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순영 의원 '공격', 뭘 얻고자 하나

[기고]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등록 2005.04.03 14:34수정 2005.04.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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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지난 1일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과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의 땅 투기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 YMCA전국연맹 이학영 사무총장이 최순영 의원의 위장전입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내용의 반박글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a 최순영 의원이 지난 1일 오전 부동산투기의혹 보도에 대해 해명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순영 의원이 지난 1일 오전 부동산투기의혹 보도에 대해 해명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 순간의 실수로 내내 후회를 거듭할 때가 있다. 노력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일 때 후회마저도 사치스러울 때가 있다.

그날 아침도 남원 운봉에서 열리는 청소년 지도자 연수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침 신문도 읽을 사이 없이 용산역에서 목포행 KTX를 탔다. 그런데 말짱한 날에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익산에서 남원 가는 전라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만 지나쳐버린 것이다. KTX가 생기고 나서 가끔 겪는 실수였다. (KTX가 생긴 이후 전라선으로 직행하는 열차를 대부분 줄이고 호남선 KTX를 타고 가다가 익산에서 갈아타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익산 다음 역인 김제역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익산역으로 되돌아가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난생 처음 발을 디뎌본 김제 땅이라 평소 같았으면 호기심이 발동했을 법한데 그날은 사태가 사태인지라 산천이며 거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순간의 실수로 하루 일을 그르쳐버린데 대한 자괴감에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인생도 세상일도 그렇치. 한번 길을 잘 못 들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되는 거야’라는 신파조 대사 같은 생각이 계속 내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있었다. 사소한 실수로 벌어진 잘못을 다시 회복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날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타면서 내내 확인해야만 하였다.

더러운 투기자로 단정한 뒤 의원직 사퇴까지...

불편한 심정으로 시골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우연히 신문 판매대의 검은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김원웅·최순영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 ‘위장전입 땅투기 아니다.’ 두 의원 해명. 일부선 ‘사실이라면 의원직 사퇴해야”라는 표제어가 대문짝만하게 신문 전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무슨 신문인가 봤더니 역시나 짐작한 대로였다. 김원웅, 최순영 의원이라면 오늘까지 세상을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온 사람들 아닌가? 사실 여부를 떠나 신문은 이미 더러운 부동산 투기자로 그들을 단정하고 마치 독자들의 의견인양 의원직 사퇴까지도 강제하고 있었다.

김원웅 의원은 직접 아는 분이 아니지만 최순영 의원이야 너무나 잘 아는 분이므로 마치 내가 모독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최순영 의원이 수모를 당하는 것은 그 개인이 당하는 수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치열하게 살아온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사가 수모를 당하는 것이요, 그와 함께 같은 꿈을 꾸어온 수많은 민초들의 꿈이 수모를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경제성장의 기초를 준비했던 70년대 독재정권의 반인권정책과 저임금 노동정책을 고스란히 떠안고 극복하고자 분투했던 한 세대의 희생과 희망이 유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최순영 의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79년 YH 노동조합 탄압사건을 통해서였다. 당시 최순영 의원은 YH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다. YH 노동자 탄압 사건은 농성 중이던 여성 노동자 김경숙씨를 죽음으로 내몰고 야당 당수이던 김영삼씨의 제명 파동을 불러오는 등 마침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재촉하는 기폭제가 된 사건이었다. 최순영 의원은 당시 어린 여성 노동자의 몸으로 군부정권의 국가폭력이라는 시대의 어둠과 싸우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생각은 있으되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숨죽이고 살아가던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고 희망을 주었다.

다시 최순영 의원을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세월이 흐른 뒤였다. 뜻밖에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존경하는 선배의 부인이 바로 최순영 의원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남편은 지역사회의 시민운동가로 부인은 여성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여성운동가로, 지역 시민운동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방자치 실시를 계기로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간파한 그는 그동안 닦아온 지역 생협운동을 토대로 시의원에 진출하게 되었다.


시의원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을 위해 담배자판기 철거조례를 만든 일, 무분별한 러브호텔 허가를 취소시키는 일, 시 예산을 절감시키는 일 등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훌륭한 사례를 남겼다. 오늘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그의 삶의 궤적은 평범한 민초들도 뜻을 바르게 세우고 노력하면 어떻게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돈이 없어도 어떻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지 모범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폭력 맞섰던 노동운동가 최순영

그런 그가 부동산 투기자로 몰려 국회의원까지 사퇴하라고 종용받고 있다.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순영 의원의 시댁은 강원도 홍천이다. 몇 년 전 시골에 사시던 시아버지께서 나이 드셔서 마침내 서울 인근에 사는 아들집에 합가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복잡한 도시가 싫었다. 선배 또한 오랫동안 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건강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생각다 못한 아버지는 당신의 재산을 정리하여 송추 시골, 공기 좋은 곳으로 땅을 사셨다. 훗날 그곳에 집을 짓고 모두 이사를 갈 심산이었다.

그리고 날마다 송추까지 도시락을 싸가지고 출퇴근하면서 농사를 지으셨다. 나중에는 밭 옆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지어놓고 아예 거기서 머물기 시작하였다. 서울로 집을 옮겨야 했던 선배네는 집을 얻을만한 형편이 안되어 세간은 아버지가 계시는 송추 비닐하우스에 옮겨놓고 마침 외국에 가게 된 지인의 아파트에 몸만 들어가 한동안 살아야만 하였다. 그러한 불편을 해소할 요량으로 어렵지만 그 땅에 집을 짓기로 하였다.

내가 송추를 방문하던 때가 작년 늦은 봄이던가? 일꾼도 없이 아버지와 아들이 집을 짓고 있었다. 2년째 아들은 자재를 사 나르고 늙은 아버지는 손수 황토벽돌을 찍어 황토집을 짓고 계셨다. 맘에 든 집을 짓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푼이라도 자재와 품값을 아끼기 위해서 그러했으리라.

선배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꽤나 넓은 이층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설명하였다. 외진 곳이었으므로 이층은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 사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아래층 넓은 방은 수련센터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어두워져서야 그가 운전하는 무쏘를 타고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그 황토집을 나왔다. 퇴근해야 하는 최순영 의원을 구파발까지 마중을 나가는 김에 나도 더불어 함께 나왔다.

송추 집을 팔게된 사연

이후 선배는 점점 더 몸 상태가 나빠짐에도 의원생활로 바쁜 아내의 짐을 덜어주려고 했는지 혼자서만 여기저기 요양을 다녔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송추 집을 팔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국회의원이 된 후로 더욱 어려워진 살림살이와 선배의 치료 뒷바라지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그 순간 그의 아버님이 떠올랐다. 밭농사 지으시며 새집 짓는 재미로 말년의 낙을 삼으시던 분이 새 정도 나누기 전에 팔면서 얼마나 낙담하셨을까. 평생 사회운동 하느라 고생만 시켜드리더니 말년에 자식 때문에 아버님의 집을 팔게 된 선배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구십 노모를 시골에 따로 모시고 사는 나로서 남의 일 같지만 않았다.

그렇게 한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칭찬은 못할망정 땅 투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우려 하다니.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얻은 정보로 투기하여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인 사람들이 누구인가. 과거 독재정권 시절 권력의 각종 특혜를 이용하여 몇십억씩 재산을 늘린 사람들이 누구인가? 대한민국 경제개발 40여년 짧은 역사에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서 어떻게 당대에 몇십억 몇백억의 재산을 늘릴 수 있었겠는가? 사십년 이전을 생각해보라. 그때는 누구나 그만그만한 살림살이였다. 그런데 그동안 개발독재정권과 야합하거나 편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대에 그러한 부를 쌓아올릴 수 있었겠는가.

정말 지도층의 잘못된 부동산투기와 불의한 재산축적을 파헤쳐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충정에서 그리하였다면 먼저 지난날 가장 많이 그 혜택을 누렸던 바벨탑을 찾아가서 칼을 겨눌 일이다. 아니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쌓은 바벨탑의 실체를 먼저 파헤쳐야 할 일이다.

개발독재 시대, 투기로 막대한 부 축재한 자가 누구인가

아무리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고 비열하게 상대를 매도하지 말자. 싸움을 하되 정당하게 하자. 최순영 의원 같은 분들이 있으므로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라.

돈이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힘없는 사람들도 할 말 하면서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서민들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세상에 모두 떵떵거리고 잘나가는 사람들만 있다면, 돈 많고 좋은 대학 나오고 권력 가진 사람들만 지도자가 되는 세상이라면 수많은 서민대중들이 어떻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주눅 들어 어떻게 이 땅에 살아갈 수 있겠는가?

민초들이 존경하는 지도자들을 욕보임으로써 그들에게 환멸을 심어주고 좌절케 하려는 의도를 잘 알고 있다. 지난날 독재정권이 그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 민족의 지도자들을 욕보이고 쓰러지게 했는지 잘 알고 있다. 아직도 그러한가? 그러한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로 부상하는 것이 두려운가? 이런 내 생각이 과대망상이라고 해두자. 그렇지 않다면 바르게 성장하는 지도자들을 그대로 두라. 도와줄 수 없다면 그저 바라보기만 하자.

민초들의 희망의 싹을 자르지 말라. 희망이 없는 대중은 좌절하고 좌절한 대중을 가진 나라는 퇴보하기 마련이다. 을사조약 이후, 해방 이후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고난이 와도 좌절하지 않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미래를 위해 불의에 굴하지 않고 싸워온 민족운동과 민주주의의 역사에 있음을 기억하라.

민초들이 존경하는 지도자를 욕보이지 말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각축 속에서 우리 민족이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은 민족이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힘을 합하는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100여년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직도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지만 그 갈등이 외부의 갈등을 능가해서는 안된다. 특히나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능력의 지도자를 가지고 있을 때 어떤 위기가 와도 적재적소에 지도자를 배치하여 위기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a 이학영 사무총장

이학영 사무총장 ⓒ 이종호

한번 길을 잘못 들면 내내 회복이 힘들어진다. 나라가 구태를 벗고 이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새로운 비전을 가진 지도자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이제 다시 길을 잘못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지난 100여년 서로 갈라져 싸운 결과 오늘까지 남북 분단이라는 업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가 더는 잘못된 길로 가서는 안 될 일이다.

남원을 가려다 김제로 잘못 가서 겪는 내 고통이야 하루의 고통이지만 민족이 잘못 선택하여 겪는 고통은 세기를 넘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최순영 의원을 매도하지 말자. 그것이 그가 우리와 함께 겪어온 지난 시절의 노고와 삶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아니 그 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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