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 건강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이스라엘 간호사 빼마.석가모니 부처병원
결핵보다 무서운 병, 카스트 제도
명상을 하기 위해 입원실로 들어섰을 때였다. 침대에 누워있던 한 환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모아 “나마스떼!” 인사를 건넸다.
네루라는 이름의 그녀는 뼈결핵(Bone TB)에 걸린 환자였다. 뼈결핵은 원래 투약과 치료를 병행하면 완치되는 병이었다. 하지만 홍수가 그녀의 마을로 진입하는 다리를 무너뜨렸고, 그로 인해 이동 병원이 2개월 동안 마을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그녀의 병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었고, 이제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남은 삶을 보내야만 한다.
가족에게조차 가난을 이유로 버림받고, 이곳 병원에 2년째 누워있는 그녀. 그런 처지에 어쩌면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걸까.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우리와 명상을 함께 했다.
명상이 끝난 후 이곳에서 넉 달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 간호사 빼마(27·그녀는 티베트 불교에 귀의한 이후 티베트 이름을 받았다)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에게 전해 듣는 이곳의 상황은 끔찍하다. 보드가야가 속한 비하르주는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고, 문맹률은 가장 높고,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가장 심한 곳으로 꼽힌다. 당연히 강도나 절도, 살인 등의 강력범죄 발생률도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이곳 병원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불가촉천민’이다.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고, 대부분 소작농으로, 농사를 지어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수준이기에 가난은 질병처럼 퍼져있다. 그래서 노동력이 되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낳으면 굶겨 죽이는 일이 아직도 빈번히 발생한다.
병원을 찾은 환자를 치료해 퇴원시키면 다시 악화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먹고살기 바쁜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더 슬픈 현실은 소아마비나 결핵처럼 예방과 적절한 치료로 퇴치할 수 있는 병에 걸려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는 환자가 절대다수라는 사실이다.
헌법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카스트 제도. 하지만 인도에서 카스트는 여전히 삶의 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불가촉천민들은 인도의 공공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한다. 우선은 진료비를 낼 수 없을 뿐더러, 설혹 돈을 마련한다고 해도 간호사와 의사가 불가촉천민에 대한 진료를 거부한다. 부정한 계급이므로 그들과 접촉하면 자신들까지 더러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성 의사 치료 거부하는 시골 여성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주민들의 완고한 보수적 관습과 미신에 대한 집착 역시 치료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많은 시골 여성들이 남자 의사에게는 진료받기를 거부해 여성 간호사가 함께 하는 ‘여성 클리닉’을 따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여성 클리닉에서는 마치 드라마 ‘대장금’에서 의녀가 된 장금이가 중전을 치료할 때와 같은 풍경이 벌어진다. 천막 안 환자의 증세를 여성 간호사가 살펴보고 천막 바깥의 남성 의사에게 환부를 설명하는 식의 비효율적인 진료방식이 아직도 행해진다.
지난 가을, 이 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술환자가 생겼을 때의 일이다. 마침 도시의 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해주기로 해 환자를 이송했다. 수술을 위해서는 아들의 피가 필요했다. 불안해하는 아들을 설득해 환자인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으로 보냈으나, 아들은 끝내 수혈을 거부했다. 자신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면 자신의 생명에 지장이 오는 걸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수술을 받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