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 개숭년이 들었단 말이요"

전남 장흥 회진 장산마을1

등록 2005.01.14 22:47수정 2005.07.1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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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겨울 날씨, 어물전 맨 앞줄에는 녹색의 주먹 뭉치만한 것들이 두 줄로 가지런히 노란 상자에 담겨져 있다. 예전 같지 않고 그 양도 적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 나오는 날보다 안 나오는 날이 더 많아 보인다. 바로 '매생이'다.


지역에 따라 '매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산어보>에는 '매산태(莓山苔)',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매산(苺山)'으로 소개되어 있다. <자산어보>에는 매생이의 특징을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빽빽하다. 길이는 몇 자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끊이면 연하고 미끄러우며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적고 있다.

개숭년 들어서 오질 말라고 하니까

a 장산리 갯벌 대나무에 붙은 매생이

장산리 갯벌 대나무에 붙은 매생이 ⓒ 김준

매생이는 뻘밭이나 자갈, 바위 등에 붙어 자란다. 수온에 매우 민감하며 오염된 곳에서 자라지 않고 물발이 센 곳에서도 자라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매생이가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수요가 늘어나자 전남 장흥 회진과 대덕의 갯마을에서 매생이 양식이 이뤄지고 있다.

광주에서 부지런히 달려서 3시간만에 도착한 장흥군 회진면 덕도. 한승원의 소설 <앞산도 첩첩하고>의 무대이며, 작가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1960년대까지 섬이었다.

1962년 세계기독교봉사회 구호식량지원금으로 개척단을 동원해 만든 둑방길은 섬을 육지로 만들었고, 소설에서 '장례'와 '달병'이 사랑을 속삭이던 장소로 등장한다. 지금은 둑방길에 김 양식에 사용하고 남은 듯 말장(지주)들이 즐비하게 기대어 서 있다.


덕도에서 유일하게 매생이 양식을 하고 있는 장산리. 원둑이 막히기 전까지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김 양식으로 먹고 살았다. 장산리뿐아니라 덕산·신상·대리 등 덕도의 네 마을 주민들도 모두 김발을 막아 생활을 했다. 장산만 해도 김발이 좋을 때 120여호까지 거주했지만 지금은 68호가 살고 있다. 이중 40여호가 미역 양식을 하고 일부 젊은 사람들은 마량과 완도까지 나가 김 양식을 하고 있다. 인근 대덕읍 내저리는 마을 전체가 집단적으로 매생이 양식을 하고 있지만 장산리는 7호에 불과하다.

a 장흥군 회진면 장산리

장흥군 회진면 장산리 ⓒ 김준

a 김춘식·신봉엽 부부가 기르는 누렁이와 송아지

김춘식·신봉엽 부부가 기르는 누렁이와 송아지 ⓒ 김준

장산리에서 5년 전 처음으로 매생이(이곳 주민들은 '매산이'라고 부른다) 양식을 시작한 김춘식(74)·신봉엽(68) 부부는 금년에 10때의 매생이 발을 막았다. 며칠 전부터 찾아뵙겠다는 전화에 김씨 부부는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외양간에 있는 누렁이와 송아지가 낯선 사람의 출현에 눈만 말똥거린다. 매생이가 예년과 달리 작황이 좋지 않아 현지 수요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알려져 매생이를 요구해도 제공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작년까지 잘되던 매생이가 금년에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현지 어민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을 듯 싶어 한사코 말리는 길을 나섰다. 아무리 야박하기로서니 시골 인심이 있는데 내쫒기야 하겠냐 싶었다.

"오지 마랑께 와부렀소. 개숭년(흉년) 들었단 말이요."

회진에 도착해 원둑을 넘어 장산마을 앞에 차를 멈추고 전화를 걸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무뚝뚝한 우리 아버지 목소리와 똑같다. 오히려 친근감이 갔다.

"마을 앞 회관에 있는데요."
"100m만 큰길로 올라오쇼."

김씨는 이내 불쑥 찾아온 필자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축협 선거로 급히 소재지에 나갈 채비를 하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30여분을 할애해 주었다. 급한 김에 개숭년이 든 이유부터 여쭈었다. '짐작'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다짐하고서 진단은 시작되었다.

"인제 금년에는 기후 변화로 해서 가을날이 따수아 부렀단 말입니다. 수온이 18도 이하로 가야 하는디 18~20도가 되어 부렀단 말입니다. 그래서 포자 붙여 놓은 것이 녹아부렀제. 기후도 문제지만 수온이 제일 문제여. 매생이는 공해가 전혀 없는 것이여. 조금만 오염되어 있으면 매생이가 제1번으로 가버려."

웬수 같은 매생이가 늘그막에 효자 노릇하다

a 집안에서 말리고 있는 미역 줄기

집안에서 말리고 있는 미역 줄기 ⓒ 김준

매생이 양식은 김 양식과 달리 큰 목돈이 들어가지고 않고,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갯가에서 할 수 있다. 대나무를 쪼개 엮어 갯가에 지주를 세워 매달아 놓으면 시설이 끝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이 빠지면 긴 장화를 싣고 들어가 손으로 훑어 내어 갯물에 깨끗이 씻고, 파래며 해우 등을 추려내서 재기를 만들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재기 혹은 지기는 매생이를 세는 단위로 어른 주먹만 하게 매생이를 말아 놓은 것을 말한다. 그 모양이 포장마차에 국수를 말아 놓은 것이나 할머니 쪽진 머리 모양이다. 그걸 한 재기(지기)라고 한다.

장흥의 장산마을은 회진면에 속한 작은 어촌 마을이다. 개척단을 이끌고 원을 막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덕도'의 4개 마을 주민들은 김 양식을 주업으로 살았다. 섬을 둘러싸고 갯벌이 발달해 고기잡이보다는 일찍부터 지주식 김 양식이 활발한 곳이다.

김 양식은 물살이 센 곳에서 양식이 잘 되며, 다음은 미역 양식이지만 매생이는 물살이 센 곳에서 할 수가 없다. 종종 김발에서 매생이가 붙어서 김 양식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흔히 잡태라고 부르는데 파래와 매생이 등이 김발에 붙게 되면 김이 상품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김 양식 어민들에게는 '웬수 놈의 매생이'이가 되는 셈이다. 도시인들이 깨끗하고 잡태가 섞이지 않는 김을 선호하기 때문에 어민들은 약품 처리도 마다하지 않고, 그 결과 잡태만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갯벌 생물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a 매생이 뜯기

매생이 뜯기 ⓒ 김준

a 재기로 만들어 팔리고 있는 매생이

재기로 만들어 팔리고 있는 매생이 ⓒ 김준

기계가 나오기 전에는 나이 든 사람이 미역 양식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100m에 달하는 미역줄에 길이가 긴 것은 2m를 넘기 때문에 갓배에 들어 올려 낫으로 미역을 베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계로 갓배로 들어 올려 베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도 양식을 하고 있다.

김씨도 미역줄을 들어 올리는 기계가 들어오고 나서 미역 양식을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최근까지 4구간을 했지만 최근에는 2구간으로 양을 줄였다. 1구간에 100m 미역줄이 30줄이 들어가는데 미역줄이 길고 무겁기 때문에 조류 등에 휩쓸리게 되면 통째로 잃어 버리는 일도 있다. 김발과 미역발을 할 수 없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매생이 양식은 소일거리로 적격이다.

면소재지로 나가기 위해 자리에 일어서면도 김씨의 매생이 자랑은 계속되었다.

"옛날에는 서울 사람들 안 묵었어, 묵을지 몰라. 그란디 지금 묵고 사는 것이 제일로 농약치고 뭐한 것은 안 묵잖아요. 공해 제일 먼저 받는 것이 매산이여. 건강에 좋고 첫차에는 매산이가 소화제여, 변비는 일번이고. 지금은 서울시민들이 많이 묵고, 계약이 돼 보내라고 하는디, 매산이가 없어. 팔려고 해도."

a 매생이 발의 모습

매생이 발의 모습 ⓒ 김준

매생이를 서울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된 일이 아니다. 물론 전라도 사람들도 매생이를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하니 위쪽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런데 요즘엔 산지 매생이들이 서울의 대형식품점, 백화점 등과 직접 계약돼 작업을 하는 다음날 바로 서울로 공급된다. 서울의 유명 한정식 집에서도 최근 식사 전에 깨죽 대신 매생이 죽을 내놓는다. 어느 음식학자는 한정식 집에 매생이 죽이 등장하기 시작한 게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부터라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덕도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이용 목포 - 2번국도 이용 장흥 - 77번국도 이용 회진 - 덕도

장산리는 질팍한 갯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는 소설가 '한승원'님의 고향 신상리 인근에 위치했는 작은 어촌이며, 바다 건너에는 소설가 '이청준'님의 고향 진목리가 있다. 

다음 기사로 '미운 사위자식에게 주는 매생이국'이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덕도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이용 목포 - 2번국도 이용 장흥 - 77번국도 이용 회진 - 덕도

장산리는 질팍한 갯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는 소설가 '한승원'님의 고향 신상리 인근에 위치했는 작은 어촌이며, 바다 건너에는 소설가 '이청준'님의 고향 진목리가 있다. 

다음 기사로 '미운 사위자식에게 주는 매생이국'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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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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