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금강산서 첫 통일하모니

[장애인 금강산 통일기행]지우다우 주최 450여명 구룡연 등반... 북에 휠체어 50대 전달

등록 2005.04.14 10:26수정 2005.04.1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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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번 금강산 통일행사에 참가한 엘지전자노동조합 소속 자원봉사자가 지체장애인을 업고 금강산을 오르고 있다

이번 금강산 통일행사에 참가한 엘지전자노동조합 소속 자원봉사자가 지체장애인을 업고 금강산을 오르고 있다 ⓒ 석희열

'함께 딛는 발걸음, 하나되는 우리'. 자폐 청년의 마라톤 완주를 그린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22)씨를 비롯한 지체·시각·발달 장애인 130여명이 금강산에 올라 통일을 합창했다. 남쪽 장애인의 대규모 방북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사단법인 지우다우(지금 우리가 다음 우리를·대표 조홍규)가 6·15 남북공동선언 5돌과 해방 60돌을 맞아 마련한 이번 장애인들의 금강산 통일기행에는 장애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선발된 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 등 모두 450여명이 참가했다.

지난 11일부터 2박3일 동안 열린 이 행사에서는 특히 신한은행과 엘지전자 자원봉사자 160명이 장애인과 아름다운 동행에 나서 장애인-비장애인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편견을 말끔히 씻어냈다. 주최측인 지우다우는 12일 오후 3시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에서 휠체어 50대를 북 금강산관광총회사 측에 전달, 북쪽 장애인들에게도 사랑을 실어보냈다.

a 장전항에서 출발하여 온정리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통일대행진 참가자들

장전항에서 출발하여 온정리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통일대행진 참가자들 ⓒ 석희열

통일로 함께 걷는 길…. 장애인 북녘땅 도보 대행진

11일 오전 7시 대형버스 15대에 나눠타고 서울을 떠난 방북단은 이날 오후 2시32분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 40분만에 장전항 북쪽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출입사무소에서 간단한 입경수속을 마친 이들은 곧바로 온정리까지 약 4km를 도보행진하며 방북 첫 일정에 들어갔다.

북녘땅은 바쁜 농사철을 맞아 논에 물을 가두고 못자리 만드는 일이 한창이었으며, 군인들까지 나서 주민들의 바쁜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농삿일을 도우러 나온 금천소학교 학생들이 일을 마친 뒤 농기구를 들고 떼를 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또 냇가에서 물을 긷거나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드넓은 들녘에서는 한가롭게 풀을 뜯는 흰 염소떼들이 목가적인 서정을 자아내며 전원풍경을 연출했다. 민둥산 곳곳은 지난번 강원도 산불로 새까맣게 그을렸고, 산허리에는 드문드문 연분홍 참꽃(아기 진달래)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a 가수 박마루씨와 배형진씨, 이희아씨가 자신들의 어머니와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금강산 방문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수 박마루씨와 배형진씨, 이희아씨가 자신들의 어머니와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금강산 방문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석희열

이날 휠체어로 장전항~온정리를 완주한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20)씨는 "꿈에 그리던, 그래서 너무나 오고 싶었던 금강산에 와보니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라며 "빨리 통일이 되어 북녘의 친구들과 같이 성당에 가고 싶다. 북에 있는 장애인 친구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기 위해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주맹아학교 조성민(17)군은 "금강산이 지금 무슨 색깔일 것 같으냐"고 묻자 "앞을 볼 수는 없지만 아마 금강산은 지금쯤 온통 연둣빛으로 봄의 향연을 벌이고 있을 것 같다"면서 "마치 지금 구룡폭포 앞에 서 있는 기분"이라며 감격해 했다.


이날 도보행진에는 장복심 의원과 김성호 전 의원, 류동호 지우다우 대표, 김은식 신한은행 부행장, 김영기 엘지전자 부사장, 가수 녹색지대 등이 함께 하며 장애인들을 격려했다.

a 이날 참가자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4km 거리를 함께 행진하며 서로에게 갖고 있던 편견을 말끔이 털어냈다

이날 참가자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4km 거리를 함께 행진하며 서로에게 갖고 있던 편견을 말끔이 털어냈다 ⓒ 석희열

대형 한반도기를 몸에 두르고 오후 4시께 장전항을 출발한 참가자들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1시간 30분만에 온정리 앞에 도착, 행진을 모두 마쳤다.

들어주고 업어주며 구룡연 탐승

해금강호텔 등에서 첫날밤을 보낸 참가자들은 방북 이틀째인 12일 오전 8시 장애인들의 생애 첫 금강산 등반길에 올랐다. 온정각에서 산 입구까지 버스로 이동한 뒤 곧바로 구룡연 탐승에 나선 이들은 왕복 8km에 이르는 관폭정까지 산행을 즐겼다.

이희아씨 등 지체장애인들은 휠체어를 타거나 자원봉사자들의 등에 업혀 산행했으며, 시각·청각·발달 장애인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강행군을 계속했다. 특히 앞을 전혀 못보는 장남식(22·한세대 4)씨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구룡폭포가 있는 관폭정까지 올라 주위를 감동시켰다.

a 신한은행 자원봉사자가 지체장애인을 부축하여 구룡연을 탐승하고 있다

신한은행 자원봉사자가 지체장애인을 부축하여 구룡연을 탐승하고 있다 ⓒ 석희열

이날 관폭정에 올라 구룡폭포를 감상한 김영철(18)군은 "평소 엄마손을 잡고 남한산성에도 오르곤 했지만 장애인에게 등산은 늘 힘들고 고된 일"이라 말하면서도 "하지만 오늘은 자원봉사 선생님이 손을 잡아주고 보살펴줘서 힘든 줄 모르고 산정상까지 올랐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발달장애 2급인 김군은 "금강산이 내게 통일되면 꼭 다시 만나자고 얘기했다"며 "그래서 나도 금강산을 향해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오겠노라고 마음 속으로 약속했다"고 말해 주위의 감동을 샀다.

김군의 도우미로 나선 송왕섭(38·신한은행 대인고객지원부)씨는 "구룡연에 오르면서 영철이가 내 손을 꼭꼭 부여잡은 채 한 번도 놓지 않더라"면서 "물에게도 나무에게도 구룡폭포에게도 일일이 인사하며 대화하더라.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순수하고 감수성 있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수정 같이 맑은 물이 구슬처럼 흘러내린다 하여 이름 붙여진 옥류동 계곡 저마다에는 산수유가 봄볕을 받아 노랑 꽃망울을 터뜨려 화사함을 더했다. 또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온산을 물들이고 있었다.

a 북쪽의 관광 해설원이 남쪽 손님을 위해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북쪽의 관광 해설원이 남쪽 손님을 위해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 석희열

"이곳 앙지대는 금강산을 찾은 사람들이 절경에 취해 앉으면 일어설 줄 모르고 일어서면 떠날 줄 모르는 곳입네다. 그러나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저기 꼬끼리처럼 바위로 굳어지니 다음 사람을 위해 이제 빨리 가시라요."

북쪽 해설원이 들려주는 유머스런 설명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날 북 해설원 최정혜(23)씨는 남쪽 관광객들의 요구에 특유의 소프라노 음역으로 '우리민족 제일일세'라는 노래를 즉석에서 불러 인기를 독차지 했다.

"우리는 샛별이야 네가 빛나고 있으니까. 우리는 잎사귀야 네가 숨쉬고 있으니까. 우리는 친구야 너와 내가 하나이니까…."

이날 저녁 8시 문화회관에서 펼쳐진 통일문화제는 눈물과 환희가 뒤범벅이 된 감동의 물결로 넘쳤다. 이희아씨는 주최측이 후원한 피아노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혼신의 힘을 쏟아 연주해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a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20)씨가 12일 밤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고 있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20)씨가 12일 밤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고 있다 ⓒ 석희열

"너희들은 참 귀한 존재야. 하느님께서 뜻이 있어 태어난 존재야."

이희아씨는 또 북녘의 장애우들에게 편지를 써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성악가 최승원씨와 가수 박마루씨, 이희아씨가 함께 무대에 올라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한 거죠'를 부르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개그맨 조영구씨가 진행한 이날 통일문화제에는 인기가수 녹색지대와 서영은씨도 나와 자신의 히트곡을 부르며 장애인들과 함께했다.

금강산에서 소풍... 삼일포 관광

방북 셋째날 동이 트자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날도 아침 일찍 온정각에 모여 마직막 일정인 삼일포 나들이에 나서자 북쪽 경계병이 상부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삼일포 입구인 동해북부선(양양~원산간 철로)이 지나는 기차선로 앞에서 일행을 막는 바람에 10분간 관광이 늦춰지기도 했다.

이날 삼일포 관광은 일정에 쫓겨 조선시대의 문인 양사언이 시를 지었다는 봉래대에 올라 호수 가운데에 떠 있는 와우도와 신라시대 사국선이 뱃놀이를 즐기며 유하주를 마셨다는 사선정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a 함경남도 원산에서 시작된 동해북부선이 강원도 양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시작된 동해북부선이 강원도 양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 석희열

최승원(테너)씨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애"라며 "남북은 한 몸인데도 서로 이념이 달라 장애를 앓고 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통일을 위한 거대한 물결이며, 금강산은 남북이 서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학습공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우진학교 방정은(18·지체장애 1급)군은 "공기도 좋고 나무도 좋고 풀도 좋고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 이런 금강산을 가진 우리 민족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기 위해 구룡연과 삼일포에서 친구들이랑 사진도 많이 찍었다"고 자신의 감상을 또박또박 말했다.

박은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서로가 주고 받는 윈윈관계가 되어야 한다"며 "장애인도 이제 더 이상 한없이 보호받는 존재여서는 안 되며, 이번 금강산 통일행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아름다운 동행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방북 소감을 밝혔다.

a 자원봉사자들이 박은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의 휠체어를 들고 삼일포 봉래대쪽으로 향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박은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의 휠체어를 들고 삼일포 봉래대쪽으로 향하고 있다 ⓒ 석희열

박 이사장은 이어 "오늘의 행사가 북쪽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서 "색다른 경험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건강하게 만드는데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들의 금강산 통일행사는 앞으로도 해마다 열릴 것으로 알려져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거리를 좁히고 자원봉사문화의 일상화를 앞당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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