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간다는 것

[인터뷰] 한국레즈비언상담소 김김찬영 대표

등록 2005.04.29 00:00수정 2005.04.29 17:2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녀와 저는 너무 사랑하지만 헤어졌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눈이 무서웠고, 미래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문득문득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괴로움에 누군가는 먼저 떠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 사랑을 이렇게 고통 받으며 계속 가져가야 할지…."


"학교에 저희를 둘러싼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저희를 보면서 수근거리고 대놓고 욕합니다. 이러다 부모님의 귀에까지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매일을 불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a 지난 4월 초 문을 연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지난 4월 초 문을 연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의 상담 사례집에 나온 사례들이다.

'우연찮게' 이성애자가 많은(혹은 많은 것처럼 보이는) 탓에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는 늘 '다른' 그리고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결혼과 출산을 삶의 필수 코스로 여기는 사회의 '경직성'은 성적 소수자의 다양한 관계 맺기를 부정하고,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의 결합만을 인정하는 제도의 편협함은 성소수자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레즈비언, 게이 아니면 트랜스젠더. 흔히 우리 사회에서 '변태'로 총칭되는 그 이름들에는 수많은 편견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성소수자들은 '벽장에서 나온다'. 성소수자로서 '조금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 선택은 어떤 의미일까. 막연할 수도 있는 질문을 가지고 지난 26일 한국레즈비언상담소 김김찬영 대표(별칭 나루)를 만났다(취재원 보호를 위해 사진은 찍지 않았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지난 4월 12일 문을 열었다.


나는 당당히 '레즈비언'의 삶을 '선택'했다

a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홈페이지 내의 '끼리끼리' 회원 공간(http://lsangdam.org/member).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홈페이지 내의 '끼리끼리' 회원 공간(http://lsangdam.org/member).

- 성소수자들에게 '선택'은 어떤 의미인가. 그들이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는가?
"선택인 측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꿈과 지향을 가진 사람들은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이 더 큰 쪽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레즈비언은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전자의 경우 사람들이 우려하고 걱정하는 정도지만 레즈비언은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는다. 그저 '다양한 삶'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억압들이 따르는 것이다.


'레즈비언'은 구분 짓기를 위해 이성애자 사회가 만들어낸 용어다. 이때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선택'한다는 것은 레즈비언으로서의 고통과 기쁨을 모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정체화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레즈비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선택에는 무수한 위험과 억압이 뒤따른다."

- 레즈비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무수한 위험과 억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첫 번째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들 수 있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레즈비언은 '변태적 존재'들이다. 자신이 바로 그 '변태적 존재'라는 사실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두 번째는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다.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데도 법적으로 레즈비언은 비혼 여성일 뿐이다. 보험이나 연금 문제에서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 법적으로 인정받거나 제공받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상담소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폭력 범죄에 관한 문제들이다. 레즈비언들이 아웃팅(타인에 의해 개인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에 대한 협박 때문에 강간이나 금품 갈취를 당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실제로 옛 애인이 직장 동료들에게 알리겠다며 포스터를 붙이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례가 있었다. 피해자 중 상담을 하는 비율이 극소수인 점을 감안할 때 실제 그 수는 굉장히 많을 것이다."

- 동성애자인권단체 성격이 강했던 '끼리끼리'에서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 전환했다.
"'끼리끼리'는 1994년 11월 만들어졌는데 초기에는 커뮤니티적 성격이 강했다. 이후에는 친목단체보다는 인권운동단체로서 정체성을 가지며 동성애 바로알기 교육, 레즈비언 자긍심 갖기 프로그램 등 활동을 해 왔다. 국가인권위 설립 이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에 대해 제도적인 구제의 길이 열리기도 했지만 레즈비언 문제는 다른 이슈에 비해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레즈비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난 4월 12일 상담소로 전환하게 됐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사람들... 한국 사회가 답답하다

a 한국레즈비언 상담소 홈페이지(http://www.lsangdam.org)

한국레즈비언 상담소 홈페이지(http://www.lsangdam.org)

- 어떤 내용의 상담이 많은지, 그리고 나름의 상담 원칙이 있다면?
"상담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원칙적으로 법적인 절차를 따라 사건을 해결하되 피해자가 자기를 긍정하면서 안정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이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내담자들에게 '당신은 레즈비언'이라거나 '이렇게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도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의 성정체성을 결정할 순 없다. 모든 활동가들 역시 혼란과 고민, 수용의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담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마치고 친구들도 만나고 커뮤니티 활동도 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쉽게 내담자의 정체성을 단정하지 않는다. 레즈비언의 삶이 순탄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상담소에서는 우선적으로 내담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돕고, 되도록 다양한 가능성의 항을 제시해 내담자 스스로 선택하게끔 한다. 상담가들은 레즈비언이나 바이섹슈얼(양성애자)로 정체화 하면 이러이러한 장단점이 있고 성정체성은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고, 살면서 변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우리가 축적한 경험들을 전달해 주면서 내담자들이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끼리끼리' 상담에는 무슨 고민이 오갈까

2000년 11월부터 2004년 4월까지 끼리끼리의 사이버 상담실 '징검다리'에 접수된 내담 사례에 관한 통계에 따르면 청소녀 관련 상담이 26%(총 447건의 상담 사례 중 118건), 동성교제와 성정체성 관련 상담이 각각 24%(각 106건)로 상담의 주를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을 청한 청소녀들은 '나는 동성애자인가?'와 같은 정체성에 관한 내담을 하는 경우가 절반 이상(65%)이었다. '이반(이성애자를 의미하는 일반(一般)에 반대하는 의미인 이반(二般) 혹은 다른(異) 사람들이라는 뜻)이면 어쩌냐'는 걱정부터 '정체성의 혼란은 성장 과정에서 겪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냐'는 물음까지 그들의 상담 내용은 다양하다.

특히 아웃팅과 폭력 등 범죄 상담도 4%(16건)나 되었는데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측은 드러나지 않는 사례들이 훨씬 많으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 동성애 폭력 범죄는 심각한 수준으로 추정했다. 아웃팅하겠다는 협박을 하며 금품을 갈취하거나 성폭력을 하는 사례가 대부분으로 상담소측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하고 무조건 두려워하지 말고 피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조언했다.
폭력 범죄의 경우 사건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활동가 입장에서는 법적 절차에 따라 가해자를 처벌하고 공론화시켜 레즈비언 인권 개선의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다. 피해자들은 고소할 때 형사나 가족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고소 과정에서 만나는 형사나 변호사, 법조인들 역시 동성애 혐오증(호모포비아)을 가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2차, 3차의 피해가 계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형사 처벌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 이 정도까지만 돼도 다행이다. 보통 폭력 사건은 전화 상담이 대부분인데 실컷 상담하고 전자우편이나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하면 꺼리는 내담자들이 많다. 레즈비언 단체에 자신의 인적 사항이 남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실제 면접 상담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담자가 굉장히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 상담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는 무척 안타깝다."

- 김김 대표 역시 그런 고민들을 똑같이 했을 텐데.
"나는 고등학교 때 한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나는 왜 남들과 다른가?'로 시작되는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이 남자 연예인을 쫓아다니고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하는 나이에 왜 나는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더 신경이 쓰일까? 그렇게 고민을 시작해 레즈비언인 나를 받아들이는 데 2년 반이 걸렸다. 나 역시 친구에 대한 감정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헷갈렸고 억지로 그 친구를 멀리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 무렵 내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정보였다.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들의 사이트를 둘러보며 상담 사례나 성명서를 읽었다. 그때 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자기를 받아들이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랬다. 그 정보들이 많은 힘이 되었다. 대학에 가서는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했고 '끼리끼리' 활동을 한 지는 1년 반쯤 됐다.

커밍아웃해도 정신병원에 끌려가지 않는 사회 되기를

a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홈페이지에 있는 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홈페이지에 있는 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

- '끼리끼리'에서 레즈비언상담소로 전환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듯하다. 가장 크게 우려했던 점은 무엇이며 반면 기대했던 효과는 무엇이었나.
"무엇보다 '인권' 타이틀을 놓는 것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가장 컸다. 그렇다고 인권상담소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웃음). 그저 개인적 차원에서 상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으로 그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회원들의 우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소로 바꾼 이유는 인권 운동이라는 타이틀을 가지는 한 레즈비언의 접근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분명히 차별인 행위를 단순한 불편함, 불쾌함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인권은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이 '너 남자친구 있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불편한데 그 불편함이 인권 침해라는 것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다. 그런 경험을 듣고 레즈비언들이 겪는 불편함, 자괴감을 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담소의 주임무라고 생각했다.

또한 상담소로 전환하면서 더 많은 사례들을 접하게 된 만큼 사례를 유형화하고 레즈비언이 경험하는 차별을 더 적극적으로 이슈화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상담소 내에 정책이나 사건 지원, 타 단체와의 연대 등의 팀을 구성했다."

'끼리끼리' 10년, 상담소로 결실

1994년 11월 '끼리끼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커뮤니티의 성격이 강했다. 같은 동성애자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인터넷이 확산된 90년대 후반 커뮤니티로서의 정체성은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컴퓨터 앞에서도 다른 레즈비언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냐, 인권운동이냐의 갈림길에서 '끼리끼리'는 인권운동단체로서 정체성을 규정하기에 이른다.

그후 '끼리끼리'는 인권운동단체로서 회원들과의 만남이나 교육 외에도 동성애 바로알기 교육, 레즈비언 자긍심 갖기 프로그램, 아웃팅 및 레즈비언 대상 혐오 범죄 대응 등의 활발한 활동을 펼쳐 왔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에 대해서도 제도적인 구제의 길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레즈비언 이슈는 다른 인권 이슈에 비해 전문적인 연구가 덜 이루어졌다. 이를 '드러나기'가 차단된 레즈비언의 현실 때문이라고 판단한 '끼리끼리'는 또 한번의 변신을 고민하게 된다.

'끼리끼리'는 레즈비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고 레즈비언의 폭력과 차별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4월 12일 상담소로 전환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 거듭난 '끼리끼리'는 그 이름은 사라졌으나 레즈비언들의 지지자로서 굳게 섰던 성과는 그대로 남을 것이다.
- 상담소 개소하고 한달쯤 흘렀는데 기대했던 변화들이 있었는가?
"확연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웃음). 상담소로 전환하면서 정말 상담이 많이 늘었다. 평균의 3배 정도? 레즈비언 커뮤니티 내에서도 호의적인 반응들이 많다. 상담소 역시 인권운동단체의 고질적인 문제, 인력난 재정난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상담이 너무 많아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 실질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
"필요한 내용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순서를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중요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레즈비언들이 안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내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해도 정신병원에 끌려가거나 감금되지 않고, 친구들로부터 절교 당하지 않는, 그래서 레즈비언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런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개인적으로도 바람이 있을 것이다.
"상담소가 일반 가정집이어서 면접실이 분리되어 있거나 쉼터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그게 너무 속상하다. 재정을 확보하고 활동가가 늘면 내담자들에게 친화적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끼리끼리에서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 전환하면서 보다 많은 레즈비언들을 만나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이성애자에게도 많은 것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02-718-3542

덧붙이는 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02-718-3542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