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연꽃 속에서 스님을 추억하다

등록 2005.05.10 09:01수정 2005.05.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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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이 있어 조금 늦게 퇴근했습니다. 마산시청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시청 앞 광장에 연꽃이 눈부시게 피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연꽃인데 꽃 속에 전등을 설치했나 봅니다. 낮에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습니다.


a 아름다운 연꽃입니다

아름다운 연꽃입니다 ⓒ 박희우

며칠 후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저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절에 대한 친근함만은 여전합니다. 저는 절에서 고시공부를 제법 오래했습니다. 물론 실력이 없어 떨어지긴 했지만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8년에 '법원직시험'에 합격했습니다. 00지원에 발령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청사로 들어오는데 민원 대기실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웬 스님이 앉아있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스님이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엉겁결에 저도 두 손을 모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스님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스님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스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삼천포 00사에 계신 주지스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누르스름하고 눈에도 힘이 없습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건강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스님이 반갑게 제 손을 잡았습니다. 성공할 줄 알았다며 흡족하게 웃으셨습니다. 저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고시에 합격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스님이 황급히 손을 저었습니다. 법원에 들어왔으니 고시에 합격한 거나 진배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이 불쑥 제게 두루마리를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주지스님은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저는 틈틈이 주지스님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매일 똑같은 그림만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언제나 스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사 스님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눈썹이 진하고 검은 수염이 무성했습니다. 인자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인상을 팍 쓰고 있는 게 마치 사천왕상 같았습니다. 저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그림의 주인공이 '달마대사'라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스님은 '달마도'를 잘 그리셨습니다. 저는 스님이 건넨 두루마리를 펼쳤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달마대사가 아닐까. 제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달마대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다른 감회에 젖었습니다. 절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눈이 내리고 이슥한 밤에 스님이 제 방을 찾습니다. 녹차를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차 향기 방안에 가득할 즈음 스님은 제 방을 나섭니다. 이어지는 새벽염불소리에 저는 미처 하지 못한 공부를 계속합니다. 햇볕이 제법 따스한 오후, 스님이 저를 데리고 절 아래 마을을 찾습니다. 신도인 듯한 할머니에게 삶은 닭 한 마리를 시주 받습니다. 스님이 그걸 제게 권했고 저는 허겁지겁 닭다리를 뜯었었습니다.


저는 구내매점으로 스님을 모셨습니다. 스님이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더니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스님의 집안동생이 형사사건으로 구속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어렵게 말을 이어갔지만 저는 계속 손가락만 만지작거렸습니다. 당시 저는 갓 들어온 신참이었습니다. 조직의 생리는 물론 업무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와드릴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일일이 스님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스님의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스님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제 손을 잡으시더니 꼭 한번 절에 오라고 하십니다. 저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그게 스님과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몇 년 후에 스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굳이 저는 스님의 죽음을 '열반'이나 '입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스님의 도(道)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스님은 지극히 인간적이셨습니다. 세속과 인연을 끊었으면서도 차마 집안 동생의 불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눈시울을 붉히곤 합니다. 그때 왜 스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는지 후회가 되곤 합니다. 죄는 죄고 사람은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아무리 제가 갓 입사한 처지였다고는 하나 충분히 그런 사건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무심한 세월입니다. 그때가 1989년이었으니 벌써 16년이 흘렀습니다. 열 몇 번의 이사를 다니다보니 스님께서 주신 '달마도'도 분실하고 말았습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불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 안내는 얼굴이 공양이고, 험한 말 안 하는 입이 미묘한 향이라고 했습니다."

스님의 삶은 이러했습니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그 절에 가봐야겠습니다. 스님과 함께 보았던 연꽃이 지금도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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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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