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외국에서 '애국자'가 되고 싶었다

<예니네 가족 텐트 메고 유럽가기 15>

등록 2005.03.06 19:06수정 2005.03.0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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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국경에서 돈을 바꾸면서 같이 낸 여권은 돌려 받지 않고 돈에만 신경을 쓰다가 놓고 온 것 같아서 캠핑장 직원들에게 국경에 있는 환전소로 전화를 부탁했다. 국경검문소와 통화가 됐지만 환전소 직원들이 다 퇴근해서 내일이나 돼야 알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아내의 여권으로 체크인을 했다. 시간도 늦었지만 마음이 심란하여 이것저것 신경을 쓰기가 싫어서 텐트 치기를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괜찮은 캐러번이 있다면서 이용하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값 좀 깍아보라고 훈수를 두는데 설마하며 할인을 요구했더니 웃으면서 오케이 하는 게 아닌가. 나중에 계산을 해 보니 파리캠핑장 텐트자리 일박 비용과 비슷하였는데 시설은 그야말로 우리 나라 콘도 수준으로 아주 좋았다.


식구들에게는 분명히 국경에 두고 왔으니 내일 찾으러 가도 되고 아니면 나갈 때 어차피 같은 길로 가니까 가다가 찾아도 된다고 태연히 이야기는 했지만 여권의 소재가 분명하게 확인이 안된 이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같이 걱정하고 앉아 있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a 보수 공사 중인 프라하성

보수 공사 중인 프라하성 ⓒ 유원진

열흘 가까이 텐트에서만 자던 아이들은 갑자기 호텔급(?)에서 묵게 되자 일단 환호성부터 질렀다. 부부 침실과 아이들의 이층 침대방, 거실에다 식탁까지 꾸며져 있었고 좁기는 하지만 욕실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도 붙어 있었다. 여권만 잃어 버리지 않았으면 지금쯤 오랜만에 물가도 싼 프라하에서 환상적인 밤을 보낼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도 아내의 안색은 나아지지 않더니 급기야 ‘우리 잡혀가는 거 아냐?’하고 울상을 하여 필자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모르게 만들었다.

대사관에 전화했다가 면박만 당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체코 직원에게 부탁해 국경에 있는 환전소에 전화를 했는데 찾아 보았지만 여권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는 실망했다. 한국에서 주민등록증만 잃어 버려도 걱정인데 머나먼 유럽까지 와서 그렇게 조심하라는 여권을 잃어 버렸으니 갑자기 죄인이 된 듯, 마음이 무거웠다. 일단 대사관에 가서 신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터라 필자는 혼자 여권 문제를 해결하고 나머지 팀원은 프라하 시내 관광을 하기로 하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대사관에 전화를 하자 체코 직원이 받길래 한국인과 통화하고 싶다고 하자 곧 여자를 바꿔 준다. 아무리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자위를 해도 자꾸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한국에서 여행을 온 사람입니다. 여권을 잃어 버려서 신고하는데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유원진입니다.”
“어따가 여권을 놓고 다니세요? 좀전에 경찰서에서 유원진씨 여권을 습득해서 이리로 우송했다고 전화가 왔어요.”

로또 복권에 당첨된들 이렇게 기쁠까? 짜증이 난 듯한 여자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이구, 살았다. 감사합니다. 국경에서 잃어 버린 것 같은데…. 가지러 갈 수도 있는데 벌써 우송을 했다구요?"
"전화를 직원이 받아서 나는 잘 몰라요."
“돈 바꾸다가…. 죄송합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우편으로 여기까지 오는데.”
“그건 몰라요.”
“늦어도 내일은 프라하를 떠나야 하는데…. 대충이라도… 여기 국내에서 우편물이 한 이틀 걸리나요?”
“모른다니까요.”
“확실히 대사관으로 오긴 옵니까?”
“확실히는 모르지만 보냈다니까 오겠죠. 일단 기다려 보세요.”
“보통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맘대로 하세요. 기다리시든 다시 만드시든. 여권은 재발급이 안되구요. 임시여행증명서 만들어서 가시든지….”

근데 이 여자는 누가 월급을 줄까? 맨날 힘없고 빽없는 서민들이 관공서가서 맥없는 소리를 한다는 게 이런 소리라지만 갑자기 전화의 당사자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혹시 껌을 짝짝 씹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a 구 시가지 광장

구 시가지 광장 ⓒ 유원진

그날부터 이틀을 더 프라하에서 기다렸지만 온다던 여권은 연락이 없었다. 대사관에서는 여권이나 잃어 버리고 다니는 별볼일 없는 남자의 애타는 마음쯤은 신경 쓸 일도, 공공기관에서 우송했다는 여권이 어디쯤 있나 수소문해서 알아봐 줄 일도 아니었다.

답답해진 나는 캠핑장 안내직원에게 이 나라의 우편물 우송 속도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권이라고 했더니 이틀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하면서 대사관에 따로 전화를 하여 필자가 있는 캠핑장으로 연락해 달라고 부탁해 주었다. 대사관 직원은 내가 어디 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대사관 직원과의 통화 내용을 말해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도 외국에 나가 애국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얘기가 있다. 그건 낯설고 물설은 외국땅에서 이리저리 힘들어 봐야 고국의 따뜻함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하여 조국의 일에 앞장 서게 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사이에는 외국에만 나가면 조국을 잃어 버리는 사람들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재외공관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얼마 전에 전 지구적 재앙이었던 서남아시아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대한 원성이 높았다. 초점이 달라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일과성으로 지나갔지만 한번이라도 외국에서 어려운 일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그들이 얼마나 고압적이고 무성의하며, 어려움에 처한 자국민들을 귀찮아 하는지를….

필자는 혹 그 연유가, 물론 모두 다 고시합격자들은 아니겠지만, 그 어렵다는 고시에 붙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상류 의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힘들게 공부해서 외무고시에 붙었을 때는 너 까짓것들 심부름이나 하려고 여기에 온 것은 아니라는, 뭐 그런 생각이 있는 것들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제 오늘 재외공관의 무성의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외국에 머무르고 있는 후배 하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사관에는 차라리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 자국민 보호에 거의 발작적인 나라는 제외하고라도 비슷한 나라들, 심지어는 동남아 어느 나라보다 자국민을 홀대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여러 번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니 그런가 보다 하다가 막상 필자가 외국에서 어려운 일을 겪고 보니 참으로 한심한 인간들이 아닐 수 없었다.

사흘밤을 지낸 아침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아무 진전이 없다. 이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즉석 사진을 찍는 것까지는 쉬웠는데 어렵게 찾은 경찰서를 도무지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시내 어디에도 길가에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경찰서는 없었다.

바츨라프광장 대로변에 있는 경찰서는 휴일도 아닌데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열어 주지를 않아서 우리 나라 경찰서만 생각했던 필자는 문에 붙어 있는 벨을 누르고 들어가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들어가서도 어찌 해야 될지를 모르고 헤매고 있는 필자에게 어느 서양인이 "영어를 하는 체코인을 데려 오지 못하면 분실증명서를 떼 주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a 경찰서에 드나들며 바츨라프광장에서

경찰서에 드나들며 바츨라프광장에서 ⓒ 유원진

지금 어디 가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체코인을 데려 올 것인가. 대사관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더니 무조건 분실증명서를 만들어 오라며 남들 다 해온다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다시 밖에 나가서 헤매다가 못 구하고 다시 들어갔는데 운이 좋게도 하루에 두시간만 그곳에서 일한다는 영어 통역 경찰을 복도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몇 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즉시 분실증명서를 만들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줄을 서서 오래 걸리던데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기야 네 식구가 죽 서서 처량한 얼굴을 하고 서 있으니 동정표가 좀 있었으리라.

해외여행에서 만난 가장 불친절한 사람, 한국인

프라하 주재 한국대사관은 깨끗하고 조용한 주택가에 있었는데 우리 나라 평창동의 조금 잘사는 집같은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들어가자 체코인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누구를 찾자 만삭인 여자가 가족인 듯한 사람들과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는데 전화 속의 그녀였다.

a 천문시계 보면서도 머리속은 여권 걱정..

천문시계 보면서도 머리속은 여권 걱정.. ⓒ 유원진

그 속에서 있었던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다. 어떤 남자가 나가면서 욕을 해댄다. 돈을 내고 서류를 내고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가족과는 살갑게 민원인에게는 뚱하게 대했다. 오히려 체코 직원이 난처한 눈빛을 하고 마음을 써 주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대사관을 나오면서 필자는 체코 직원에게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기념품을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여행증명서를 내밀면서 오스트리아는 이걸로 입국이 안되니 가지 말라고 말하면서 몸이 무거운 듯 허리를 짚는다. 그렇게 짜증나면 좀 쉬시지 집에서.

“오스트리아를 못 들어가면 스위스까지 멀리 돌아야 로마에 가는데, 그냥 통과만하는 것도 안될까요?”
“안 된다니까요.”

진짜 더럽게 앙칼지다.

“낼까지 로마에 가야 되는데 큰일 났네.”

왜 통과도 안된다고 했는지, 진짜 통과도 안되는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절대 안된다는 그녀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는 그날 밤 오스트리아를 통과해 로마로 갔다.

그 밤 내내 나는 어두운 유럽의 밤을 달리며 프라하 주재 대사관의 그녀를 생각했다. 그리고 유럽여행 내내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불친절했던 사람이 한국인이었음을 생각해 내고는 씁쓸해 졌다. 지금까지 여권의 행방을 모르되 혹 대사관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어떤 경로로든 연락을 해 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세계일류 어쩌고 하다가도 참으로 사람을 맥빠지게 하는 인간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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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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