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종양 이겨내고 준수가 졸업했습니다

준수의 아주 특별한 졸업

등록 2005.02.19 18:37수정 2005.02.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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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가 6학년이 될 때는 일년이 지나면 중학생이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6학년 2학기가 되어 가을 소풍을 치악산으로 다녀오고 추석을 잘 보내고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척수종양 수술을 하기 전까지는 준수의 졸업에 대해 추호의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척수종양이란 선고를 받고 발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준수가 졸업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졸업은 물론 중학교 진학이 어려울 거란 불길한 생각도 했습니다. 졸업도 할 수 있고 중학교 진학도 하게 될 거라고 아이 앞에서는 얘기했지만 어쩌면 졸업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았습니다.

재활치료를 받던 준수가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한 건 병원에 입원한지 석 달 정도 지난 뒤부터입니다. 주말마다 병원을 찾던 내게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던 그때는 정말 사는 기쁨이 새록새록 느껴졌습니다.

준수의 발걸음에 힘이 붙고 보조기 없이도 한두 걸음씩 걸어가는 준수를 보면서 올해 한해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준수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준수가 퇴원을 해도 되겠다는 얘기를 듣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즐거웠습니다. 입원한지 129일이 되던 지난 2월 12일 퇴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2월 19일) 원주의 일산초등학교에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이 내렸습니다. 다른 겨울에 비해 눈이 적었던 강원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소복히 쌓일 정도의 눈이 내렸습니다. 준수에겐 눈이 부담스럽습니다. 퇴원한 후 친구 동식이의 도움을 받아 걸어서 학교를 다녔지만 아직은 걸음이 완전하지 않아 미끄러운 길에서는 넘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눈길이 걱정이 되어 등교시간에 맞추어 택시를 태워서 데려다주었습니다. 같은 일산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생 광수는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에 청소를 해야된다고 일찌감치 학교로 갔습니다.

학부모들은 졸업식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30분까지 오면 된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시간에 맞추어 학교로 갔습니다. 눈이 내리는 교문 앞에서는 꽃을 파는 사람들이 학교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하얀 눈이 내린 교문 앞에서 형형색색의 꽃송이가 선명하게 눈길을 끌었습니다.


졸업식은 학교 체육관에서 있었습니다. 강당 안에는 졸업생, 재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까지 들어가서 발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식장 앞으로 졸업하는 6학년 아이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 많은 아이들 속에 준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준수의 졸업이 비로소 실감이 났습니다.

발가락도 움직이지 못할 때는 산에 들어가 중이 되고 싶다던 녀석입니다. 휠체어 타고 재활훈련 받을 때는 학교 계단은 어떻게 올라가느냐고 울먹이던 녀석입니다. 그런 절망을 딛고 일어서 저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이젠 혼자 힘으로 계단도 오르내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중학교까지 갈 수 있다며 좋아합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상을 줍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서 많은 결석을 한 준수도 학예상의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학예상을 받을 아이들의 이름이 불려지면서 준수도 일어났습니다. 준수의 위치를 확인한 후 카메라를 들고 준수가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서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일산초등학교 졸업식장에 앉아 있는 준수
일산초등학교 졸업식장에 앉아 있는 준수이기원
요즘 졸업식은 엄숙함이 없는 대신 자연스런 분위기가 넘쳐납니다. 교장선생님이 축사를 해도 졸업생 녀석들은 끼리끼리 소곤대고 웃고 장난을 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졸업식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에서 훈화나 축사에 귀기울였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준수도 옆자리의 친구들과 소곤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재학생의 송사와 졸업생의 답사도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지만 이 시간마저도 졸업생 재학생 가리지 않고 즐거운 모습입니다. 송사도 답사도 막힘 없이 일사천리로 끝이 났습니다.

교가를 끝으로 졸업식이 끝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식장을 빠져나오는 통에 이리저리 흩어진 가족끼리 찾기 일쑤였습니다. 졸업하는 아이들은 교실에 가서 담임선생님의 마지막 종례를 들었습니다. 어렵사리 다시 만난 아내와 광수와 함께 준수네 교실로 갔습니다.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친구 찬영이와 함께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친구 찬영이와 함께이기원
마지막 종례를 마친 준수가 복도로 나왔습니다. 녀석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와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친구들과 만나 사진을 찍기로 했다는데 사방으로 흩어져서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친구들과 몇 장 찍어주고 담임선생님 모시고 한 장 찍고 학교를 나왔습니다.

사랑스런 우리 가족
사랑스런 우리 가족이기원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조심스러운 게 많습니다. 미끄러운 길도 걱정이 되고 추운 날씨도 걱정스러워 가까운 해물탕집으로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준수는 해물탕집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습니다.

아직은 소변을 완벽하게 제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졸업식장에서부터 오줌이 마려웠는데 참느라고 힘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녀석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애를 태우더니 집에 온 이후에는 식사도 제법 잘합니다. 해물탕에 밥 한 공기 말끔하게 비웠습니다. 그런 녀석을 보면서 진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많은 졸업식을 겪어보았지만 준수의 졸업처럼 아주 특별했던 졸업은 처음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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