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야, 기다려. 아빠가 간다"

맛난 밥에 영지 다린 물 들고 아빠가 간다

등록 2005.01.31 23:28수정 2005.02.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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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9일)은 준수를 만나러 가는 날입니다. 돌아 보니 벌써 4개월이 다되어갑니다. 이젠 병원을 처음 찾는 분들의 병실 안내도 종종 할 정도로 익숙해졌습니다. 그래도 준수 녀석이 기대 이상으로 회복이 되어가고 있어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병원 갈 준비를 합니다. 병원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음식 문제입니다. 맛으로 소문난 음식이라도 오래 먹다 보면 싫증이 나게 마련입니다. 병원에서 주는 식사도 오래 먹다 보면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병원 음식의 또 다른 문제는 가격이 꽤나 비싸다는 데 있습니다. 한 끼에 8000원이나 하는 식비는 오랜 병원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됩니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취사가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이래저래 병원은 오래 있을 곳은 못됩니다.

이기원
병원 밥에 질린 준수는 주말에 아빠가 챙겨다 주는 밥이 더 맛있다고 합니다. 밥값이라도 아껴 보려는 마음에서 아내는 덩달아 밥을 많이 챙겨오면 좋겠다고 주문합니다. 그래서 병원 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허둥댑니다. 밥 한솥 지어 비닐 봉지 하나에 한공기 분량의 밥을 담아 묶습니다. 밥 담긴 봉지가 수북하게 쌓입니다. 이번엔 열두봉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한봉지 한봉지가 준수와 아내의 끼니가 됩니다.

영지와 감초를 넣고 끓인 물을 두병 준비했습니다. 준수가 병원에서 마실 음료입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영지를 넣어 끓인 물이 준수에게 좋다며 아내가 주문한 것입니다. 지난 밤에 미리 끓여 페트병에 담아 놓았습니다.

간병하는 아내의 몸이 많이 상했다며 장인 어른께서 한약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아내가 먹을 한약 일주일 분량을 담았습니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아내도 이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이제 잠자고 있는 광수를 깨웁니다. 병원에 가야 엄마와 형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주말마다 광수를 데리고 갑니다. 병원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걸 아는 광수는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챙겨 입습니다. 그리고 식탁에 마주앉아 간단히 요기를 합니다. 새벽밥이 꿀맛일 수는 없습니다. 입맛이 없어도 꼭꼭 씹어 많이 먹으라고 다독입니다.

이제 병원에 갈 준비는 다 끝냈습니다. 준비한 것을 가방에 담아 짊어지고 밥은 종이 가방에 담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저도 하나 들겠다고 광수가 종이 가방을 끌어당깁니다. 이제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면 6시 50분에 출발하는 동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허둥대며 겨우 시간 맞추어 나섰지만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준수와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번 주말에 준수는 아빠를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집을 나서며 준수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준수야, 기다려. 아빠가 간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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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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