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키 큰 민들레 봤어요?

<포토 에세이>

등록 2005.05.05 17:55수정 2005.05.0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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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치악산 금대리 계곡에서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민들레를 보았습니다. 살랑대는 바람결에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사정없이 흔들리는 약한 민들레가 기름진 옥토는커녕 마음 놓고 뿌리를 뻗을 흙조차 보이지 않는 바위 틈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랐습니다.


이기원
이기원
햇볕이라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좋으련만 그도 또한 여의치 않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고 또 자라는 나무들에겐 작고 힘없는 민들레를 위해 가지를 접어줄 미덕이 있을 리 없습니다. 민들레가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 누렇게 떠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가도 나몰라라 외면할 뿐입니다.

이기원
민들레도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헛된 기대 품고 있다가 절망의 수렁에 빠지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길을 찾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는 가늘고 길게 살아야 합니다. 굵고 짧게 사는 미덕이야 양지바른 곳에서 뿌리내린 팔자 좋은 민들레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입니다.

이기원
주어진 환경을 탓하고 주저앉아야 누가 대신 꽃을 피워줄 리 없습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나비랑 벌도 오지 않습니다. 결국 홀씨를 만들어 날리지 못한 채 쓸쓸히 시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비참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있는 힘 다 쏟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기원
이기원
그 험한 곳에서 뿌리를 내려 꽃 피우고 홀씨를 맺은 민들레의 고단한 삶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민들레처럼 붙박이로 사는 삶도 아니면서 속절없이 흔들리며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워집니다.

아이들과 함께 홀씨 맺힌 민들레 줄기를 꺾어 입으로 불었습니다. 저 홀씨들은 거친 땅이 아닌 기름진 땅에 자리를 잡아 굵고 짧은 민들레로 되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민들레 홀씨들을 날려보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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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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