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사진] 춘설(春雪)

시(詩)를 보면 인생이 보이고 세상이 보인다 (2)

등록 2005.03.04 10:23수정 2005.03.0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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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저절로 오는 것인가? 싸워 얻어내는 것인가?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인가? 싸워 얻어내는 것인가?김형태
春 雪

봄 햇살에 해수욕하는 백목련의 속살과 의상에 질투심이 일었을까?
벙그러지는 꽃잎 틈새로 때늦게 하산하는 하얀 나비 나비들...
기지개를 한차례 한 봄이 작은 눈을 크게 한 번 떠보려다
깜짝 놀라 움찔 옷깃을 여미며 주저앉는 모양이란...


나의 때가 지났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머물던 자리에 미련이 남아서도 아니다
갈 사람은 가야지
더욱이 나는 겨울사람
새봄이 열린 마당에서 무슨 춤을 추랴
한여름에 썰매를 탈 수는 없는 법

그럼에도 나는 지상으로 낙하한다
내 살결보다 더 순결한 봄빛을 시샘해서?
구관이 명관임을 가르치려고?
겨울이 물러간 자리 놓고 서로 왕 노릇하겠다고 야단인 소인배들을 심판하기 위해?
아니, 아니다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해서 봄이 다 온 것이 아님을 일깨우기 위해
새봄에 취해 마음고팠던 어제를 망각한 군상들에게
차가운 겨울이 있었음을 기억시키기 위해
꿀벌처럼 금방 죽을 줄 알면서 날아 온 것일 뿐
걷잡을 수 없는 봄길을 거스르려 했다면
그것은 강물을 발가락 하나로 막아보겠다는,
하늘을 손가락 하나로 덮어 보겠다는
어리석음의 극치...

뜻밖의 나의 등장으로 한 발 물러선 신춘이여!
심기일전 호흡을 가다듬고 신명나게 뛰어 보렴
저 눈부신 태양을 향해...


내리는 눈을 보며 사슴은 무슨 생각을 하고 나무는 또한 무슨 생각을 할까?
내리는 눈을 보며 사슴은 무슨 생각을 하고 나무는 또한 무슨 생각을 할까?김형태
[시인의 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이 탄식이 봄을 생각하게 하는 대표 시로 회자된다.

참으로 많은 시인들이 봄을 노래하였다. 봄은 같은 봄이되, 그 시인들이 노래한 봄은 얼굴 생김 만큼이나 제각각 다르다. 계절적인 봄부터 광복, 자유, 평화, 새세상, 참세상까지.


과연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오는 것인가? 아니면 손톱 끝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첫눈이 오기만을 손꼽는 소녀처럼 숨죽이며 기다려야 오는 것인가? 또는 나가 싸워 얻어내듯 쟁취하는 것인가?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자연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인의 눈으로 볼 때, 겨울의 끝에 봄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비하기 짝이 없다. 어둠 끝에 빛이 있고, 눈물 위에 웃음이 있고, 죽음 뒤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3월에 내리는 눈, 일명 춘설(春雪)... 분명 봄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눈은 누가 봐도 겨울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때 아닌 눈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아니 생각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나라)는 현재 겨울인가? 봄인가? 누구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어느 사회나 진보세력이 있고 보수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진보진영은 하루라도 빨리 변화하는 추세에 맞춰 앞으로 나아가자고 하고, 보수진영은 그러한 변화를 거부하며 최대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사회나 국가나 진보와 보수의 줄다리기로 시끄럽다. 그 싸움, 그 진통 한가운데 갑자기 이 때 아닌 춘설이 더러 내린다.

진보적인 사람이든 보수적인 사람이든, 또는 중도적인 사람이든 3월에 내리는 눈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한번쯤 깊이 있게 생각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http://cafe.daum.net/riulkht)>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http://cafe.daum.net/riulkht)>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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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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