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

아파트 포기한 아내에게 흙집 지어주겠다고 했다

등록 2005.03.31 13:47수정 2005.03.3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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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 있고 아담한 담장이 있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복숭아꽃은 바깥에 울타리엔 키 작은 진달래 피면 좋겠네.
울타리가 있고 아담한 담장이 있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복숭아꽃은 바깥에 울타리엔 키 작은 진달래 피면 좋겠네.김규환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서울은 만원이다. 거리는 자동차로 가득 차 움직이질 않는다. 지하로 들어가도 발 디딜 틈이 없다. 매장에서도 사람들에 치이기는 마찬가지다.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초고층으로 올라가고 있다. 강남과 강북을 가리지 않고 아파트가 속속 들어차 있다. 오늘도 아파트를 짓느라 서울은 공사 중이다.

뻥 뚫린 한강의 기적은 오간데 없고 드넓은 한강이 가린 지 오래다. 남산도 보이질 않는다. 북한산, 관악산은 야산이 되었다. 시멘트 숲 속에 어깨가 축 쳐져 있는 군상들을 보노라면 내 처지도 말이 아니게 처량해진다.

이젠 서울도 모자라 부천을 거쳐 인천광역시도 빈틈이 없다. 경기도 너른 들판도 빈자리만 있으면 아파트가 산자락을 까고 산꼭대기까지 치고 올라갔다. 땅이 부족하여 김포공항 일대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논밭도 곧 아파트가 될 거란다.

내 집 마련이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된 지도 오래지만 그들의 꿈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한 평생 집 한 채 장만하기 위해 인생을 걸어버리는 이 못난 세상에서 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가 막히고 숨이 막힌다. 허리띠를 졸라맨들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 많은 집들 중에 왜 우리처럼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살 집 한 칸이 없을까?

"그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라며 대단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게 하지만 웰빙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서울은 아파트가 부족하다. 왜일까?
"그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라며 대단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게 하지만 웰빙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서울은 아파트가 부족하다. 왜일까?김규환
주택보급률이 전국적으로 100%를 넘었다는 이야기가 몇 년 전인데 딴 세상의 일처럼 들릴 뿐 우리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로 들린다.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땅에 투기를 하고 밤새 줄서서 아파트에 투자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회가 진정 정상적인 사회인가. 사람이 살만한 도시인가 말이다.


집이 있고 없음은 사람들의 지위를 가르는 첫 번째 잣대가 되었다.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란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이 사회에 뿌리박기는 요원해 보인다. 번듯하게 각을 지어 오른 '성냥갑' 대열에 끼지 못하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아이들 교육과 삶의 질도 보장되지 않는다.

줄줄이 엮인 생활 전반이 상하로 확연히 구분되는 강남과 강북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을 품고 있는 모습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 뻔한 세상'에서 앞만 보고 달려도 하루 세끼 해결하기 힘든 절박한 삶 속으로 내팽개쳐지는 이웃과 나를 보고 있노라면 내 당장 거리로 달려 나가 "어디 이게 사람 살 세상입니까? 헐값에 사서 몇 백배 남기고 땅 장사하는 한국토지공사와 원가를 제 맘대로 부풀려 집 팔아먹는 한국주택공사로 쳐들어갑시다. 이 놈들을 당장 요절을 내고 건교부와 재정경제부를 박살냅시다"라고 선동하고 싶다.

집 문제 하나로도 이 사회를 뒤집어버리고 싶은 마음 단지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말이다. 건물 높이에 따라 사람들의 격과 부의 잣대도 달라지는 세상에서 사람간의 관계가 올바를 수 없다. 기회균등이란 애초에 기대하기 힘들다.

모름지기 집이란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서 쉬었다가는 것이란 인식이 우리들 가슴에 뿌리박기는 영영 글러버린 모양이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장관들도 땅 평수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획기적으로 정책이 변한들 현실세계에 그 넓고 높은 뜻이 고루 퍼지려면 나라를 새로 세우는 게 더 빠를 듯싶다.

이승에 있는 동안 내 집 한 칸이나 마련하려다가는 우리네 인생 모두 소진될 게 분명하고, 설사 어떻게 장만했다 손치더라도 그 뒤에 녹초가 될 운명은 불을 보듯 빤한 것 아닌가.

이런 내 질문을 뒷받침하기 위한 우매한 질문 하나가 늘 따라다니고 있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을 팔면 미국을 살 수 있을까?'이다. 관련업계 종사자들 말에 따르면 사고도 남는다고 한다. 마침 일본이 독도를 넘보는 마당에 호기를 만났으니 서울과 대한민국을 팔아치우고 조선땅을 떠날 채비를 하는 건 어떨까?

고액이 당첨되더라도 나는 서울이나 대도시에 아파트를 사지 않기로 했다. 일단 오늘 한장 사볼까?
고액이 당첨되더라도 나는 서울이나 대도시에 아파트를 사지 않기로 했다. 일단 오늘 한장 사볼까?김규환
말이 씨가 된 두가지 - 취직과 아파트

내 어릴 적 약속이 지켜지고 있다. 한 가지는 취직을 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절대 아파트에 살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남에게 빌붙어 살지 않겠다는 올곧은 생각에서가 아니라 내가 꿈꾸는 세상을 혼자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서 취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집은 정원이 달린 자연 그대로 있는 작은 주택 하나를 갖는 게 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닭장이나 성냥갑처럼 생긴 건물이 어찌 집일 수 있겠는가 하는 문명비판도 한몫 거들었지만 실제 몇 번 친지와 친구들 집에 가보니 숨이 막혔다. 어찌나 철옹성을 단단히 쌓았는지 갑갑하여 자고 난 다음날 머리가 띵했다. 잠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천상 촌놈은 촌놈인가 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찬바람이 콧잔등을 발갛게 물들이더라도 뜨거운 국물 후루룩 떠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이상 없는 집, 외풍이 좀 있기로서니 등만 따습다면 건강엔 최고라는 믿음엔 변화가 없다. 나는 그런 집을 갖고 싶다.

마흔이 다 되도록 변변한 직장에 관심 없고 아파트에 살긴 싫으니 서서히 나와 맺은 약속 지켜질 성 싶어 말이 씨가 된다는 철칙을 어기지 않고 현실화되고 있으니 자신이 자초한 일이지만 두렵기까지 하다.

그래! 난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 이후 갑작스레 몇 십억 복권에 당첨되거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푼돈을 모은들 절대 서울이나 대도시에 집 살 맘이 눈꼽 만큼도 없다. 그 아까운 돈을 집 한 채에 묻어두기도 아깝거니와 내 삶이 저당 잡히는 신세는 되기 싫기 때문이다.

이 곳은 별 하나 볼 수 없고 맘대로 숨 쉴 수도 없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어두운 도시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여름엔 열광의 도가니보다 뜨겁다. 아이들이 풀썩 주저앉아 맘껏 놀 자리도 없다. 시끄러워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도시의 소음을 벗어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다.

먹고 사는 것과 아이들 교육이 발목을 잡는다지만 나는 잘 먹고 오래 살고 진정 아이들 교육과 우리들 생활이 혁명적으로 변하기를 바라면서 도시에서 몇 평짜리 아파트 사는 걸 포기했다.

얼마 전 발표에 따르면 판교신도시도 평당 분양가가 1000만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4가족이 살려면 20평쯤은 되어야 한다고 가정할 때 2억이 필요하다. 2억. 실제 사람들 이야기를 접하면 2억이라면 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턱도 없는 액수라고 한다.

서울 강변북로를 달리다가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아파트를 찍어보았다. 조망권이 좋아 강변은 더 비싸다던데 빨래나 말릴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서울 강변북로를 달리다가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아파트를 찍어보았다. 조망권이 좋아 강변은 더 비싸다던데 빨래나 말릴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김규환
만약 2억이 있다면….

내게 2억이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옴짝달싹할 수 없게 2억을 묵혀두기보다 인생을 위해 과감히 다른 데에 쓰겠다. 평당 1만원 이내의 땅 300평 사는데 300만 원 이하, 건축비 평당 250만원씩 들여 48평을 지으면 1억 2천만 원을 더한다. 그러고도 7000만 원 가량이 남는다. 그 돈으로 직장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보다 안정된 노후를 위해 작은 농장 하나 만들면 된다.

아내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지 고향에 산채원(山菜園)을 만들겠다고 해도 당장 하루하루 보이는 게 아파트뿐인지라 "여보, 왜 하고 많은 집들 중에 우리 집 한 칸 없을까요?"라거나 "우린 언제 아파트를 장만하나?"라며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몇 해 전부터 온 가족 귀향을 최종 결정하기까지 넉넉한 마음을 보여준 아내지만 어찌 아쉬움이 없을까.

우린 지금 반지하에 살고 있다. 아이들 건강도 이젠 돌봐야할 때다. 더 이상 내려가려야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 생활이다. 옥탑방이나 지하실이나 매한가지다. 지금 여기 살고 있지만 우린 도약과 비상을 꿈꾼다. 그 꿈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것이다.

주변에서 나는 나무를 간벌하여 흙집을 짓겠다.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좁다란 골짜기에 소쇄원 하나 쯤 옮겨놓으면 지나는 길손도 쉬었다 가겠지. 작고 숨쉬는 집을 지으리라. 장난감 박물관에서 아이들이 자치기도 하며 놀게 하리라.

산나물을 도시 친구들에게 택배로 부치고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에 맞춰 작은 축제를 마련하여 놀러 오게 하고 싶다. 집이라고 해봐야 농가주택으로 48평까지 지을 수 있으니 우리 몫으로 열댓 평 짓고 나머지는 뜻 맞는 친구들에게 열 평짜리 서너 채 지어 맘대로 쉴 수 있게 하리라.

이게 꿈일까? 아니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3년 내에 선물을 하려고 목조주택 짓는 법도 배워뒀고 우리 꽃과 나무 그리고 유기농법에 대한 연구도 남 못지 않게 해서 실력을 길렀다.

그 2억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나에겐 지금 2, 3천만 원 밖에 없지만 사람들 마음을 사면 그 날이 곧 오리라고 믿는다. 벌써 일곱명이 같이 하겠다고 했다.

이 정도 욕심도 호사스러운 것인가? 초가로 지을지, 기와지붕을 올릴지는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이런 소박한 집을 짓고 살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 것이다. 마당이 이 정도면 되고 마침 매화꽃이 멋지게 피었다.
이런 소박한 집을 짓고 살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 것이다. 마당이 이 정도면 되고 마침 매화꽃이 멋지게 피었다.김규환

덧붙이는 글 | <내집 마련 분투기>에 응모합니다.

김규환 기자는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刊)을 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대표이다. 올 연말 쯤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나물 백화점 <산채원 山菜園>(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내집 마련 분투기>에 응모합니다.

김규환 기자는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刊)을 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대표이다. 올 연말 쯤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나물 백화점 <산채원 山菜園>(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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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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