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세 끼 먹고 살겠죠"

귀국을 앞둔 하심의 두려움

등록 2005.02.21 08:46수정 2005.02.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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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아침 일찍 하심에게서 사무실을 찾아오겠다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금방 올 것처럼 새벽부터 전화를 해 놓고는 기척이 없더니, 점심시간에 통닭 두 마리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오는 25일에 귀국한다고 했습니다. 이주노동자로 7년을 생활하고 귀국한다는 그에게 그동안 얻은 게 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간단하게 “글쎄요. 밥은 세 끼 먹고 살겠죠”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그동안 번 돈 갖고 고작 세 끼 밥이나 먹고 살겠다는 말은 너무 엄살이다. 그렇다면 대학원 졸업하고 돈 벌어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굶어 죽겠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 번 문제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평소 과묵한 하심은 그 말을 듣고 '씨익' 웃으면서 그간의 사연을 털어놨습니다.

“처음 2년 일하고 IMF 때 그냥 돌아갔어요. 그땐 본전도 못 건졌어요.”

97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던 그는 IMF 때, 처음 작정했던 3년을 못 채우고, 2년만에 귀국했었습니다. 귀국 후 하심은 와르텔(Wartel)이라 불리는 전화방을 운영하는 장모의 가게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 2000년에 관광비자로 다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심은 관광 비자로 입국한 후 두 번 인도네시아에 갔다 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문제는 결혼 후 생활이 안정될 즈음에 부부가 함께 들어간 회사에서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아 2년 가까이 송금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귀국을 앞둔 그에게 2년 반을 일했던 회사에서는 외국인에게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해서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심의 말을 듣고 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업체 사장은 외국인들이 귀국한다고 하면서 귀국하지는 않고, 퇴직금만 받고 퇴사하는 통에 낭패를 본 적이 수 차례 있어 퇴직금을 주지 못한다는 소릴 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귀국한다면 퇴직금을 마련해 보겠다고 시원시원하게 답했습니다.


그 말에 대해 하심은 이미 귀국 항공권을 보여주면서 귀국 의사를 분명히 밝혔었는데, 자신들에게 한 말과 한국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르다면서 조용히 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크게 걱정하는 기색이 없어 보이는 그에게 퇴직금 못 받으면 귀국 일자를 늦출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갈 거예요. 사장님이 월급을 제때 주지 않아서 그렇지, 안 준 적은 없거든요. 퇴직금도 그렇겠죠. 통장번호 적어 두고 가죠. 뭐. 한국사람 앞에서 준다고 했으니까….”


사람 말을 쉬이 믿는 그는 큰 욕심 없고, 천하태평인 사람이었습니다. 대화 끝에 귀국하면 장모가 하는 전화방 사업을 할 계획이라는 그는 전화방사업이 예전 같지 않고, 막상 귀국하려니 목돈도 손에 쥔 게 없어서 귀국하기가 두렵다고 했습니다.

사실 7년을 해외에서 보내고 본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하심의 가장 큰 문제는,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퇴직금보다도, 귀국 후 본국생활 정착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밥은 세 끼 먹고 살겠죠”라고 했던 그의 대답은 괜한 소리가 아닌 듯 했습니다. 어쩌면 세 끼 밥이라도 편히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귀국을 준비하고 있는 하심의 귀국 절차가 원망과 시비 없이 순조롭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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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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