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초도 죽뻘에 뿌리는 희망

새만금 4공구가 막힌 후...어민들이 기댈 곳은 갯벌과 바다뿐

등록 2005.02.02 18:33수정 2005.02.05 13:0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4공구가 막힌 후 모습

4공구가 막힌 후 모습 ⓒ 김준

입춘을 앞두고 동장군이 제법 성을 내는 모양이다. 내초도 앞 갯벌을 찾던 날 그곳 갯벌도 얼어 있었다. 새만금 사업으로 방조제 안쪽의 조류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동진강과 만경강에서 내려오는 강물로 염도가 낮아져 과거에 비해서 곧잘 갯벌이 얼고 있다는 어민들의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갯벌이 어는 날이면 생합을 잡는 그레질도 공치는 날이다.


전주와 군산을 잇는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다 보면 군산비행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군산시가 만들어 놓은 새만금방조제를 알리는 대형표지판 ‘새만금 방조제, 천지개벽 33km’이 시야에 들어온다. 천지개벽의 사전적 의미는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생겨남’, ‘자연계나 사회의 큰 변동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렇다. 새만금으로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바다의 자궁이자 생명의 근원인 갯벌에는 분명 변동의 조짐인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의 상처 속에 한국 사회에 구조적 모순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작은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분명 새만금은 ‘천지개벽’임에 틀림없다.

새만금 사업에 대한 재판부의 ‘권고안’이 발표되자 환경단체와 어민들은 ‘환영’의, 정부(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는 ‘거부’의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전라북도와 새만금 사업을 찬성하는 단체들은 정부의 거부 의사에 지지를 보내 ‘새만금 사업 조속한 완공을 위한 궐기대회’를 개최하거나 준비 중이다.

그리고 부안에서는 새만금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려 부안수협 앞 반핵광장에서 다시 촛불집회를 시작했다. 반면에 새만금신구상회의측은 ‘부분매립, 해수유통’이라는 ‘신구상안’을 내놓고 법원의 권고조정안을 받아들여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a 2004년 개최된 제 1회 새만금 마라톤이 4공구 방조제 위에서 개최되었다.

2004년 개최된 제 1회 새만금 마라톤이 4공구 방조제 위에서 개최되었다. ⓒ 김준

이쪽이나 저쪽이나 절망!


4공구가 막히면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지역은 군산시 내초도(內草島)일 것이다. 내초도는 새섬 또는 초도라 불렸는데 전라남도 지도군에 속했지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옥구군 미면에 속하였다.

1900년대 초에 조사된 한국수산지(1908)에는 15가구 40여명이 살았고 어선 3척과 어전(漁箭) 3좌를 가지고 주로 봄철에는 준치와 새우 등을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내초도는 120여 가구에 35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새만금은 부안과 군산을 연결하는 33km 방조제 공사로 시작되었지만, 사실 1970년대 부안의 ‘동진강간척사업’과 군산의 내초도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방조제를 만들어 조성한 ‘지방산업단지’ 조성에서 그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새만금 4공구가 막히기 전까지 내초도는 마을 앞 갯벌은 물론 간척지 논까지 가지고 있어 제법 넉넉한 생활을 한 마을이다. 4공구 이후 쌓이는 죽뻘(죽은 갯벌)을 감당하지 못한 갯벌생물들이 하나 둘 내초갯벌을 떠나고 최근에는 보이지 않았던 칠게들이 보이고 있다.

지금은 경운기는 물론이고 사람도 갯벌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생합은 물론 흔히 볼 수 있었던 맛, 모시조개 등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주민들은 바다에 나가기 어려워지면서 인근 공장에 막일을 하러 나가거나, 인근 쓰레기 매립장에 분리수거 일을 하고 있다. 봄이 되면 일부 주민들은 잔디나 나무 등을 심으러 다니고 있다.

배를 가지고 바다에 나가는 사람들도 대 여섯 명 있지만 요즘 한철인 숭어가 1kg에 1천원 거래되고 있어 예년에 4-5천원에 비하면 형편없는 가격이다. 이것도 사가는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내초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장 문영호씨는 재판부의 새만금권고안 이후 주민들은 더욱 실망하고 있다고 전한다.

“내초도는 권고안도 가망이 없다. 권고안으로 하더라도 아무런 혜택이 없어요.”
“다리를 놓고 물류단지로 만든다고 해도, 비응도에서 군산비행장까지 막아 물류단지를 만든다는데 가망이 없어요. 내초도는 이것도 틀렸고, 저것도 틀렸고 절망이에요.”
“환경운동단체도 지난번에 내초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데요. 반대운동도 하고 그랬는데.”

문 이장의 표현대로 생각한다면 재판부가 제시한 두 가지(방조제 완공, 해수유통) 모두 내초도 주민들에게는 대안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얼마간 새만금 반대 집회에도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작은 희망을 가졌던 주민들은 재판부의 권고안을 보고서 이제 절망하고 있다.

주민들은 누구보다 갯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해수유통이 된다고 하더라도 내초갯벌에 다시 생업을 위한 갯벌 생물들이 돌아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한다는 것을.

갯벌에 다니는 주민들은 대부분 50대 후반부터 70대에 이르는 여성들이었다. 이들이 갯일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번 권고안 이후 방송사들이 내초도를 찾아 방송 준비를 하지만 이를 대하는 주민들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문 이장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권고안에 특별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라고 한다.

a 개발 이전의 비응도항

개발 이전의 비응도항 ⓒ 김준


a 새로 조성중인 비응도 항

새로 조성중인 비응도 항 ⓒ 김준

고기를 잡으며 살 수밖에 없다

내초도는 그래도 마을이 남아 있다. 새만금 사업의 군산 시작점에 해당되는 비응도는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마을이다. 1980년대 군장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오식도와 비응도가 연결되었고, 새만금사업으로 비응도, 야미도, 신시도가 연결되었다.

특히 비응도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개별 이주한 상태이다. 2003년 비응도를 방문할 때는 마을 앞에 임시로 지은 가건물 횟집에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2004년 1월에 방문했을 때 마을 앞까지 들어오던 바닷물이 새로 조성하는 선착장 사업으로 물길이 끊기고 군데군데 돌무덤이 금방이라도 횟집을 쓸어버릴 듯했다.

2005년 비응도를 방문했을 때 거기에는 마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초도에서 비응도까지 포장된 아스팔트가 생경스러웠다. 불법(?)으로 운영하던 횟집이 철거된 것은 2004년 5월이었다. 보상에 불만족스러워 하며 남아 있던 10여 가구의 주민들도 함께 비응도에서 나와야 했다.

대부분 주민들은 군산에 거처를 마련하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주민들은 아직도 배를 가지고 바다로 나가고 있다.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주민들은 ‘어촌계’라는 이름으로 63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선착장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고군산군도나 북서풍을 막을 수 있는 곳에 배를 대피시키고 있다. 언제가 다시 모여 바다에 나가고픈 소망을 간직한 채.

사실 비응도의 주민들이 보상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보상금을 가지고 군산과 전주를 비롯해 거처를 마련했지만 평생 배운 것이 바닷일인데 집만 가지고 살 수 없었다. 이일 저일 해보다 실패하고 심지어는 보상금마저 날리고 고향을 찾았다.

아직은 배를 댈 만한 선착장과 그물을 칠만한 어장이 있었고 하나 둘 바닷가에 가건물을 지어 횟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철거될 때까지 30여 집이 그곳에서 횟집을 운영했다.

어촌계장을 맡고 있는 심중보씨는 비응도에서 나오면서 횟집을 운영하던 주민들은 새로 만들어지는 ‘비응도관광어항’에 입점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관광어항 조성사업은 군산항이 쌓이는 퇴적물과 간척사업으로 시가 확대되면서 군산항이 내항에서 외항으로 이동하고, 이제 새만금 사업으로 비응도를 대체어항으로 개발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새만금 사업과 함께 관광 및 유통 중심의 미래지향적 다기능 어항의 개발, 새로운 휴식공간 창출 요구가 맞물려 ‘비응관광어항’을 개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a 군산항이 이렇게 옮겨왔다.

군산항이 이렇게 옮겨왔다. ⓒ 김준


a 비응도관광항 개발사업을 담당할 피셔나라와 동양고속건설

비응도관광항 개발사업을 담당할 피셔나라와 동양고속건설 ⓒ 김준

그래도 갯벌을 기웃거린다

내초도 갯벌에는 2년 전부터 갯벌을 가로질러 건설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하수구 통 같은 플라스틱 통이 묻히기 시작했다. 이제는 비응도, 오식도, 내초도, 수라 마을에 이르는 군사일대의 대부분 갯벌을 덮고 있다.

이 플라스틱 통은 칠게를 잡는 새로 고안된 ‘함정어구’이다. 지름 20cm, 길이 4m 정도의 통은 한쪽을 절개해서 갯벌에 묻어 놓고 날물로 갯벌이 드러나면 그곳에 빠진 칠게들을 걷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칠게잡이는 4년 전부터 부안 불등, 돈지, 계화에서 시작되어 김제갯벌을 거쳐 이곳에 까지 이른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내초도 갯벌은 모래갯벌로 칠게들이 서식하지 않았던 갯벌이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가리맛과 모시조개가 백합을 대신했고, 작년 초반까지 그래도 간간히 모시조개로 생활을 하던 어민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 찾은 내초도 갯벌에는 겨울 탓에 갯벌에 나가는 사람이 적었겠지만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칠게를 잡는 플라스틱 통에서 바가지로 칠게를 걷는 어민 두 사람과 시험삼아 바지락 종패를 뿌려놓고 상태를 확인하는 어민 한 사람을 만날 있었다.

칠게를 잡는 사람들은 이곳 주민들이 아니라 대부분 김제 등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칠게는 1kg 6-7천원에 거래되지만 그 정도를 잡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통을 따라 갯벌을 10여 km 이상 걸어야 할 만큼 힘든 일이다.

a 내초갯벌의 칠게잡이

내초갯벌의 칠게잡이 ⓒ 김준

특히 비응도가 고향인 젊은 어민은 쌓여가는 죽뻘의 한 구석에 그물로 구획을 만들어 바지락 양식을 하고 있다. 물론 허가를 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막힐지 모르기 때문에 막하기 전까지 해볼 요량으로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 10t 정도의 바지락을 살포했는데 50% 가량이 죽고 50%가 살아남아 가능성을 확인하고 살아있는 바지락을 캐서 골고루 뿌리고 있었다.

“이 둑막이 공사하고 나면 이 안에다가 확실하게 어떤 용지로 (사용할지) 결정난 것이 아니고 논으로 만들어도 둑 만들고 염분을 빼서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바지락은 2년 정도면 상품화가 되요. 이렇게 막히니까 해일도 없을 거고. 작년에 시범적으로 뿌려나 봤어요.

(내초갯벌의) 다른 데는 조개 하나도 없어요. 해일도 없고 바람도 막아주고 해서 시험적으로 10t 정도 뿌려 놔 봤는데. 여름에 50% 폐사하고 산 놈 다시 캐서 저쪽으로 뿌려보고 있어요. 이게 성공하면 주민들이 새만금 막기 전에 해먹을 수 있죠.”

그 어민은 만약 바지락 양식에 성공한다면 비응도, 내초도 어민들이 방조제가 막히기 전까지는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희망을 갖고 있었다. 방조제가 있어 해일도 막아줘 더욱 안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방조제 내부의 용도에 대해서 확실하게 계획이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막는다고 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2년 정도 양식하면 상품성이 있는 바지락은 해볼 만 하다는 것이 어민의 생각이었다. 특별히 다른 생업을 갖기 어려운 주민들이 의지할 곳은 여전히 갯벌과 바다이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