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나리 뜯어 매단 어머니의 마음

풍요로운 봄날에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다

등록 2005.05.11 22:25수정 2005.05.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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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행랑 처마 끝에 바위나리가 매달려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개울 건너 바위 벼랑에 뿌리 내린 바위나리를 뜯어다 매달아 두신 겁니다. 처마 끝에 매달린 바위나리는 살랑대는 봄바람에 물기가 사라지고 뜨거운 여름 태양에 바삭바삭 마릅니다. 가을이 되어 햇살이 부드러워지면 처마 끝의 바위나리도 조금씩 부드러워지면서 묵나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기원
봄의 들녘에는 장과 밥만 있으면 찬거리는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논두렁 밭두렁의 돌나물 걷어 씻어 고추장에 버무려 먹으면 밥맛이 절로 납니다. 산자락에 올라 취나물 뜯어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씻어 쌈을 싸서 먹으면 그 향에 취해 찬밥이라도 꿀맛처럼 느껴집니다. 산의 속내를 잘 아는 어르신을 따라 간다면 두릅은 물론 참나물, 더덕, 고사리, 고비 등도 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책이 아닌 자연에서 배우신 어머니는 이 풍요로운 봄날에 겨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바위나리 뜯어 매달아 두면 묵나물이 됩니다. 김장독 김치마저 꽁꽁 얼어 붙는 혹독한 겨울이 되면 처마 끝에 매달린 묵나물 내려다가 물에 불린 뒤 기름 둘러 볶아내면 진한 향기 물씬 풍기는 맛난 찬거리가 됩니다.

이기원
이기원
바위나리는 개울 건너 바위 절벽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별을 닮은 입 모양 때문에 '바위나리와 아기별'이란 동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위 틈새에 자란 이끼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넓고 큼직한 잎새로 자라납니다.

이기원
이기원
바위 절벽에 빼곡이 모여 자라는 바위나리를 보면 생명의 신비함이 절로 느껴집니다. 험하고 거친 바위 절벽 위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바위를 타고 오르며 자라는 바위나리는 생명체의 힘찬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기원
그 힘겨운 삶을 넘어서서 눈처럼 하얗고 눈부신 꽃도 피웠습니다. 바위나리가 피워 올린 하얀 꽃을 감상해 보세요.


어머니는 봄이 되면 늘 바위나리를 뜯어 겨울을 준비하셨습니다. 바위 절벽을 딛고 올라서서 바위나리를 뜯으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도 바위나리 이상으로 척박하고 거친 삶이었습니다. 그 역경 속에서도 어머니는 바위나리처럼 힘차게 살아오셨습니다.

돌이켜 회상하면 어머니도 바위나리가 피워 올린 꽃처럼 하얗고 눈부신 삶의 꽃을 피우셨습니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삶의 향기 듬뿍 묻어나는 정겹고 눈부신 꽃이었습니다. 그 꽃을 떠올릴 때면 늘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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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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