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을 담아낸 대나무소리는 무엇일까?

대금명인 이생강의 60년 결산음반 '죽향' 나와

등록 2005.04.28 23:52수정 2005.04.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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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금 부는 이생강 명인

대금 부는 이생강 명인 ⓒ 신붕민예

"나이 지긋한 연주자는 돗자리 위에 좌정하고, 취공에 혼을 불어넣었다. 주위에 산재해 있던 빛은 한 곳으로 모이고, 고요가 꿈틀대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끓는 소리가 남의 애간장을 다 녹이다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객석에는 사람이 없는 듯 여겨졌다."

수필가 강운정씨는 '그래 우리가 진정 사랑한다면'이란 책에서 이생강 선생의 연주를 이렇게 그려낸다.


우리말로 '젓대'인 대금의 한국 최고 명인으로 꼽히는 죽향(竹鄕) 이생강(68·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선생이 대나무소리 60돌을 맞았다. 그 60돌을 맞아 신나라(회장 김기순)에서 '이생강의 음악인생 60주년 기념앨범 - 죽향(竹香)'이란 기념음반이 나왔다.

그는 '퓨전국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의 원조로 불린다. 보수적인 국악의 풍토 속에서 눈총을 받아가며, 60년대 말부터 대금과 서양악기와의 협연은 물론 대금을 이용한 가요, 팝, 재즈 연주를 시도했고, 이렇게 만든 크로스오버 음반도 수십여 종이나 된다.

국악기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를 따라 5살 때부터 피리, 단소 등을 접하기 시작한 그는 대금명인 한주환에게서 대금을 전수받는다. 각고의 노력 끝에 대금 연주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6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본, 멕시코 등 세계 각국에 우리의 음악을 전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대금독주를 했고, 1996년엔 중요무형문화제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이번 음반은 국악 관악기를 총동원한 독주집으로 대금산조와 피리산조를 담은 것과 퉁소산조, 소금독주, 단소산조, 태평소독주를 담은 것 2장으로 나눠 냈다.

첫째장 이생강의 대금산조에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동살푸리/휘모리가 이생강류 피리산조에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가 있다. 둘째장에는 이생강류 퉁소산조의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가 소금독주에는 긴 아리랑, 이별가, 상주함창(연밥 따는 노래), 한오백년, 정선아리랑이 이생강류 단소산조에는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가 태평소 독주에는 태평소 능게, 태평소 시나위가 실려 있다.


a ‘이생강의 음악인생 60주년 기념앨범 - 죽향(竹香)’ 음반 표지

‘이생강의 음악인생 60주년 기념앨범 - 죽향(竹香)’ 음반 표지 ⓒ 신붕민예

이생강 선생은 "스승들은 우리에게 산조 혹은 산조라고 말할 수 있는 원액을 물려주셨고, 그 원액을 대중들이 음미할 수 있도록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우리 제자들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산조를 연주하면서 스승의 산조세계를 얼마나 바르게 담아내느냐 하는 것과 스승이 얘기하고자 하는 산조정신을 얼마나 감각적으로 전달하느냐 하는 것이다"라는 산조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대금산조 중 중중모리와 자진모리는 이생강류 산조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으로 대금소리와 가장 흡사한 온갖 새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연주자의 내공이 높지 않고서는 미끄러지기 일쑤인 이 대목은 그만이 할 수 있는 뛰어난 연주로 평가받고 있다.


대나무소리 60돌을 맞는 이생강 선생의 감회는 어떨까? 28일 그와 인터뷰를 했다.

- 60돌을 맞아 떠오르는 특별한 감회는?
"특별한 감회랄 것은 없습니다. 앞만 쳐다보고 정진해온 것이 어언 60년이나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도 없는데 다만 그동안을 되돌아보고, 재정리, 재정립해야할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겠지요."

- 이 선생님은 그동안 대중음악을 국악기로 연주하는데 앞장섰는데 그 까닭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총독부가 문화말살의 한 가지로 민족음악을 못하게 한 이후 술집 음악으로 내쳐진 게 국악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50~60년대까지만 해도 국악은 곁방살이의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대중들은 국악을 외면하고 유행가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대중들을 국악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해도 미동도 하지 않을 분위기를 깨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선 대중가요로 대중들을 먼저 불러 모으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습니다. '목포의 눈물'을 가르쳐준다고 하고선 오는 사람에게 목포의 눈물의 하기 위해서는 아리랑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설득하고, 아리랑을 하다가 산조를 했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딴따라라는 손가락질과 자포자기를 극복하려면 동의와 열광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뛰어난 실력만이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어디서나 어떤 음악이던 쉽게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기에 국악기로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a 태평소를 부는 이생강 명인

태평소를 부는 이생강 명인 ⓒ 신붕민예

- 이 선생님은 출판물과 국악음반, 국악기 제작, 판매 등 다양한 사업을 병행하시는데 이것이 순수 예술 활동과는 좀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무리 훌륭한 국악연주라도 음반사는 돈이 되지 않으면 음반내기를 기피했고, 또 내더라도 일정 분량의 음반을 낼 수밖에 없어서 소량만 발매해야 했고 재발매 때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연주자나 편곡자의 지위보다는 음반사가 모든 저작권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한 가지 이유입니다.

또 다른 까닭은 이 사업이 아직은 돈이 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재원이 되면 후학들이 어려움 없이 국악을 배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국악을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 앞으로의 계획은?
"제 염원은 민속예술학교를 설립하는 일입니다. 서민들이 즐기던 민속악이야 말로 제대로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인데도 여전히 1대1 도제식으로 전수되고 있을 뿐 체계적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지금 대부분의 국악 교육기관은 정악에 치우쳐져 있어서 민속악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속악의 저변을 좀 더 넓혀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그런 날이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것이 민속예술학교 설립의 당위성입니다."

- 대나무소리의 삶 60돌을 맞아 국악인이나 국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
"흔히 우리의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말합니다. 국악도 가장 세계적인 것 중의 하나인데 특히 대나무소리는 더욱 그렇습니다. 대금은 청아하고, 맑고 깨끗한 푸른 소리를 냅니다. 많은 대중들이 이런 대나무 소리를 듣고, 대나무를 닮아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호를 죽향(竹香)이라고 지은 그의 속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음악이란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에게 붙인 것이요,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여 핏줄이 뛰게 하고, 정신을 통하도록 하는 것이다."

위 문단은 악학궤범 서문에 있는 말인데 이것이야 말로 이생강 선생이 마음속으로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a 대금을 부는 이생강 명인

대금을 부는 이생강 명인 ⓒ 신붕민예

죽향(竹香)

대나무 향기가 볼을 스친다.
먼 자락을 감도는 물이 있고
잔잔한 물소리를 타고 흐르는 죽향의 내음이
한결 고요를 더한다.

하얀 도포 자락을 훌쩍 걷어 올리고
바위에 걸터앉아 젓대를 꺼내 불면
여리디 여린 죽향(竹香)의 내음이 십리를 간다.

젓대 속에 몸을 맡기고
세월을 묻어버린 대가의 모습은
멋스럽다는 표현이 도리어 촌스럽다.


김호심씨의 이 시는 이생강 명인을 적절히 그려낸다. 지금도 스피커에서는 끊일 듯 끊일 듯 이어지는 젓대소리가 그윽하다. 한을 삭이는 정악대금 연주에 비해 한을 풀어낸다는 느낌이 한껏 다가온다.

대금산조 최고의 명인 이생강이 바친 60년 세월을 품은 음반 '이생강의 음악인생 60주년 기념앨범 - 죽향(竹香)'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이에게도 담담한 향기를 안겨줄 것이다. '젓대'는 그에게 무엇이었으며, 우리에겐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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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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