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오늘은(2월 6일) 재활병동 밖으로 나갔습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엄마 손을 잡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던 녀석이 지팡이 짚고 걷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자세도 굉장히 좋아지고 발걸음도 제법 가볍습니다. 물론 경사진 곳이나 계단을 만나면 아직도 다리를 후들대며 엄마의 도움을 청합니다.
걷는데 열심인 준수의 뒤를 따르며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준수가 저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
"그래, 그동안 당신 고생 많았어."
"나만 고생했나 뭐. 준수도 광수도 자기도 다 고생했지."
물론 척수종양의 가혹한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해온 준수의 고생이 제일 심했지요. 하지만 곁에서 간병을 해온 아내의 고생 또한 많았습니다. 준수 녀석이 만만하게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고 매달릴 수 있는 대상이 병실에 있는 엄마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때로는 쉬고 싶은 엄마에게 떼를 쓴 적도 짜증을 낸 적도 많았답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준수의 떼와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주고 감당을 하다보면 울컥 화가 치밀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힘들어 죽겠으니 아파도 좀 참으라고 윽박지를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내의 짜증은 울먹이며 던진 준수의 한마디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답니다.
"얼마나 아픈지 엄마가 알기나 해?"
그러던 녀석이 이제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다닙니다. 그런 녀석의 뒤를 따르며 농담처럼 한마디 던집니다.
"준수야, 좀 천천히 걸어. 숨이 차서 못 따라다니겠다."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앞서 걷던 준수도 돌아보며 웃습니다. 형의 주변을 맴돌며 따라가던 광수도 씨익 웃습니다.
아직도 날씨는 쌀쌀한데 녀석은 자꾸 외투를 벗고싶어 합니다. 외투가 무거워서 힘들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걷는 것 같지만 아직도 외투의 무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감기 걸리면 안 된다고 그냥 입고 걸으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