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99회

등록 2005.01.17 07:51수정 2005.01.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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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철혈대(鐵血隊)

광도가 가득 따라 놓은 술잔을 들고는 단숨에 마셔 버린 담천의가 구효기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가 해야 하는데 특별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다시 술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따르자 구효기가 입을 열었다.


“담 공자가 나선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니 너무 개의치 마시오. 자네도 특별히 생각할 것은 없네.”

아직까지 얼굴색이 풀어지지 않은 갈인규를 보며 한 말이었다. 사실 갈인규는 일행 모두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이미 담천의가 해 버렸고, 광도는 아예 그런 말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헌데 그때였다.

“…!”

따라놓은 술잔에 미세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원을 만들며 퍼지더니 눈에 보일 정도로 파동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고요한 수면 위로 돌을 던졌을 때 물결위로 퍼져나가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와 함께 바닥에서도 미세한 진동이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미세하게 파동이 일기 시작해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던 파동이 점차 커지는 듯싶더니 끝내 술방울이 술잔을 넘쳐흘렀다. 팽악이 얼른 잔을 집어 들며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곧 접시가 탁자에 흔들릴 정도로 지축이 울리는 느낌이 느껴졌다. 탁자에 올려진 식기가 모두 소리 내며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귀에는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그들이 왔군.”

술잔을 내려놓던 통천신복 구효기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일행 뿐 아니라 장안루에 있던 인물들의 얼굴에 의혹의 기색이 떠올랐다. 팽악이 흔들리는 술병을 잡으며 물었다.

“누가 왔다는 것….”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축을 울리며 다가들던 말발굽 소리가 단 한순간에 멎었다. 그 대신 절제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척--척--척--척--

발소리와 함께 장안루의 바닥이 울리기 시작하며 줄지어 들어오는 수십 명의 인물들. 한결 같이 군병과 같이 갑주(甲冑)를 걸쳤다. 갑주는 갑옷과 투구다. 하지만 들어 온 인물들의 갑주는 군(軍)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군병의 갑옷은 대체로 면오갑(綿襖甲)인데 반해 이들은 기마(騎馬)의 무장(武將)들과 같이 괘갑(挂甲)이었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질서정연하게 장안루 1층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 신속하고 일사불란하여 물샐 틈 없는 방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보다 놀랄 일은 천정의 방위까지 점령했다는 사실이었다.

휙---휘---익---!

여덟 명의 인물들은 가는 은사(銀絲)가 달린 쇠침을 천정에 이리저리 꼽는가 싶더니 그 줄을 타고 올라 천정의 팔방(八方)을 점한 것이다. 마치 박쥐가 천정에 매달려 있는 듯 그들의 신형은 거꾸로 서 있었다. 장안루 안에는 많은 인물들이 있었지만 너무나 급작스럽게 이루어졌고, 그들이 누군지 깨닫는 순간 이미 완벽하게 포위된 형세였다.

철혈보(鐵血堡)의 철혈대(鐵血隊)

바로 그들이었다. 한때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란 소리를 들었던 철혈마제(鐵血魔帝) 독고수광(獨孤壽廣)이 창건한 이래 이백여년의 전통을 가진 문파인 철혈보의 주력(主力). 한명 한명은 상대할 수는 있지만 여덟 명만 모이면 어떠한 고수라도 당해낼 수 없다는 기마대가 그들이었다. 일백이십팔인(一白二十八人)으로 구성된 철혈대는 어떠한 문파라도 궤멸시킬 수 있다는 가공할 무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헌데 이 장안루에 그 중 절반이 갑자기 들이 닥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과 같은 복장이었지만 금빛 갑주를 걸친 인물이 들어서는 순간 기이하게도 장안루 한 귀퉁이에서는 갑자기 나직한 비명이 흘러 나왔다.

“헉---!”
“악---!”

남녀(男女)의 뾰족한 비명소리는 비록 나직했지만 장안루 안에 있는 인물들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너…, 너희들은 보주(堡主)의 그림자라는 철혈쌍비(鐵血雙秘)였구나…! 진작 알아보아야 했을 것을….”

이미 점혈(點穴)을 당한 듯 의자에 비스듬히 늘어진 촌노(村老)의 모습으로 보이는 인물이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그곳에는 촌로와 그 며느리로 보이는 삼십대 시골 아낙 차림의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이미 두 사람 모두 완벽히 제압당한 듯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을 본 담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가 이틀 전 관왕묘에 갔을 때 한 쪽 귀퉁이에 있었던 두 사람이었다. 얼굴을 돌리고 있어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모습이나 옷차림은 똑같았다.

그들 곁에는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녀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의 용모나 기세는 너무나 뛰어나 한결같이 남자는 인중지룡(人中之龍)이오, 여자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할 만 했다. 감탄할만한 모습들이었다.

“어찌 본 보(堡)의 서열 육위 금적수사(金笛秀士) 지광계(池匡啓)를 대접하는데 소홀할 수 있으리오.”

말은 바로 그쪽으로 걸어가는 금빛갑주를 입은 인물에게서 터져 나왔다. 맑은 목소리였지만 은연 중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촌로의 모습을 한 인물이 금적수사라는 점에 놀랐고, 이 금갑주를 입은 자가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금적수사(金笛秀士) 지광계(池匡啓)
그는 한 마리 고고한 학(鶴)으로 표현되는 인물이었다. 음율(音律)은 새들을 춤추게 하고, 노래는 하늘마저 감동하게 한다는 인물.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문사(文士)들과 학문과 시를 논하며 한때 수많은 중원 여인네들의 방심(芳心)을 여지없이 흔들었던 인물이었다. 언제나 백의단삼을 걸치고 금으로 만든 피리(金笛)를 지니고 있다 하여 금적수사라 불리었다.

헌데 옷에 먼지 한 올 묻는 것을 싫어했던 그가 이러한 촌로의 모습으로 이곳에 있었다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보아도 그가 금적수사 지광계라 믿을만한 모습은 없었다.

금갑의를 입은 인물이 그 탁자로 다가서자 젊은 남녀는 한쪽 무릎을 꺾으며 한결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삼가 속하들이 독고대주(獨孤隊主)를 뵈옵니다.”

철혈대의 대주.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독고라는 성(姓) 하나와 철혈보 내 서열 삼위(三位)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독고 성을 쓰는 것으로 보아 철혈보의 조사인 독고수광의 후손이라고 짐작은 되지만 문파에 충성한 인물에게 성씨를 하사해 주는 것도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어서 반드시 독고수광의 후예라고 단정 짓기에도 무리는 있었다.

“수고들이 많았소.”

기이한 인물이었다. 철혈쌍비라는 남녀가 저토록 공손히 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하대하지 않았다. 사실 철혈보의 서열삼위이며 철혈대의 대주라면 무림을 오시할 수 있는 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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