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26회(5부 : 캠퍼스 연가 2)

-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1.31 15:31수정 2005.01.31 17:11
0
원고료로 응원
김형태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산은 계절에 상관없이 어느 때 오든 늘 좋은 것 같아요. 수려한 산세에다 단풍나무, 참나무 등 활엽수림이 울울창창하고, 그리고 저 아래 은선폭포와 같은 폭포며 담소가 기암절벽과 잘 어울리고‥


진짜 명산 중의 명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우리가 지금 보는 것처럼 이렇게 단풍이 절정인 가을과, 그리고 하얀 눈 소복이 덮인 겨울의 계룡산은 단연 그 중에서도 일품이고 백미지요."

나의 계속되는 계룡산 예찬에 이번에는 초희가 질문을 하고 나섰다.

"저기 저렇게 나란히 서 있는 두 탑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남매탑이지요?"

"네, 맞아요. 이상보 님의 '갑사 가는 길'이…."

"네! 저 탑요? 그럼 그 작품이 이곳을 무대로 쓴 거란 말이죠. 아! 그랬구나. 저는 몰랐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경이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네, 원래 이름은 오뉘탑, 또는 오누이탑이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남매탑으로 불렸대요. '갑사 가는 길'에서 나오는 것처럼, 호랑이 때문에 만나게 된 상원 대사와 경상도 처자가 애틋한 사랑을 불심으로 승화시켜 평생 오누이로 지내면서 불제자를 양성하다가 끝내는 함께 입적을 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내려오고 있죠."


나의 이러한 부연 설명에 진경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피력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평생을 오누이로 지냈다? 금방 아름답다는 표현을 썼는데, 과연 두 사람은 행복했을까요? 저 같으면 고통이었겠는데‥‥‥ 안 그래요?"

영희를 보고 말했다. 그러자 영희가 자기 생각을 말해 달라는 줄 알고 입을 뗐다.

"그래도 헤어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았겠어요?"

"아니죠,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면 차라리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걷는 게 백 번 낫지 무엇 때문에 같이 살아요. 마음 아프게. 안 그래요?"

영희가 동조하지 않자 이번에는 초희를 보고 동의라도 구하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글쎄요, 겪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제 생각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까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뭐랄까 위안? 위로감 같은 것은 받았겠죠. 그러나 그만큼 아쉬움이랄까 고통이랄까 뭐 그런 감정도 크지 않았겠어요?"

같은 전설을 놓고 이렇게 세 여자의 생각이 모두 달랐다. 그러자 노진이 결론을 맺듯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모두 달라지지 않겠어요? 사랑에도 육체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 그리고 종교적인 사랑까지 여러 가지 색깔이 있을 테니까요."



동학사에 도착한 우리는 삼은각, 숙모전, 초혼각 터 등 경내를 둘러본 뒤 사진 촬영을 했다. 내가 요청한 대로 노진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나중에 사진관에서 찾아온 그 사진을 보고 모두 놀라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왜냐하면 그 사진 속에는 나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 초희가 작은 인형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이냐고 재촉하듯 묻는 초희와 영희에게 나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사진을 합성한 것이 아니고, 조금 높은 곳에 초희씨를 서 있게 하고, 그리고 다소 낮은 곳에 내가 서서 초희씨 발 위치쯤에다 나의 손을 맞추고 손바닥을 위로 보이게 한 다음, 그대로 촬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마치 제 손바닥 위에 초희씨가 서있는 것처럼 보이는 되는 것이지요."

"맞아요. 손오공이 부처님의 손바닥 위에서 놀았듯이 초희씨도 이제는 철민이 이 녀석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구요."

노진도 한 마디 거들었다.

"뭐예요?"

하면서 초희는 살짝 눈을 흘겼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어쨌든 모두 하하하, 호호호 하며 한 바탕 파안대소(破顔大笑) 하였다.


며칠 후, 나와 초희, 그리고 노진과 영희가 문과대 독서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한철이 녀석이 갑자기 뛰어 들어와 다짜고짜 우리를 붙잡고, 지난 한글날 계룡산 등반에 자기만 빼놓고 다녀온 일에 대하여 투덜거렸다.

"야, 너희들 어떻게 의리 없게시리 그럴 수 있냐? 내가 아프다고 하면 한 주 정도 연기를 할 것이지. 그래 이 몸만 쏙 빼놓고 갔다 와. 그럴 수 있냐, 그럴 수가 있느냐고!"

내가 나서서 반박했다.

"그래 일단은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평일은 수업 때문에 안 되고, 또 주일에는 나와 영희씨는 교회에 가야하고 또 초희씨는 성당엘 가야 되잖아. 잘 알면서 왜 이래."

"그래 수업과 교회가 그렇게 중요하냐? 친구보다 더 중요하냐구. 한번쯤 빠지면 어디가 어떻게 되냐? 어디가 어떻게 되냐구?"

녀석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억지를 쓰는 데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더니, 노진이 나섰다.

"야 메뚜기, 너는 너답지 못하게 이미 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왜 그러냐? 이젠 돌이킬 수도 없잖아. 세월이 좀 먹냐? 또 날 잡아서 가면 될 것 아냐. 내장산이든 설악산이든 너 가고 싶은 데로 가자구."

"안 돼, 그때까지 난 못 기다려. 지금 가자, 따라와 빨리, 따라오라고!"

그러면서 녀석이 앞서 나갔다.

우리가 무슨 영문인 줄 몰라 대체 어딜 가자는 거냐고 묻자,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따라 오기만 하란다. 뭐 아주 근사한 데로 데리고 갈 거라나. 녀석을 따라 1층까지 내려가니 녀석이 갑자기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밖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27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