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래 아저씨처럼 탁구 치고 싶어"

준수와 함께 탁구를 쳤습니다

등록 2005.01.21 08:14수정 2005.01.2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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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를 데리고 집에 도착하니 한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냉동실에 얼려둔 청국장 두 덩어리와 함께 김치를 듬뿍 썰어 넣고 끓였습니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자주 끓여 먹던 청국장입니다. 아내도 준수도 청국장을 좋아했기에 점심 메뉴를 청국장으로 정한 것입니다.


아내가 팔 걷고 다가와 자신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괜찮으니 쉬라고 했습니다. 준수와 아내가 병원으로 떠난 후 밥 짓고 찌개 끓이고 설거지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석 달만에 집에 온 준수를 위해, 간병으로 지친 아내를 위해 점심 한 끼 정도는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 준수는 청국장에 밥을 말아 달게 먹었습니다. 아내도 앞으로 청국장은 당신이 끓이는 게 좋겠다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빠와 둘이서 밥을 먹는데 익숙했던 광수도 형과 엄마와 함께 먹는 점심이 즐겁기만 한 모양입니다. 밥 한 공기 비우고 더 먹겠다며 밥솥을 열었습니다. 꿀처럼 단 점심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과일을 깎아놓고 마주앉아 얘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광수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물어봤고 나는 준수의 건강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궁금했습니다.

준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컴퓨터 게임에 대해 광수에게 물었습니다. 광수는 원주 연고 농구팀인 TG 삼보의 경기에 대해 형과 얘기하고 싶어했습니다. 관심은 달랐지만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대화 중에 준수가 강원래 아저씨를 만났다며 자랑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퇴원했던 강원래씨가 이따금 재활 병동에 와서 환자들을 격려한다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준수와 직접 만났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냥 지나치면서 인사 정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준수에겐 그 일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나봅니다. 강원래 아저씨가 병원에서 탁구를 치는 걸 본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탁구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재활 병동 환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한 것이지요.

"넌 탁구 쳐본 적 없어?"
"딱 한 번 있었어요."
"많이 쳤어?"
"아니요."
"왜, 힘들었어?"
"조금 치고 있는데 엄마가 친다고 라켓을 가지고 갔어요."

준수가 먼저 가서 탁구를 치고 있었는데 뒤늦게 따라간 아내가 한 번 쳐보겠다며 준수 라켓을 받아서 탁구를 쳤다는 겁니다. 그런데 탁구 치는 재미에 빠져버린 아내는 그 뒤로 라켓을 준수에게 넘겨주지 않고 계속 쳤다고 했습니다. 어이가 없어 아내를 쳐다보니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준수야, 우리 탁구 한번 쳐볼까?"
"어디서요?"
"거실에서 치면 돼."
"어떻게요?"
"조금만 기다려."

준수
준수이기원
집에 탁구 라켓과 공이 있었습니다. 광수와 둘이서 방학을 보내면서 이따금 밥상 두 개 나란히 펼쳐놓고 탁구를 쳤습니다. 밥상이 너무 낮아 불편했지만 아쉬운 대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서서 칠 수 없는 준수에겐 딱 알맞은 높이였습니다.

밥상 탁구대를 설치하니 광수가 라켓과 공을 챙겨가지고 왔습니다. 준수가 라켓 하나를 잡고 한쪽 끝에 앉았습니다. 광수도 라켓 하나를 들고 맞은 편에 앉았습니다. 준수와 광수의 탁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상외로 준수는 탁구를 잘 쳤습니다.

"준수 탁구 참 잘 친다."
"난 윗몸은 정상이에요."

광수
광수이기원
다리를 제대로 쓸 수는 없지만 윗몸을 움직여 하는 일은 정상이란 걸 강조하고 싶은 준수 녀석의 마음이 아프게 가슴에 박혔습니다. 치면 칠수록 준수는 빠르게 적응하는데, 서서 치는 데만 익숙한 광수는 앉아서 치는 탁구가 어색한지 실수가 많았습니다.

석 달만에 만난 준수와 광수는 예전처럼 운동장에서 공을 찰 수는 없었지만 밥상을 이용해서 탁구를 치면서 어울렸습니다. 준수는 동생인 광수에게 탁구 라켓을 제대로 잡아야 잘 칠 수 있다며 한 수 가르쳐주었습니다.

이기원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광수도 밥상 탁구대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탁구공이 빠르게 오고 가는 거실에는 석 달만에 웃음과 활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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