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으로 인한 오해

적립금을 돌려받고도 안 받았다고 생각한 빠스만

등록 2005.03.19 03:59수정 2005.03.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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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말이 없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빠스만으로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제 귀국했는데, 귀국에 앞서 쉼터에서 얼마간 생활하면서 한국에서 겪었던 문제들을 털어놨습니다.


그 문제들 중 그가 가장 이상해 하는 부분은 연수생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강제로 매월 적립금을 10만원씩 떼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의 상담을 받고 나서 관련업체에 전화를 걸었더니 연수생 담당자가 바뀌어 빠스만의 사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셈치고, 우선 은행에 가서 예금 관계를 조회해 보았습니다. 통장이 없었는데도 은행 관계자는 친절하게 예금을 조회해 주었는데, 적금은 만기 한 달을 앞두고 해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빠스만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기적금이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본인의 확인 없이는 인출이나 해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싶어, 정말 받은 일이 없느냐고 재차 물었습니다. 역시 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달리 물어볼 사람도 없는 처지였는지라, 묻고 묻는 과정을 통해 적금해지한 때가 빠스만이 인도네시아에 휴가차 떠가기 사흘 전이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한 후, 귀국할 때 회사로부터 얼마를 받았는지를 물어 보았더니, 미화로 3900달러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5백만 원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빠스만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당업체에서는 만기 한 달을 앞두고 빠스만이 휴가차 귀국할 때 적금을 해지하고 적금과 당월 월급, 격려금을 얹어 귀국 준비 비용으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빠스만은 본인이 받아야 할 적립금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미화 3900달러를 건네주었던 사람은 언어상의 문제로 그 돈이 무슨 돈인지에 대해 세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이유로 당시 상당액의 쌈지 돈을 쥐었던 빠스만은 자신이 왜 그만한 돈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았고, 다만 적립금을 매달 떼였으니 그것을 꼭 돌려받는 것이 마땅하다고만 말했습니다.

귀국비용이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면서 누차 설명해도 빠스만은 본인이 적립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만 주장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해당업체에 연락했더니, 관련서류를 찾아 총무과에서 정리해 놓겠으니 방문하라는 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전화를 받았던 사람은 빠스만이 휴가차 귀국했던 사람이라면 모든 급여 계산이 완벽하게 끝났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휴가가 끝나고 복귀하지 않을 경우, 당사자에게 손해가 가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모든 급여와 적금 등의 문제를 정리하고 출국시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우리사회가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이런 불신을 받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어쩌면 자업자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인 고용주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불신은 본인이 당했던 경험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 주지 않았던 일부 몰지각한 고용주들의 이야기가 부풀려지고, 회자되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주들의 이미지가 정형화되어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내국인에 비해 장시간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급여 문제에 대해 고용주들이 자신들에게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빠스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빠스만을 통해 그가 갖고 있는 고용주에 대한 불신이 보통의 이주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다분히 보편적인 사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라도 우리사회는 이주노동자들로부터 그런 불신을 받지 않도록 그들을 정당하게 대우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 역시 일부 몰염치한 고용주가 전체 한국인의 모습인 냥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불신의 벽을 허물고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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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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