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은 젊은 연인들만 가라고?

못 다한 청춘 즐기는 할아버지·할머니들

등록 2005.05.11 17:00수정 2005.05.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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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평에 있는 남이섬에 다녀왔다. 교회에서 경로관광으로 하는 행사라 그런지 그리 많은 분들이 간 것은 아니었다. 도우미로 따라나섰던 대여섯 분을 합하면 모두 스물두 명 정도는 됐다. 그 분들을 봉고차 두 대에 나눠 모시고 천천히 남이섬을 향했다.


충주에서 남이섬까지 대략 다섯 시간 정도 걸린 듯했다. 다섯 시간 정도면 상당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불러대는 노랫가락을 듣다보면 그 지루함은 썩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뽕짝에다 판소리에다 각설이타령까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으니 되레 재미만 더했다.

그리고 점심으로 먹었던 춘천 닭갈비 맛도 일품이었다. 어르신들도 노랫가락을 힘껏 뽑고 난 뒤라 그런지 불판에 담겨 있던 닭갈비를 말끔히 비워냈다. 그리고 뒤따라 나온 밥까지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죄다 해치웠다. 역시 그 맛 그대로 '춘천닭갈비'였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과 도우미로 따라나섰던 몇몇 분들이 그 소나무 길목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참 정겨운 모습입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과 도우미로 따라나섰던 몇몇 분들이 그 소나무 길목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참 정겨운 모습입니다.권성권
배도 불러왔고 이제는 서서히 잠도 밀려올 시간이었다. 이 때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낮잠을 자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 안에 있던 어르신들은 고개를 떨구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더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눴고, 또 못 다한 노랫가락을 구수하게 뽑고 있었다. 여행이란 그래서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도 신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각설이 타령을 하고 있는 할머니입니다. 일흔 여덟이신데도 정말 생긋생긋하십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사연을 많이 안고 있는 할머니입니다. 그래서 스물 다섯 해 전까지만 해도 다 잊고 지냈던 각설이 타령이었는데, 이번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다시 불러 본 노랫가락이라고 합니다.
각설이 타령을 하고 있는 할머니입니다. 일흔 여덟이신데도 정말 생긋생긋하십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사연을 많이 안고 있는 할머니입니다. 그래서 스물 다섯 해 전까지만 해도 다 잊고 지냈던 각설이 타령이었는데, 이번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다시 불러 본 노랫가락이라고 합니다.권성권
가평을 지나 남이섬 주차장에 다다르고 나서야 그 신바람은 멈출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한 분 한 분 줄을 지어 배에 올라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남이섬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사람들 발길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남이섬 둘레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모든 곳들을 둘러보기에는 어르신들 힘이 처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도우미로 따라 나섰던 젊은 분들이 중간 중간에 어르신들 팔을 붙잡고 뒤따라 걸어야 했다. 그래서 너른 잔디밭을 걷기도 했고, 또 배용준과 최지우가 사랑을 속삭였다던 그 길쭉한 소나무 숲길도 걸었다.


그 모든 곳이 멋지고 아름다웠다. 들풀도 잘 자라고 있었고 소나무들도 우거져 있었다. 기찻길도 나름대로 뜻 깊었고 멀리 보이는 수상 보트도 정말 시원했다. 그래도 가장 즐겁고 재미있던 시간은 그 너른 잔디밭에 둘러 앉아 춤사위를 날렸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모두들 차례로 돌아가며 한 곡 한 곡 뽑았는데, 오던 길에 불렀던 노래솜씨와는 또 달랐다.

그 가운데 칠순을 바라보는 두 부부가 손을 붙잡고 춤을 추는 모습은 가장 멋졌다. 할머니는 중풍을 맞아 절뚝절뚝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와 호흡을 맞추는 그 모습은 가히 새색시 같았다. 그게 시샘 났던지 도우미로 따라나섰던 오십대 젊은 부부 한 쌍도 멋진 블루스를 추었다.


칠순을 넘긴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가 멋진 춤사위 한 판을 벌이고 있는데, 중간에 50대 젊은 부부 한 쌍이 끼어 들어 블루스를 추고 있습니다. 정말 멋지고 좋은 모습들입니다.
칠순을 넘긴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가 멋진 춤사위 한 판을 벌이고 있는데, 중간에 50대 젊은 부부 한 쌍이 끼어 들어 블루스를 추고 있습니다. 정말 멋지고 좋은 모습들입니다.권성권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나이 많은 어르신과 도우미 모두가 한 자리에 일어서서 어깨를 들썩였다. 모두들 노랫가락에 맞춰 춤사위를 올려댔던 것이다. 이미자 노래도 나오고 심수봉 노래도 나오고 또 육자배기 한 가락도 뽑아져 나왔다.

그토록 흥겨운 시간들은 오후 4시를 넘어서야 끝날 수 있었다. 더 지내고 싶었고,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그리고 밤까지 지새워가면서 아직도 청춘이고 싶었지만, 자식들 걱정에 모두들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목은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입에서 정말로 좋았다는 말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면, '겨울연가'로 널리 알려진 남이섬은 젊은 연인들만의 섬이 아니라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못다 한 청춘을 즐기기에는 얼마든지 충분한 섬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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