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어릴 때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개울에 반쯤 잠겨 달팽이 잡던 어머니 모습입니다. 얼음이 채 녹지도 않은 이른 봄부터 달팽이를 잡기 시작하셨습니다. 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인 가을 들녘의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어머니는 달팽이를 잡으러 개울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잡은 달팽이를 빨간 고무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시장으로 팔러 가셨습니다. 한군데 머물러 앉아 파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식당이며 가정집을 돌아다니며 파셨습니다.
그 힘겨운 세월을 고스란히 몸으로 버텨오시던 어머니가 달팽이를 팔러 시장에 나가셨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신 적도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려오던 트럭에 치인 것입니다.
전화 받고 응급실로 달려간 아들 앞에서 피로 칠갑을 해 응급실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는 괜찮다며 얼른 학교 가서 아이들 가르치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 사고로 어머니는 4개월을 병원에서 지내셨습니다.
항상 힘겹게 사시던 어머니의 얼굴은 항상 거칠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오래 계시던 어머니의 얼굴에 뽀얗게 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뵙고 병원 문을 나설 때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어머니도 편안히 지내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시면 저렇게 고운 얼굴이 될 수 있다는 걸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뒤부터 어머니는 다시 달팽이를 잡았습니다. 두 아들이 다 직장 잡고 결혼해서 아들 낳고 딸 낳아 잘 기르며 생활하니 이젠 편히 사셔도 좋으련만 달팽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으시고 여전히 개울로 나가십니다.
지난 겨울, 아버지가 암 치료를 받으신 뒤부터 어머니 건강도 많이 상하셨습니다. 아버지 치료비며 생활비는 다달이 보내드려도 어머니는 달팽이를 잡으러 가십니다. 그런 어머니를 말릴 생각도 못합니다. 자식들이 말린다고 들으실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달팽이 국을 다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산에서 뜯은 나물과 개울에서 잡은 달팽이를 봉지에 넣어 차 트렁크에 넣으시던 어머니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달팽이 국에는 마늘잎이 최고라며 마늘잎을 뜯어줄 테니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빌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빌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부모님 자서전 대필 응모 기사입니다. 강원도 횡성지방에선 다슬기를 달팽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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