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에 저런 빨간 감홍시를 꺼내 옆방에서 쏙쏙 빨아댔으니 잠이 오겠습니까?김규환
안동포 못지않은 ‘돌실나이’ 주산지 곡성군 석곡면 뒤편인 화순군 북면 평지(平地)는 평지(平地)가 아니다. 양지, 방촌이 오산면, 겸면, 삼기면 뒷자락이라면 물길이 다른 송단, 강례, 검덕굴, 대판을 거쳐 평지에 이르면 ‘골안칠동’ 중 맨 끝이다. 산 속에 파묻힌 곳이랄까.
현재 남아 있는 양지, 방촌, 송단, 강례, 평지 가운데 가장 작은 마을로 가호가 가장 많을 때 20여 호 밖에 되지 않았다. 곡성군 방향으로 백아산 끝자락에 푹 안겨있는데 그곳을 어찌 평지라고 부를까마는 동네에 오르면 색다른 기분이 든다. 해발 350여m대에 논과 밭이 평화롭게 자리하여 평평하게 분지를 이루고 있다.
평지가 최씨와 김씨 두 집안 간에 물고 물리는 6.25 때 빨치산 활동만 없었더라면 평온하기 그지없고 인심 좋은 곳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우리가 놀러 가면 아이들이라고 홀대하는 법 없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 술까지 거나하게 대접하던 곳이 평지라는 마을이니 내겐 시골 마을 중에서 우리 동네보다 더 정감이 가는 곳이다.
이 작은 마을에 아버지 말씀엔 일제시대 한문과 한글, 주산을 가르치는 야학(夜學)이 있었다. 항월에 살았던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열 살이 되기 전부터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밤엔 들판과 산자락을 가로질러 평지로 훈장선생님을 만나러 가셨다.
아버지 야학에 얽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