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보' 선생님입니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76) 이제는 지방화 시대다 5 - 쌀보리 공부방

등록 2005.02.05 08:57수정 2005.02.0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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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을 지키는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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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쌀보리 공부방' ⓒ 박도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시골에서 다녔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애초 어린 시절에 내 꿈은 시골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런데 자라면서 그 꿈은 바래져서 초등학교보다는 중·고등학교, 시골 교사보다 서울의 교사가 되고자 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교사 초임은 시골 중학교에서 시작했으나 교사 생활 대부분을 서울 도심에서 보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시골과 도시의 교육을 두루 잘 아는 이가 아닐까 하는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이 글을 쓴다. 또 우물 안에서는 그 우물이 맑은지 흐린지도 잘 모르다가 우물 밖에 나온 다음에야 그 물의 청탁을 안다는, 일선 교육에서 떠났을 때 오히려 우리 교육의 문제가 더 잘 보인다는 역설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농업 및 어업 기본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3년 말 농촌 인구는 353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7.4%요, 어촌 인구는 21만여명으로 전체인구의 0.4%라고 한다.

지난 1993년 말 대비 10년 동안 농촌 인구는 34.7%가, 어촌 인구는 29.8%가 감소했다. 이와는 달리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오히려 20.1%가 증가하여 같은 기간 15.0%에서 27.8%로 농가 인구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노인이다(한겨레 2004. 2. 27).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50년대는 농촌 인구가 전체 인구의 70%라고 했는데 그새 농촌의 인구가 거의 1/10로 줄어드는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면 곳곳에 폐가가 된 집이나 폐교가 된 초등학교 건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먹고 살기 위해서나 자녀 교육을 더 잘 시키고자 조상 대대로 살았던 땅을 등졌다.

이는 마치 금광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들었던 1840년대 미국 서부개척사의 골드러시(gold rush)를 연상케 할 정도로, 최근 30~40년 사이 사람들이 농어촌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런 현실에 여태 농촌을 지키거나 새로이 도시에서 시골로 찾아든 젊은이들은 ‘바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농촌을 지키는 파수꾼들로 거룩해 보인다. 여기서 ‘바보’란 “바라볼수록 보고 싶다”의 준말로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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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보리 공부방 아이들 ⓒ 박도

횡성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쌀보리 공부방’을 취재하러 가면서 아내는 안흥찐빵 집에 들러서 찐빵 세 상자를 샀다. 한두 상자나 살 것이지 웬 세상자나 사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40여명인데 이 정도는 사다 줘야 간식이 된다고 했다.

농촌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쌀보리 공부방은 지방자치단체의 배려로 옛 소방서 건물 2층을 아주 싼값으로 빌려서 쓰고 있었다. 한창 겨울방학 중인데도 이곳에는 방학이 없었다. 내가 찾은 날은 화요일로 이날은 사물놀이를 배우는 날이었다. 30여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치는 꽹과리 장단에 맞춰 저마다 북과 장구를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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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겨운 사물놀이 시간 ⓒ 박도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치자”

잠시 쉬는 시간에 장구를 배우는 이선혜(12·횡성초4) 어린이에게 물었다.

“재미있어요?”
“예, 아주 즐거워요. 공부방에는 4년째 다니고 있는데 요즘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어서 더 재미있어요. 지난해에는 한마음음악회에도 출연했어요.”

작은 북을 두드리던 한채연(8·횡성초1) 어린이도 공부방에서 배우는 게 마냥 즐겁다고 했다.

쌀보리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한영미(39) 횡성여성농업인센터소장은, 농촌을 지키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치자”는 표어 아래 공부방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쌀보리 공부방은 군내 농업인 자녀로 각 초등학교 학생 가운데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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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보리 작은 도서관' 서가 ⓒ 박도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가르치는데, 월요일: 수학과 책읽기 그리고 맞춤법, 화요일: 사물놀이, 수요일: 만들기, 목요일: 그리기, 금요일에는 수학과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학기 중에는 오후 2시부터 6시 30분까지, 방학 중에는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지도한다.

아울러 쌀보리 작은 도서관도 꾸며서 아이들의 독서 지도뿐 아니라, 학부모를 위한 ‘동화 읽는 어른모임’도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운영한다고 했다.

공부방 운영비는 처음에는 농림부에서 지원 받다가 요즘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하는데 늘 모자르다고 했다. 실제로는 대여섯분의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두 사람의 강사료밖에 나오지 않기에 그걸 쪼개서 나누다 보니 선생님들의 수고료는커녕 교통비도 안 되는 실정이다.

그래서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회원들이 천연염색, 한지공예와 같은 수익사업을 벌려서 공부방 운영비를 보태고 있는데 그래도 힘이 부치는 상태다.

전국의 농어촌을 되살리고 아이들의 공부방을 더 내실화시켜서 교육 때문에 농촌을 떠나는 일을 막게 하려면 농촌 교육기관의 지원 현실화가 급선무라고 한 소장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여기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읍내 아이보다 산골마을 아이들이 더 많다. 이 아이들은 공부방에서 일일이 승합차로 데려오고 데려다 준다. 그래서 교통비와 간식비로 그동안 1만원을 받다가 최근에는 도저히 운영할 수가 없어서 2만원으로 인상했는데 이마저도 부담이 되는 집이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통비와 간식비를 일반 학원비로 생각하는 일부 학부모님 가운데는 선생님들이 봉사하는 줄도 모르고 값싸게 여기는 것 같아서 무척 속상할 때도 있었다고 맞춤법과 책읽기를 지도하는 오숙민 선생님은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대도시의 일부 강사 가운데는 과외비가 비싸야 더 잘 가르치는 줄 여기는 세태이기에 입시 대목에는 천정부지로 높인다는 말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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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아이들 ⓒ 박도

사물놀이와 그림을 지도하시는 김의자(69)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사로 퇴직하신 후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데 “이 나이에도 봉사할 곳이 있어서 즐겁다”는 말에 머리가 숙여졌다.

1학년 학생을 지도하는 최경순 선생님은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한 분으로 천진난만한 시골 아이들과 지내니까 당신도 모르게 순수해진다면서, "이제는 교육을 위해 오히려 도시 사람들이 시골로 와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아이들에게 한지공예로 농촌 아이들의 미적 감각을 길러주는 김선희(40) 선생님, 사회복지관에서 봉사하면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조은영(43) 선생님, 아이들의 간식을 일일이 챙겨 주고 공부에 불편함이 없도록 뒷받침해 주는 김병선 사무국장, 군내 곳곳을 누비면서 아이들을 일일이 데려오고 데려다 주는 윤종상 기사, 이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보면서 나의 지난 이기적 삶을 되돌아보니 너무 부끄러웠다.

자연보다 더 큰 스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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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민(공근초1) 어린이, 장래 연예인이 꿈이랍니다. "저 예쁘지요" ⓒ 박도

“사실은 이런 공부방도 없는 사회가 돼야 해요. 아이들이 저네들끼리 마음껏 뛰놀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게 ‘참 교육’일 거예요. 하지만 지금의 농촌에는 아이들을 돌봐줄 분이 없는 한 부모 가정이나 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길러지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래서 공부방 선생님들은 공부도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그들의 친구가 되어 재미있게 놀아주고, 아이들은 공부방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터예요.”

한 공부방 선생님의 말이었다.

큰 나무는 온실이 아닌 산이나 들에서 자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나라는 교육문제와 농어촌 문제로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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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보리 공부방의 명물, 안 오면 걱정되고 오면은 골치 아픈 송현진(왼쪽, 성북초4) 민태원(정금초3) 개구쟁이들 ⓒ 박도

자연 속에서 자연을 따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 옛날부터 동양이고 서양이고 자연보다 더 큰 스승은 없었다. 자연을 배우고 자연을 따라 살면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된다.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아름답고 참된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반대로 자연을 배반하고 거역하면 사람은 병들고 스스로 망한다. 자연이 없는 교육은 죽음의 교육이고, 자연을 떠난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이다. -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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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을 지키는 '바보' 선생님들(앞줄 왼쪽부터 한영미, 김의자, 윤종상, 뒷줄 왼쪽부터 김병선, 조은영, 오숙민, 최경순 선생님) ⓒ 박도

덧붙이는 글 | '쌀보리 공부방' 연락처 : 033-345-2468

덧붙이는 글 '쌀보리 공부방' 연락처 : 033-345-2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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