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군항제'에 다녀왔습니다

아직 벚꽃이 만개하진 않았지만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등록 2005.04.06 09:18수정 2005.04.06 15:4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 진해는 <군항제>가 한창이다. 우리 가족도 어제 <군항제>를 찾았다. 아쉽게도 벚꽃은 만개하지 않았다. 우리는 해군사관학교부터 찾았다. 그곳에는 거북선이 있다. 바다에 떠있는데, 실물과 크기가 똑같다.


a 거북선입니다

거북선입니다 ⓒ 박희우

요즘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가 인기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거북선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뱃머리는 말 그대로 거북이 형상이다. 바로 밑에는 귀신머리가 그려져 있다. 지붕덮개는 철로 만들었다. 그 위에 ‘칼송곳’이 촘촘히 박혀 있다. ‘칼송곳’ 사이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십자로(十字路)가 나 있다. 돛대도 두 개 보였다.

우리 가족은 거북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두 개고 화장실이 네 개다. 노가 서까래처럼 천장에 걸쳐 있다. 거북선에는 22개의 대포구멍이 있다. 화포뿐만 아니라 다른 무기들도 보인다. 배 밑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막아내는 데 쓰는 ‘장병겸’, 근접해오는 적병을 무찌르는데 사용한 ‘장검’, 적선에 던져 배를 끄는데 사용한 ‘사조구’ 등등. 모두 훌륭한 무기들이었다.

a 벚꽃입니다

벚꽃입니다 ⓒ 박희우

우리 가족은 몇 곳 더 구경하고 해군사관학교를 나섰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우리는 ‘중앙로타리’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야시장이 서 있었다. 아이들과 아내는 비빔밥을, 나는 국밥을 주문했다. 바비큐가 빙빙 돌고 있다. 주인이 칼로 살점을 떼 낸다. 나는 동동주를 시키려다 8000원이란 가격을 보고 그만둔다. 너무 비싸다.

우리 가족은 ‘진해탑’을 향했다. 365계단이다. 숨이 찬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모두들 숨이 차는지 쉬엄쉬엄 오른다. 중간 중간에 노점상이 보인다. 사주보는 사람, 민속 못 박기 판을 펼쳐 놓은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커피를 파는 사람 등등. 계단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아이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큰 애과 작은 애은 계단 올라가기 시합을 하는 모양이다. 그때 유행가 소리가 들린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사람 바로 앞에 통이 하나 놓여 있다. 아내는 통속에 1000원짜리 지폐를 한 장 넣었다. 조금 올라가니 그와 비슷한 사람이 또 보인다. 그런데 휠체어를 탄 사람과는 사뭇 다르다.


a 사내가 엎드려 있습니다.

사내가 엎드려 있습니다. ⓒ 박희우

사내가 바닥에 엎어져 있다. 사지가 축 늘어졌다. 그는 노래 같은 것도 부르지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내의 턱은 동냥바구니에 반쯤 걸쳐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그런데 사람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서둘러 그 자리를 뜨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사내에게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었다.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달래야 했다.

마음이 여간 울적한 게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다시 ‘중앙로타리’를 향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청소년 오버 왕’이 열리고 있었다. 사회자의 말이 제법 그럴 듯하다. 그는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오버’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게 바로 오버 아니겠습니까?”

a 청소년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 박희우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울적한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사회자가 첫 번째 팀을 소개한다. 4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음악이 나오고 그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경쾌한 발놀림이다. 허리가 무척 유연하다. 모두들 하얀 옷을 입었다. 배꼽 위에까지 옷이 올라가 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나는 그제야 빙긋 웃는다. 건강한 젊음이다. 저런 젊음이 있기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 나는 고개를 든다. 그때였다. 어, 언제 피었는가! 벚꽃이 활짝 웃고 있었다. 마치 눈꽃을 보는 것만 같다. 그 눈부심에 나는 한동안 어찌할 줄 몰랐다. 아름다운 벚꽃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3. 3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4. 4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5. 5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