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X파일'사건의 문제점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55)-생활 속에 실천하는 보안

등록 2005.02.04 06:03수정 2005.02.0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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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파일, 이름부터 거창한 이 단어는 물론 특급 비밀을 의미하는 약어다. 그러니 절대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공개되어서는 안 될 X파일이 인터넷상에 나돌아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렸으니 X-File이란 단어가 부끄러울 밖에.


선정주의로 실종돼버린 사건의 진상

새해부터 일파만파로 퍼졌던 <광고 모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사외 전문가 인터뷰 결과 보고서>, 일명 '연예인 X파일' 파문이 이제 좀 진정되는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관련 당사자 내지는 피해자들의 소송이 시작되지도 않은 상태지만 일단은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어진 것만으로도 볼 때는 어느 정도 세차게 흔들렸던 격랑의 수위가 잠잠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간의 '연예인 X파일'관련 보도들을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도대체 사건의 진상은 실종되어버리고 그 보고서 중의 가장 대수롭지 않게 언급되었던 연예인들의 뒷소문에 관련된 이야기와 인터넷상의 사생활 침해문제에 대해서만, 그 내용도 분석적이기보다는 거의 가십거리 수준으로 취급된 측면이 많았다.

오죽하면 직접 X파일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웬만큼 연예관련 소식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X파일 관련 뉴스만 봐도 대략 어느 연예인일지 짐작이 될 정도로 소문 관련보도에 대해 지나치게 상세한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X 파일 속에 정작 보도 안 된 또 다른 쇼킹한(?) 내용이 더 있지 않을까하는 호기심을 유발시켜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2차 범죄자로 만들 정도이니 이쯤 되면 범죄의 동기를 유발시킨 선정주의적 보도 탓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우리나라 언론들의 선정성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도 대중의 흥미를 유발시킬 만한 연예인 소문에 대해 너무 집중하다보니 정작 이 연예인 X파일 누출 사건의 진상, 즉 누가, 어떠한 경위로, 어떻게 누출시켰는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즉 사건의 주범은 이미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고 X파일을 은밀히 구해보려는 종범들만 우글우글한 실정이라고나 할까?


아이러니하게 각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연예인 X파일을 2차로 인터넷에 올리거나 다운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문구와 함께 말이다.

도대체 누출한 범인은 누구인가?


물론 경찰의 조사가 끝나야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X파일을 누출한 범인은 J기획이 조사를 의뢰했던 D리서치의 직원이라는 사실 말고는 왜 그 직원이 그런 유출을 시도했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누출했는지, 심지어는 지금 경찰에 자료를 최초로 유출시킨 직원이 구속되어있는지 여부조차 무성한 설 만큼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나는 X파일의 내용보다는 X파일을 맨 처음 유포시킨 그 직원의 심리상태가 매우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는 왜 그 자료를 외부로 누출시켰을까? 아르바이트생이라면 그런 자료에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니 정식 직원, 그것도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직원이었을 텐데 더더군다나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것 같아 보이는 허술한 자료를 무슨 이유로 사외로 유출시켰을까? 또 유출 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도 궁금하기 그지없다. 메일? 메신저? 아니면 인터넷게시판?

왜냐하면 직원 스스로의 단순한 부주의나 사적인 호기심으로 자료가 유출되었다고 보기엔 너무나 고의성이 다분해 보일 뿐 아니라 유출과정에서 리서치회사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보안적인 요소가 너무 취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리서치 회사에 있어서 보안 유지는 곧 바로 조사기관의 신뢰도와 매출과 직결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어떤 회사에서 신상품에 대한 소비자 호응도조사를 의뢰했다고 가정해보자.
조사를 의뢰받은 리서치 회사는 우선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조사결과를 설문 대상자 표본을 만든 후 그 표본 집단에 맞춰 설문조사를 하고 조사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때 설문 조사에 응했던 응답자에 대해 본의 아니게 수집된 개인 신상정보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 등) 또한 수치화시키거나 계량화하는 데만 철저히 이용할 뿐 취재원의 비밀보호에 완벽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조사기관의 기초적인 상식이다.

만약 부주의로 경쟁사에 아직 출시되지도 않는 신상품 정보라든가 조사결과, 조사자 정보가 이번 연예인 X파일 사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클라이언트사의 경쟁사에게 유출된다면 조사를 의뢰한 회사는 곧바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출되어서는 안 될 자료가 유출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번 피해를 책임져야할 대상은 누구일까?

파일 유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관련 연예인들의 입장이라면 물론 자신의 동의 없이 이러한 종류의 소문 모으기를 의뢰한 J기획이 가장 괘씸하므로 당사자에게 동의를 받거나 알리지 않고 개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 자체부터가 인권침해라는 점에서 J 회사가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광고모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목적으로 조사를 의뢰했는데 의뢰했던 내용과 달라 퇴짜를 놓고 재조사를 의뢰했다는 점에서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자료를 두고 광고모델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라는 목적 자체에 대해 개인인권침해니 하는 식으로 책임을 묻기에는 자료가 너무 부실하다. 왜냐하면 J기획 측에서는 자신은 광고모델로서의 연예인 개개인의 능력과 발전가능성, 재능에 대한 치밀한 분석 자료를 요구했지 연예인들의 소문 같은 것을 조사해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발뺌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 3자적인 입장에서 볼 때 사건의 1차적인 책임은 이런 엉터리 소문을 불법적으로 수집하여 함량 미달의 이상한 자료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또 자료 보안 자체를 허술하게 한 리서치 회사에게 있다고 본다. 특히 일방적으로 비난 받고 있는 조사를 의뢰한 기획사와 인터뷰에 응한 당사자들은 생각지도 않던 이상한 자료가 유포되어 발생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해 리서치회사에 대해 배상 청구를 해야 할 판이다.

과연 자료 유출을 막을 수는 없었나?

하기야 요즘 같은 개인정보 유출이 위험 수위를 넘은 디지털 세상에서는 동사무소 공익근무요원의 치기 어린 호기심만으로도 이사도 가지 않은 주민등록지가 이전되지를 않나 미혼인 여자연예인이 갑자기 혼인신고가 되는 등의 심각한 해프닝이 종종 발생하는 정도이니 "열 명의 사람이 한사람의 도둑을 지키지 못한다"고, 유출한 직원의 도덕성이 문제이지 회사의 보안문제는 양호한 것이라고 D리서치회사는 강변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D 리서치회사는 직원의 자료 유출을 사전에 막을 수 없었을까?

내가 보기에 이 회사의 보안의식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단적인 예로 하다못해 파워포인트 파일 자체에 간단한 암호 하나라도 지정해놓았다면 비록 직원 개인의 고의적인 유출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암호를 모르면 내용을 열어볼 수 없으니 이렇게 심각할 정도로 급속하게 퍼지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암호 설정기능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OA프로그램(워드, 한글 2002, 엑셀, 파워포인트 등) 자체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매우 쉽고 간단하게 숫자암호를 지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기능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은 파일을 열 때마다 매번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번거롭기 때문이다. 비밀번호를 잘 알고 있다면 그래도 괜찮지만 이 암호 저 암호 워낙 많은 암호 속에 파묻혀 살다보니 시간이 흘러 당시 설정해놓았던 비밀번호를 알 수 없을 때는 정말 진땀 빼는 일을 겪게 된다.

그만큼 우리 스스로도 보안의 중요성보다는 당장에 겪는 번거로움을 더 불편하게 생각하는 편이니 이쯤 되면 우리 스스로의 보안의식은 0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암호기능에 대해 언급하는 나 스스로도 평상시에는 거의 암호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공적으로 유출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회사 비밀문서일 경우에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 마련을 위해서도 좀 불편하더라도 철저하게 암호기능을 사용하는 것이 비밀자료를 취급하는 담당자의 최소한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그처럼 간단한 암호설정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아니 어쩌면 회사에서는 개인의 정보를 비밀리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집한 이번 자료 자체가 그다지 비밀문서라는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 중요한 문서를 왜 특정한 저장매체에 보관하여 관계자 이외에는 접근할 수 없게끔 보관해야 할 터인데 왜 작업 PC 하드 여기저기에 방치해두었을까? 여기서 보안의식의 허술함이 또 다시 드러난다고 본다.

디지털 세상에서 정보는 곧 돈이다. 우리가 잠자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적으로 정보를 빼내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승부가 더욱 더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승부에서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특히 원본 그대로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의 특성상 종이시대와는 다른 보다 높은 차원의 보안의식과 보안태세가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는, 생존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한마디로 생각지도 않았던 이런 저러한 것까지 신경 써야 하니 정말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번 사건이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되어버렸지만 이번 연예인 X 파일 유출사고가 무감각해진 대다수 사람들의 보안의식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 55번째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 55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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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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