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와 크림슨색 철쭉이 아닌 보드라운 색감의 고산철쭉이 백아산 마당바위 바로 아래쪽에 5월 초가 되면 흐드러지게 핍니다. 위령제도 그 때 해마다 열립니다.김규환
백아산 일대에서 현재 휴양림이 있는 갈경이 노치리 계곡과 우리 마을 쪽인 송단, 방리 방면 깊숙한 계곡에 들면 외부 세계와 단절을 경험한다. 두 곳은 밤과 낮에 따라 인공기와 태극기가 바뀌고 마을마다 동네 건너편으로 대나무를 베어 이중 울타리를 치고 청년들이 돌아가며 지키며 상황에 따라 깃발을 달리 내걸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길들여진 민간인에게 인심을 잃지 않는 건 전투 식량 확보, 보급투쟁의 유리한 1차 조건이다. 덧붙여 담양, 곡성, 화순 일대 자잘한 산골 마을을 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리라. 그들의 인정과 보투 과정에서 빚어지는 자잘한 다툼에 은신처가 곳곳에 숨어 있으니 노출되지 않고도 최소한의 먹을거리는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방향 감각과 길을 잃고 기력이 떨어졌다면 그 참담한 심정을 산에 다녀본 사람들은 안다. 마땅히 쉴만한 곳도 없을뿐더러 가져갔던 요깃거리마저 떨어져 간다. 마실 물도 찾기 힘들다. 암담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당황부터 하게 되는데 이때 무엇으로 그 상황을 모면할 것인가?
당시 ‘산사람’들은 칡뿌리도 캐야하고 칡넝쿨, 칡꽃을 따먹는다. 진달래와 독이 있는 철쭉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청미래넝쿨 열매, 찔레 싹 찔구, 마, 삐비, 띠뿌리, 똘배, 똘감, 팥배고욤, 머루, 다래, 으름에 생전 먹어보지 못한 쥐똥나무 열매도 따먹는다.
삽주(창출), 더덕, 딱주(잔대), 백하수오, 메꽃뿌리 뿐 아니라 독초뿌리도 씹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가히 가재나 징게미, 메기, 산천어를 잡아 매운탕 끓일 수도 없지만 죽지 않기 위해서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의 효용을 알아야 했다. 눈여겨 봐둬야 했다. 지혈제와 더위를 물리는 식물, 추위를 견디게 하는 자체 상비약은 산에서 구해야 했으니 다들 식물학 박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나물, 돗나물, 엉겅퀴, 다래잎, 홑잎, 떡취, 곤달비, 곰취, 미나리까지 나물류를 통달하면 어엿한 산사람이 되어 턱수염 덥수룩하여 영락없는 귀신 몰골이다. 나방과 벌레를 잡아먹어야 했던 사람들이 노루, 고라니, 멧돼지, 토끼, 산비둘기, 참새, 뱀 따위의 산짐승을 가만두었을까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