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 잘 펴고 밀가루를 칠하여 엉기지 않게하여 접어서 썰고 풀어주면 됩니다. 잘 만들어지더군요. 조금 두껍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김규환
아이들과 남자 두 분, 여성 한 분은 곧 친해졌다. 그 사이 나는 물이 끓는 걸 애타게 기다렸다. 넉넉히 물을 잡는다고 생각했다. 별로 짙지 않던 팥물이 내심 걱정이었지만 막상 뽀글뽀글 끓자 꽤나 붉어졌다.
굵은소금을 두 숟갈 넣고 이때다 싶어 밀가루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국수를 슬슬 풀어가며 넣고 휘저어줬다. 한꺼번에 다 넣으면 뭉칠 수 있으므로 두 번에 걸쳐 나눠 넣었다.
잠시 뒤 뽀글뽀글 숨을 쉬는가 싶더니 팥과 국수가 어울려 뛰논다. 잠자코 숨죽이던 바다가 해일을 일으키며 남실남실 위로 솟구친다. 하얀 면과 불그스름한 국물이 어깨동무를 하며 한데 껴안는다.
"아이구 백아님! 그만 하시고 오세요."
"예 다 됐습니다. 끓어가니까 이제 퍼가기만 하면 됩니다."
막걸리 한 사발씩 나눠 마시던 손님들이 성화다. '과연 어떤 맛일까? 국수는 흐느적거리며 푹 퍼지지는 않을까? 간은 맞을까? 이거 이러다 내 솜씨 탄로 나는 건 아닐까?' 첩첩산중에 들어간 기분이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한 숟갈 떠서 맛을 보니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 수 있도록 무난한 맛이었다. 탄내도 나지 않았다.
"자, 다 됐습니다. 한번 묵어 봅시다."
"맛있겠어요, 백아님."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입맛 대가들을 모시고 대접하기가 겁이 납니다."
"백아는 음식의 달인 아닌가요?"
"허허 사실, 제가 오늘 난생 처음 팥 칼국수를 끓인다는 사실을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완성된 칼국수.김규환
아내가 국물과 국수를 적당히 나눠서 퍼온다. 간이 맞는 듯하여 소금은 빼고 입맛과 취향에 따라 드시라고 설탕을 한 종지 가져갔다.
"후루룩 후루룩."
국물 먼저 뜨더니, "음 옛날 퐅죽(팥죽) 맛이 나는구만. 퐅 냄새가 아주 좋아요. 90점은 충분히 되겠어." 50대 후반 형님의 평이다. 이어 몇 살 위인 분이 자신은 "이런 팥죽이라면 배터지도록 먹어야 하는데 양이 달릴까 걱정"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주머니 한 분은 국물을 더 달라고 하신다.
싱건지와 팥 칼국수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니 부드럽게 잘도 넘어간다. 식으며 국물이 굳고 면발이 노출되자 꼬불꼬불 헤엄을 치며 유혹하니 단숨에 먹어치워도 부드럽게 설설 녹는다. 팥 향도 더 진하고 작은 알갱이 분말이 씹히듯 혀끝을 간질인다.
다들 추억의 음식깨나 먹어봤던 사람들은 어릴 적 외할머니, 어머니가 솥단지째 한 데에 살얼음이 살살 끼어야 더 맛있다는 기억을 늘어놓으며 그때 그 맛을 꺼내느라 침이 마르지 않는다.
사람들마다 한 그릇씩 더 먹고 나자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팔팔 끓고 있을 때 면을 넣어서인지 식어도 쫄깃한 맛은 여전했다. 아이들이 남긴 것까지 깨끗하게 비우고서야 잔치를 마쳤다.
거나하게 취해 아쉬운 작별을 하고나니 못내 아쉬웠지만 이번에 확실히 팥 칼국수 끓이는 법을 터득했다는 자부심에 무척 기분이 좋아 모처럼 아이들을 못살게 굴다가 잠이 들었다. 흰 눈이 아름답게 내리던 날 따끈한 팥 칼국수 한 그릇에 내 마음도 사르르 녹아 보드랍고 쫄깃하게 빨려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한살씩 더 먹은 의미를 깨닫게 하려고 새알심을 만들었습니다.김규환
| | 혼자 새로 터득한 비법 몇 가지 | | | | 비법1. 팥 삶기
<1>반드시 국산 팥을 사야 한다. <2>팥을 삶을 때는 첫 번째는 물을 많이 부을 필요 없이 조금만 붓고 김이 펄펄 나거든 불을 줄여 퍼지기를 기다렸다가 찬물을 다시 부어 끓이면 오랜 시간 걸리지 않고도 빨리 삶을 수 있다. <3>처음부터 소금을 넣으면 물러지지 않으므로 다 삶아진 다음에 약하게 간을 하는 게 원칙이다.
비법2. 반죽과 국수 뽑기
<1>반죽할 때는 반드시 전체 분량의 1/5 정도 밀가루를 남겨야 한다. <2>약하게 소금 녹인 물을 넣고 숟가락으로 뒤적이다가 10여 분 둬서 섞이도록 하여 손으로 주물럭거리면 수월하다. <3>되직하다 싶을 정도로 물을 적게 쳐야하며 일부러 온 힘을 빼가며 치댈 필요가 없다. <4>꼭꼭 뭉쳐뒀다가 비닐봉지에 싸서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밀봉하여 서늘한 곳이나 냉장고에 3~4시간 보관하면 수분이 고루 퍼지고 끈기가 살아난다. <5>최소 40분 이상 뒀다가 꺼내서 한 번 더 주무르면 적당해진다. <6>만지작거릴수록 끈적끈적해지므로 남겨둔 밀가루를 뿌려가며 쭉쭉 밀어주면 된다. <7>초보자는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실험정신을 발휘할 각오를 해야 한다. <8>칼로 썰고 나서는 다시 밀가루를 뿌리고 성기지 않게 흔들어 준다.
비법3. 간하기
<1>간은 가능하면 면발에 배도록 하는 게 쫄깃한 맛을 더 한다. <2>국물에는 팥물이 다 끓고 나서 약하게 해야 후회가 없다. 특히 걸쭉한 국물에는 소금을 조금만 넣어도 짠맛이 심할 때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3>설탕은 취향에 따라 선택하도록 따로 종지에 내놓는 배려가 필요하다. 괜스레 설탕을 같이 쳤다가는 한두 사람 먹고 마는 경우가 많다.
비법4. 맛있게 먹는 법과 상차리기
<1>팥칼국수는 젓가락보다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맛있다. <2>양을 넉넉히 하여 따뜻할 때 한두 그릇, 남겼다가 완전히 얼려서 나중에 한 그릇 먹는 맛이 최고다. <3>가을 김장 무우로 담근 싱건지(동치미) 국물과 잘 어울리며 무 뿌리 김치도 좋다. <4>굳이 날씨를 따지자면 흰눈이 펄펄 날리는 추운날이 더 맛있다. / 김규환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