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달팽이와 함께 사신 어머니

등록 2005.05.02 21:11수정 2005.05.0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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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와서 달팽이 국 한술 뜨고 가라."


모처럼 집에 와서 갈 생각부터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재촉을 하십니다. 마늘잎 돋아날 무렵의 달팽이 국이 가장 맛있다는 말도 덧붙이십니다. 벌써 밥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구수한 달팽이국과 수북이 담은 밥 한 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이기원
"또 달팽이 잡으세요?"
"개울에 달팽이가 많길래 잡았다. 꿈적대면 돈도 되고 좋지 뭐냐."

어머니 앞에 앉아 달팽이 국에 밥을 말아먹으면서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휘어진 허리로 걷기조차 힘겨워 하시는 어머니가 달팽이를 잡으신다는 게 늘 마음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만 편히 사시라고 해도 막무가내이신 어머니의 고집 때문에 언성을 높인 적도 많습니다.

"어제 우산동 가서 나물하고 달팽이 팔아 십만 원 벌었다."

늘 이런 식입니다. 어머니는 자랑삼아 하시는 말씀이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상합니다. 돌아보면 어머니는 평생을 달팽이를 잡으며 사셨습니다. 시집이라고 와서 보니 땅 한 뼘 없는 가난한 집이라 뼈 빠지게 농사라고 지어봐야 입에 풀칠하기 바빴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이 되는 건 뭐든지 해보았는데 그 중 제일 돈이 많이 된 것이 달팽이였다고 합니다.


이기원
어릴 때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개울에 반쯤 잠겨 달팽이 잡던 어머니 모습입니다. 얼음이 채 녹지도 않은 이른 봄부터 달팽이를 잡기 시작하셨습니다. 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인 가을 들녘의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어머니는 달팽이를 잡으러 개울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잡은 달팽이를 빨간 고무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시장으로 팔러 가셨습니다. 한군데 머물러 앉아 파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식당이며 가정집을 돌아다니며 파셨습니다.


그 힘겨운 세월을 고스란히 몸으로 버텨오시던 어머니가 달팽이를 팔러 시장에 나가셨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신 적도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려오던 트럭에 치인 것입니다.

전화 받고 응급실로 달려간 아들 앞에서 피로 칠갑을 해 응급실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는 괜찮다며 얼른 학교 가서 아이들 가르치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 사고로 어머니는 4개월을 병원에서 지내셨습니다.

항상 힘겹게 사시던 어머니의 얼굴은 항상 거칠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오래 계시던 어머니의 얼굴에 뽀얗게 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뵙고 병원 문을 나설 때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어머니도 편안히 지내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시면 저렇게 고운 얼굴이 될 수 있다는 걸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뒤부터 어머니는 다시 달팽이를 잡았습니다. 두 아들이 다 직장 잡고 결혼해서 아들 낳고 딸 낳아 잘 기르며 생활하니 이젠 편히 사셔도 좋으련만 달팽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으시고 여전히 개울로 나가십니다.

지난 겨울, 아버지가 암 치료를 받으신 뒤부터 어머니 건강도 많이 상하셨습니다. 아버지 치료비며 생활비는 다달이 보내드려도 어머니는 달팽이를 잡으러 가십니다. 그런 어머니를 말릴 생각도 못합니다. 자식들이 말린다고 들으실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달팽이 국을 다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산에서 뜯은 나물과 개울에서 잡은 달팽이를 봉지에 넣어 차 트렁크에 넣으시던 어머니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달팽이 국에는 마늘잎이 최고라며 마늘잎을 뜯어줄 테니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빌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빌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부모님 자서전 대필 응모 기사입니다. 강원도 횡성지방에선 다슬기를 달팽이라 부릅니다.

덧붙이는 글 부모님 자서전 대필 응모 기사입니다. 강원도 횡성지방에선 다슬기를 달팽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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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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