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를 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 엄마는 꽃밭에서 무늬 둥굴레를 뽑아 버렸다

등록 2005.04.20 14:06수정 2005.04.2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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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세월 유수와 같이 빠르다. 입학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다니. 우선 먹기 좋기엔 곶감이라고 엄마는 제일 기분 좋은 것이 네 등록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점이다. 부모의 보살핌을 벗어나 제 앞가림은 제가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 엄마 아빠에게는 홀가분함과 든든함이고 네게는 무한한 책임감과 자유선언이겠지.


자, 이제 세상을 향하여 힘찬 전진을 시작하는 딸에게 엄마는 한 가지 당부를 하려고 한다. 세상을 먼저 산 선배로서 말이야. 딸아 한 세상 살면서 제일 중요한 일은 사람을 얻는다는 것이다. 가까이는 배우자 선택에서 부터 친구와 동료, 또는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다 엮이는 동지관계 말이다.

인생의 성패여부는 무수한 인간관계를 어떻게 슬기롭게 엮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사람. 그런데 사람처럼 알기 어려운 동물이 또 있을까? 오죽하면 옛날 어른들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겠니.

딸아, 사람을 볼 때 제일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군계일학'처럼 군중 속에서 화려하게 부상하는 인재. 우리가 선망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그 인물이 사실은 가장 경계해야 될 인물이 아닌가 싶다.

머리 회전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재. 나는 머리 좋은 사람들을 보면 우선 겁부터 난다. 저렇게 좋은 머리가 어떻게 쓰일까 그것부터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종잇장처럼 얇은 회감을 뜨는 회칼. 날카롭게 휘어져 말 그대로 비수처럼 빛나는 칼날. 살짝만 스쳐도 사정없이 베어지는 그 칼날은 마음먹기 따라서 가정 강력한 흉기가 된다.

지知 덕德 체體란 말이 있다. 딸아, 덕이 겸비되지 않은 지는 자칫 잘못 다루면 그대로 사회를 통째로 흔드는 사회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와 덕의 불균형이 심하다면 차라리 덕이 조금 더 많은 쪽으로 선택을 해라.


미련퉁이는 저 하나만 망가뜨리지만 머리 좋은 인간은 제 주변은 물론 무수한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생각은 '지덕체'가 아니라 '덕체지'로 순서가 바뀌어야 된다고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해도 우선 엄마 아빠와 한 시대를 같이 겪어내다 이제는 사회 지도층으로 우뚝 선 아저씨 아줌마들을 보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지도자는 제 이익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러고 싶어도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는 마음.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외면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욕심에 제동을 걸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부정부패. 아무리 외국어가 능통해도, 무슨 무슨 박사에, 고시 몇 관왕. 각 분야에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라 해도 그 속에 기본적인 도덕심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등용하면 당연히 그리 되는 것이지 않겠니.

빛깔이 화려하고 향이 강력한 식물은 보통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것이 많단다. 머리 좋고, 잘 생기고, 재주가 많은 사람. 거기에 너무 혹하지 말고 네 인생을 건강하게 살찌울 때 보탬이 되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하도록 노력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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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힌 무늬 둥굴레 ⓒ 조명자

출세하지 못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도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그런 친구를 귀하게 생각하거라. 오늘 아침 화단에서 그동안 정성 드려 가꾸던 꽃들 중에 무늬 둥굴레를 가차 없이 뽑아 버렸다. 그 놈의 생명력이 얼마나 왕성한지 아무 데나 던져 놓아도 뿌리를 내려 그 주변 꽃들을 다 잡아 버리는 강력한 생명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꽃밭에서 아옹다옹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저만 살자고 주변 모든 꽃들을 살 수 없게 만드는 꽃은 더 이상 좋은 꽃이 아니다. 꽃이 따로 있고 잡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더라. 주변 풀들을 못살게 만드는 것은 이름이 뭐든지 모두 잡초가 된다는 사실. 엄마가 시골 살며 터득한 삶의 지혜다.

남편감이든, 친구든 혹은 네가 따르고 싶은 선배를 만났다면 마음이 넉넉해 주변을 함께 어우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인가를 먼저 따져 보거라. 인생은 굵고 짧게 사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더라. 가늘더라도 비단처럼 아름다운 삶. 풀 속에 숨어 있어도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가진 풀꽃처럼 사는 삶.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삶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것이 설령 남이 알아주지 않는 누추한 삶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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