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과연 새로 태어났는가

[유창선 칼럼] 권력과 권한의 분산은 시대적 흐름이다

등록 2005.04.28 11:06수정 2005.04.2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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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외로운 검찰? 어제(27일) 오전 공판중심주의 강화 등 검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개혁논의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수도권 지역 검사장회의가 열린 가운데, 이날 오후 대검찰청 직원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어두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외로운 검찰? 어제(27일) 오전 공판중심주의 강화 등 검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개혁논의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수도권 지역 검사장회의가 열린 가운데, 이날 오후 대검찰청 직원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어두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요즘 검찰이 무척 바쁘게 보인다. 중요한 수사가 많아서만은 아닌 듯하다. 외부로부터의 잇달은 도전 앞에서 검찰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서 분주한 모양이다.

어제도 수도권 긴급 검사장회의가 열렸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추진중인 공판중심주의 강화 방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크게 제약할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개진되었다고 한다.

사개위의 구상이 현실화되면 검찰에서 작성된 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고, 재판에서 피의자에 대한 심문도 폐지된다. 검찰은 크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조만간 일선 검사장 회의를 소집하여 보다 강력한 대응의사를 보이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개위가 국민의 사법참여 확대를 위해 추진중인 이같은 방향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긍정적인 시선이 많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검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위상 추락에 대한 위기감이 생겨나는 모습이다.

분주한 검찰, 그러나...

검찰이 기존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문제는 이것 하나 뿐이 아니다. 공직부패수사처 설립문제는 상대가 청와대이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고위공직자 부패수사 전담기구인 공수처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얼마전 투명사회협약식에서는 노 대통령이 공수처의 조속한 설립을 직접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요지부동. 송광수 전검찰총장 때부터 공수처 추진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공격적인 대응을 계속해왔다. 이 정도면 대통령 위에 검찰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했다. 급기야는 최근 노 대통령이 다시 한번 공수처의 필요성을 검찰에게 설득하는 통첩성 주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검찰과 경찰간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수사권조정문제도 상대가 경찰이기는 하지만, 역시 미묘한 문제이다. 경찰의 수사권독립 필요성 역시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해온 문제이다.

물론 노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검찰과 경찰 사이의 논의에 맡겼지만, 가급적 경찰에게도 많은 권한이 나누어지기를 바라는 속내는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은 개정할 수 없다는 검찰의 완강한 자세 앞에서 논의는 벽에 부딪힌 상태이고, 결국 노 대통령이 논의의 조속한 매듭을 주문하는 상황으로까지 이르게 되었다.


검찰이 당면한 사안의 공통점, 권한 분산

이들 문제는 모두 검찰의 권한 분산과 직결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각 사안에 대한 검찰의 방어논리는 각기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결국 검찰의 권한 약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한결같다.

자신의 권한을 지키려는 검찰의 이같은 모습들이 청와대 권력으로부터 검찰독립을 수호하려는 차원의 것이라면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검찰의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검찰만이 '절대선'이라는 과신(過信)이 자리하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청와대든 경찰이든,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불신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에 대한 견제나 권력분산이 거론되면 '검찰흔들기'라고 반발하는 모습은, 그다지 객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검찰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일은 과연 정의에 반하는 일인가. 검찰은 누구의 견제도 필요없는 우리 사회의 절대선으로 대접받을 위치에 있는가. 유감스럽지만, 그렇다는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검찰은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어떤 외압도 의식하지 않고 성역없는 수사를 벌인 검찰의 모습에 많은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검찰개혁을 위한 필요조건이었지 충분조건은 되지 못했다.

다른 한편에서 목격되는 검찰의 모습을 보면 아직 '새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시기상조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완강하게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온 모습은 법의 집행기관이기에 그러했다고 치자. 대표적인 조작의혹 사건으로 꼽히고 있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담당검사들이 검찰인사에서 승진했다는 소식은 검찰의 현주소를 되묻게 만든다.

검찰은 과연 새로 태어났는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과거사에 대한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 가운데 유독 검찰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국정원, 국방부, 경찰 모두가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며 과거사에 대한 자기고백을 추진하고 있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검찰 역시 과거사에 대한 청산의 필요성으로 말하자면 어느 기관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은 과연 시대정신을 함께하는 정의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기득권을 지키는데 매몰되어 있는 또 하나의 권력일까. 어느 하나로 답하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검찰만이 우리 사회의 절대권력으로 자리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모든 권력이 그러하듯이 검찰 역시 권한의 분산에 동의해야 하고, 제도적인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누구도 거스르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이다. 그같은 흐름에 맞서 만사 제치고 자신의 권한을 지키는데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선자금 수사를 보며 검찰에게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검찰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검찰이 지금 풀어야 할 핵심적 과제는 결코 '권한 지키기'가 아니라, 어떻게해야 새로운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검찰의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달려있음을 생각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시민의 신문> 4월 26일에 기고한 글을 기초로 하여 다시 쓴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시민의 신문> 4월 26일에 기고한 글을 기초로 하여 다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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