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짜리 동전을 던져서 따먹는 게 어찌보면 가장 공정한 시합이었다.김규환
바닥에 좌악 깔려 있는 동전을 긁어모으는 상복이는 마냥 신이 나 있다. 종이 울릴 때까지 돈 따먹기가 계속되었다.
“땡땡땡! 땡땡땡! 땡땡땡!”
수업을 알리는 종이 세 번씩 반복해서 울렸다. 공부가 시작되었지만 아이들은 어서 종이
“땡땡땡” 세 번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2, 3교시를 거쳐 점심때가 되자 나물과 부침개 등 설에 남은 음식을 허겁지겁 밀어 넣고 햇볕이 내리쬐는 뒤뜰로 몰려나가 동전 던지기를 계속했다. 여럿이 왔다 갔다 하는 통에 땅이 질컥거린다. 흙이 녹아 손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우리가 짤짤이와 돈치기로 며칠을 보낸 동안 여자 아이들에겐 평화로운 시기다. 남자애들을 피해 멀찌감치 떨어질 필요도 없이 고무줄놀이를 즐기니 이때 한번 고무줄을 맘 놓고 접었다 돌리고 휘감아 재주를 한껏 부려보니 얼마나 다행인가.
교실 대청소 하는 날
선생님들은 며칠간 설을 쇠고 온 뒤끝이 개운치 않은 건지 서둘러 수업을 마쳤다. 오후 세시가 조금 안 된 시각 6학년, 총 여섯 반 첩첩산중 산골 학교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손 걸레를 꺼내 청소를 서둘렀다. 학년마다 거의 동시에 책걸상을 한 곳에 모으느라 마룻바닥 끄는 소리에 교정이 천둥치듯 요란스럽다.
책상 위에 걸상을 올려놓고 일부는 먼지떨이를 들고 유리창으로 달라붙었다. 먼지를 털고 창살에 양다리를 올려 위에서부터 아래로 입김을 호호 불며 마른 걸레를 돌려가며 닦는다. 아래로 내려와서는 퍽석 엉덩이를 깔고 앉아 다리를 흔들며 유리창을 껴안고 닦는다.
나는 3학년 부급장이라 그날그날 상황과 기분에 따라 구역이 다르다. 유리를 닦기도 하고 바깥으로 나가 휴지를 줍는 걸 돕다가 같이 놀기도 한다. 교실 바닥 걸레질을 할 때도 있다. 몇몇은 바깥 운동장으로 나가 휴지를 줍고 낙엽을 쓸어 모아 들것에 담아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청소도 서열이 있는지라 겨울에는 유리창 청소가 제일 편하고 그 다음이 엎드려서 마루를 닦는 바닥 청소다. 이 두 가지는 청소시간에도 난로가 활활 타고 있으니 추위는 피할 수 있어 좋다.
바깥 청소는 가장 한직으로 거의 헤지거나 든든한 윗옷 하나 걸치지 않은 행색이며 양말도 신지 못한 아이들에겐 피하고 싶지만 선생님께 한마디도 꺼내지도 못하는 아이들 주변머리와 급장에게 밉보여 밖으로 쫓겨난 아이들에겐 중강진이나 아오지 탄광쯤으로 여겨도 되는 서러운 곳이다.
달달거리며 자글자글 주전자 뚜껑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온화한 기운이 감도는 교실청소는 물청소를 해야 하는 여름, 가을철과 달리 겨울과 봄에는 우물에 달려가 빨아올 필요마저 없었다.
일단 실내가 정돈되면 비질을 하여 먼지와 휴지, 지우개밥과 끊어진 연필심을 쓸어 모으고는 분단별로 정해진 아이 한둘이 초를 한번 빠짐없이 득득 칠한다. 선생님이 구해놓은 네모난 양초가 떨어지면 분단장 책임아래 집에서 쓰던 초를 가져와야 한다.
가로세로 앞뒤로 마구 돌려가며 칠하면 그 다음엔 마른 걸레로 교탁 쪽에서 환경미화 게시판 쪽으로 엉거주춤 엎드려 몇 번을 쏜살같이 내달린다. 아이들이 서로 일찍 끝내려고 내달리는 통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미끄럽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본격적으로 교실이 한 번 더 소란스러워지는 건 각자 갖고 있는 소주병을 꺼내와 바닥을 빈틈이 없이 오밀조밀하게 병 바닥을 문질러댈 때다.
“득득”
“드글드글”
이를 잡듯 빠짐없이 앞으로 밀고 좌우로 회전하면서 전진을 거듭한다. 마음씨 착한 아이들이라 눈치를 보는 법이 없이 분단 경계를 조금씩 넘나들기도 한다. 뒤따르던 아이들이 한 번 더 훑고 지나간다. 간혹
“쨍!” 병끼리 부딪히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꾹꾹 힘을 줘가며 문질러주고 돌려댔던가 여태까지 그냥 밋밋했던 바닥이 관솔이 배긴 것처럼 색깔이 더 짙어지고 나무 결이 확연히 드러나 윤기가 흐른다.
중간에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잘들 하고 있냐? 오늘은 후딱 파해줄 것인께 싸게싸게 해치워라. 알았쟈? 글고 야, 춘자야 너 땀 안 나믄 집에 못 간께 알아서 혀라, 알았제?”
“예.”
춘자는 선생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알아들었다. 열심히 닦았지만 땀이 나지 않은 건지 허벅지에 알이 배기도록 닦고도 곧 울음보가 터질 기세다.
“야, 춘자야 그만 혀라.”
“선상님이 이마빡에 송글송글 땀이 안 나믄 집에 못 간다고 혔는디….”
“야 이 가스나야, 열심히 닦으란 말이제 시방 선상님이 진짜 그런 것이 아닌께 찬찬히 혀. 글고 인자 곧 끝난께 정리혀라.”
남녀 구분 없이 나일론 양말에도 양초가 끼어 앞뒤 벽에 의지하지 않고는 미끄러지고 고꾸라져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앞에서 굴려 끝까지 가고 뒤쪽에서 다시 굴려 앞까지 단박에 걸레를 밀고 간다. 얼마나 문댔을까. 도저히 서서는 다닐 수 없는 바닥이다. 빙판이 이렇게 미끄러울까. 남자 아이들 몇몇은 얼음판 위에서 쭉 미끄러지듯 미끄럼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