재밌어요)"(찬용)
"다양한 새들, 사람들이, trash(쓰레기), '버리다'가 뭐지? 아! throw out(내던지다), 음… 그게 안타까워요.”(현중)
“논에서 릴레이 할 때요, ground feel, wet ground…,그리고 People build buildings, so nature is destroy, nature is disappearing(사람들이 빌딩을 지어서 그래서 자연은 파괴되고 사라졌어요). 안타까워요.”(정태)
“어, Wind's smell is good and I saw many birds, they looked cold.(바람의 냄새가 좋았고, 많은 새를 봤어요. 그들은 추워보였어요)"(예슬)

처음에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조금씩 영어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학년이 높은 형과 누나의 도움을 받으며 새로운 표현을 익히기도 하면서 8명의 리포터들과 그들의 지휘자 그레그는 조금씩 '소통'해나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카메라 작동법도 미숙하고, 낙동강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그들의 적이며, 지구촌 친구들에게 무엇을 전달할지 결정하지도 못했지만 그들이 오늘 느낀 것은 분명히 '낙동강'이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예슬이의 말처럼 '낙동강의 새들이 추위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습지로 많은 새들의 안식처가 되었던 낙동강, 지구가 온난화되고 있다고 하는데 낙동강은 왜 점점 추워지는 걸까. 새들이 왜 자꾸 떠나는 걸까. 오늘 하루 8명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아직 남아있는 네 번의 만남 속에서 찾아보자. 이들 9명이 만들어 갈 메시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아이들 손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자료는 오는 4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Expo 2005의 NGO 지구촌 마을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아이들 손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자료는 오는 4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Expo 2005의 NGO 지구촌 마을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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