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기 집착성 문제이 대한 탐구

C.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 A Dream)>

등록 2005.03.17 04:12수정 2005.03.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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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사

‘회의자를 위한 사도’라는 영예스러운 별명을 갖고 있는 C. S. 루이스의 소설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 A Dream)’에는 그의 번뜩이는 문학적 천재성과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분석력이 절묘하게 배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망자(亡者)들이 천국의 언저리에 가서 각각 천사들 혹은 전도자들을 만나 나누는 여러 대화들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겨져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망자(亡者)들은 천국의 삶보다는 지옥의 삶을 택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물론 루이스의 이 책은 교리서가 아니라 문학적 판타지이기 때문에 이 책을 갖고 단순히 루이스의 교의학적 신념들이 어떠했는지를 논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이 책으로부터 루이스가 지녔던 인간 내면에 대한 속 깊은 통찰(insight)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우선 그는 이 책을 통해 행복이든 불행이든 그것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천국 언저리에서 천국으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옛 상태에 그대로 머물 것인지를 선택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대부분은 자기 집착이라는 내면의 본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 천국을 선택하지 않게 된다.

예컨대 본서에서는 먼저 죽은 어린 아들을 만나러 천국 언저리에 온 어머니 유령이 등장하는데 그 여인은 현세에서 자식에 대한 본능을 더 나은 감정으로 변화시키지 못한 채 광적인 편집성을 보인 여인이었고 천국 언저리에 와서도 그 집착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육욕 혹은 정욕으로 상징되는 빨간 도마뱀을 어깨에 두고 그것의 하찮은 조종에 늘 농락당하는 한 젊은 유령이 등장하는데 그는 결국 천국의 영이 시키는 대로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 그 도마뱀을 죽이게 되고, 그랬을 때에 그 도마뱀은 멋진 붉은 말로 변하게 되었으며 그 젊은이는 그 말을 타고 영원토록 빛나는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진리에 대한 작아 보이는 순종이 진리의 빛 안에서 큰 영광으로 바뀌게 된다.

즉, 루이스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천국이나 지옥은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기 원하는 이들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하는 결과물로서 천국과 지옥의 문은 밖에서 걸어 잠근 게 아니라 안으로부터 잠겨 있다는 의미 있는 추론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루이스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심각한 자기집착을 하고 있음에도 자기 안에 완전히 빠지지 않고 어느 정도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인간이 ‘육신'이라는 제한적인 틀 안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자신의 제한성과 한계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남들과 관계를 맺고 형식적으로라도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육신을 벗게 될 때 자기집착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옥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말미에서 루이스는 지옥의 크기가 아주 작은 돌멩이보다도 더 작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상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끝없는 자기집착으로 인해 지옥이 '블랙홀'처럼 안으로만 계속 빨려 들어가다 보니 결국 지옥의 크기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루이스는 인간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본성은 자기 집착이며 이러한 자기 집착 성향으로 말미암아 인간 사회의 모든 불행과 지옥의 모습들이 파생되었다라고 결론짓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는 다름 아닌 자기중심적인 집착 혹은 극단적인 자아 중심성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이 책은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진단하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해결의 실마리는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데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 이 책은 인간 문제의 실상을 깊이 통찰하기를 원하고, 인간 문제를 근원적인 관점에서 치유하기 원하는 이들을 위한 필독서 내지 지침서가 되리라고 본다.

어쩌면 본서만큼 인간의 근원적 성향을 제대로 파헤친 책을 찾아보기란 드물 것이다. 그것도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인간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천국과 지옥의 이혼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홍성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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