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얼음벽이 똬리를 튼 구룡폭포

남쪽 관광객 온정각에서 시산제... 눈길 헤치며 구룡연 산행

등록 2005.01.24 19:57수정 2005.01.2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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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 순백의 향연을 펼치며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난 18일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 내린 함박눈으로 금강산은 온통 눈밭으로 뒤덮였다. 만물상 정상과 상팔담에는 170cm의 눈이 쌓여 대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산악인들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기 위한 '신년맞이 통일염원 시산제'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21~23일 금강산을 찾은 남쪽 관광객 300여명은 겨울 금강산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절경에 탄복을 자아냈다.


a 지난 21일 저녁 8시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온정각 마당에서 남쪽 관광객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새해맞이 통일염원 금강 시산제'가 열렸다

지난 21일 저녁 8시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온정각 마당에서 남쪽 관광객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새해맞이 통일염원 금강 시산제'가 열렸다 ⓒ 통일뉴스 김규종

방문 첫날인 21일 저녁 8시 금강산 온정각 넓은 마당에서 산신제를 올린 관광객들은 이튿날 동이 트자마자 구룡연 탐승길에 올랐다. 구룡연 들머리에서 산신제를 지낸 다음 세존봉(1160m)에 오르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현지 날씨 변화로 바꾼 것.

뽀드득 뽀드득. 앞서 나간 산악 구조대원들이 어른 무릎까지 쌓인 눈밭을 헤치며 길을 열었다. 금강산의 설경을 구경한답시고 앞사람과의 간격을 벌리며 조심조심 바위 틈을 오르는 데 뒤에서 빨리 가자고 재촉이다.

떠밀리듯 잰걸음으로 1시간을 걷자 금강의 자랑 옥류동 계곡이다. 연한 옥빛 물결은 어디 가고 젖빛 얼음덩어리만 계곡을 뒤덮고 있다. 목을 축일 겸해서 쌓인 눈을 한움큼 쥐어 입 속에 넣으니 금방이라도 이가 빠질 것처럼 얼얼하다.

북쪽 안내원이 일러주기로는 영하 15도란다. 가지고 간 카메라가 작동을 멈추었다.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서면 걸음마다 절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금강산의 비경을 담지 못하는 것이 평생을 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a 이번 금강 시산제 참가자들은 눈덮힌 겨울 금강산을 오르며 겨울 정취를 맘껏 즐겼다

이번 금강 시산제 참가자들은 눈덮힌 겨울 금강산을 오르며 겨울 정취를 맘껏 즐겼다 ⓒ 통일뉴스 김규종

"어서 오시라요. 기자 선생 아닙네까. 저 기억 안납네까?"


1시간을 더 올라 비봉폭포(139m) 앞에 다달으니 북쪽 안내원이 손짓을 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금강산 비경을 찾아 사계절을 오갔다지만 생각할수록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모처럼 만난 연인처럼 반갑게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자 일행들의 너스레가 흐드러졌다. 영하 20도. 해발 800m의 산등성이에는 차가운 계곡풍이 쉬지 않고 불어왔다.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양쪽 볼이 연민을 자아냈다.


북쪽 안내원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걸음을 채촉하여 은사류에 다달으니 연담교를 사이에 두고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연담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오르면 하늘의 손길이 닿아 빚었다는 상팔담이다. 금강산 8선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대한산악연맹 회원과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이번 금강산 시산제 참가자들은 그러나 끝내 상팔담에는 오르지 못했다. 은사류에서 연담교를 건너지 않고 곧장 5분 정도 올라가면 나타나는 관폭정에서 구룡폭포(84m)를 감상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아홉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 또한 비봉폭포와 마찬가지로 웅장한 물소리 대신 은빛 얼음벽이 똬리를 틀었다.

"여기가 조선 3대 폭포 가운데 하나인 구룡폭포입네다."

북쪽 안내원이 들려주는 해설을 들으며 일행과 함께 관폭정에 둘러 앉아 있자니 허기가 느껴졌다.

a 구룡폭포를 배경으로 김상현 대한산악연맹회장(두번째줄 왼쪽에서 두번째)과 박영석 등반대장(중앙)이 청소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구룡폭포를 배경으로 김상현 대한산악연맹회장(두번째줄 왼쪽에서 두번째)과 박영석 등반대장(중앙)이 청소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통일뉴스 김규종

더러는 내려오는 길에 북이 운영하는 목란관에 들러 평양냉면으로 점심을 때웠지만 그래도 허기진 몸에는 밥이 보약이다 싶어 금강빌리지 하나홀로 향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먹는 점심은 진수성찬처럼 풍성했다.

오후 4시 30분부터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펼쳐진 평양모란봉교예단 공연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날도 우리 돈으로 2만7000원 하는 620석 모든 좌석이 다 팔렸다. 저녁에는 금강산온천에 들러 몸을 담그니 신선계가 따로 없다.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23일 오후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가 구서통문에 이르자 북쪽 경무관이 차를 세웠다. 북에서의 마지막 출경 절차다. 이윽고 구서통문을 출발한 차는 북방한계선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3분만에 통과했다. 북 구서통문에서 남방한계선을 지나 금강통문까지 오는 데 버스로 6분 거리다.

온정각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육로로 17km. 북쪽 무장군인들이 버스에 올라 검문하는 시간을 포함해도 4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통일전망대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8시간. 40분이면 가는 금강산 길을 우리는 그동안 50년 넘게 막혀 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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