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아내가 준수의 간병을 위해 집을 떠난 지 4개월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집을 돌봐주던 조카마저 떠난 뒤에 집에는 광수와 달랑 둘이 남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광수도 나도 방학을 맞아 조금은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 지어 먹이고 청소하고 입던 옷 벗겨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일은 이제 몸에 익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아내가 집을 떠난 후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알뜰한 아내가 지켜주던 때에는 항상 잘 정돈된 집이었지요. 아내가 기다리고 있던 집에서는 늘 은은한 향내가 풍겼습니다. 아내는 대추차를 좋아했습니다. 아내가 끓이던 대추차의 은은한 향내는 온화한 우리 가정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내가 집을 떠난 후 집안이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느낌입니다. 아내가 끓이던 대추 향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집안 곳곳에서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집니다. 5년 넘게 자취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해서 광수와 마주앉아 먹어보지만 그때마다 늘 허전합니다. 아내가 해주던 맛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며칠 묵혀두었던 빨래거리 모아서 세탁기에 넣고 돌렸습니다.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세탁기 주변이 너무 지저분했습니다. 버릴 것은 모아 버리고 쓸만한 것은 차곡차곡 정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선반에 올려져 있던 박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박스 안에는 꽤 많은 감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싹이 나 있었습니다. 손톱만한 작고 귀여운 싹이 난 게 아닙니다. 이미 싹이 난지 오래 지나 보라색 줄기가 길쭉하게 자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