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울음소리가 악다구니처럼 들리는 까닭

봄밤에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등록 2005.05.12 12:41수정 2005.05.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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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어스름,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내 발길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채이고 있었다. 요즘 같아서는 이곳 소도시(강원도 동해시)에서도 웬만해서는 듣기 힘든 소리였다. 개구리 소리는 엊그제까지 만해도 간간이 들렸을 뿐인데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무튼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오래된 친구 놈 얼굴을 보듯 내 마음은 정다움으로 가득했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얼핏 들었을 때에는 정돈되지도 않고 몹시 시끌벅적하게 들리는 것 같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조화롭고 가지런하게 정리된 화음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이윽고 내 몸과 영혼을 동시에 사로잡는 소리로 다가왔다.

내가 저 소리를 처음 들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아마 젖먹이였을 때였는지도 모르고 혹은 엄마 배속에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기억하기로 내 의식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소리로 처음 들었던 때는 아마 초등학생이었을 때이리라.

어쩐 일인지 그 날은 나 혼자 집에 있었다. 어둠이 내린지도 한참이나 지났건만 집에는 나 혼자만 있었다. 낮 동안은 혼자라는 것도 잊고 신나게 뛰어 놀았지만 마을 공터에 어둠이 깔릴 때쯤 되어서 친구 놈들이 하나, 둘 자기 집으로 돌아 갈 시간이 되자 난 내 처지가 어떤지 알게 되었다.

상철이 엄마가 상철이를 부르고 동길이 엄마가 동길이를 길게 부르고 있을 때 나는 한껏 우울해졌다. 그리고 대식이가 불려가고 재춘이도 저녁밥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이제 내 친구 놈 하나만이 덩그렇게 내 옆에 있게 되었을 때 난 말없이 집으로 와 버렸다. 하긴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그 쓸쓸한 저녁 어스름의 공터를 나 홀로 어떻게 지키고 서 있었겠는가?

불러줄 사람도 없었건만 마치 누가 부른 것처럼 서둘러 집에 돌아온 나는 습관처럼 남폿불을 켰다가 이내 꺼 버렸다. 큰 방안에 환히 불을 켜고 어린애 혼자 겁먹은 얼굴로 앉아 있기에는 집안 광경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난 어둠 속에서 다소 외롭고 쓸쓸하고 처량한 기분이 되어 내 존재가 내 의식 속에서 잊히기를 바라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저녁 어스름의 거무스름한 문살만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감상적이고 달콤하면서도 서글픈 기분을 오래 간직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어렸었나 보다. 달콤한 감상에서 벗어나 슬슬 무서운 마음도 들고 한편으론 배고픔도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난 집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때쯤 어머니가 오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난 마을 어귀까지 걸어 나가 엄마를 기다리기로 했다.


낮 동안 제법 뜨겁게 달구어졌던 공기가 찬 밤기운과 어울려 마을을 이리저리 훑고 지나갔다. 잠깐 따뜻한 바람이 부는가 싶다가도 이내 찬 밤공기가 뒤를 따라 지나갔다. 그래도 봄바람은 봄바람인지라 약간의 한기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하나, 둘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난 마을 입구에 세워진 가로등 불빛까지 가지는 못하고 - 이 저녁시간에 왜 여기까지 나와 있느냐고 묻는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꾸하기란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길 옆으로 껑충하게 솟아난 언덕의 풀밭에 앉아 이따금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혹 동네 사람이 볼 것 같아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다 싶으면 얼른 풀숲으로 납작 엎드려 숨죽이고 있다가 발소리가 언덕 밑을 지나 저 멀리 사라지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일어나 앉았다. 물론 고개를 풀숲에 처박고 있을 때에도 눈만은 계속 가로등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혹 내가 못 보는 사이 엄마가 지나가면 그것 또한 큰 낭패니깐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이제는 마을로 들어올 사람은 모두 왔는지 인기척도 뜸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안에서 기다릴 걸 하는 후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컴컴한 집으로 혼자 돌아갈 기분도 아니었다. 이러다 혹 나 혼자 여기에서 이렇게 밤을 지새우는 건 아닌지 겁도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방은 더 없이 조용하고 바람은 내 몸을 더 한층 차갑게 훑고 지나가는데 기다리는 엄마는 오지 않고 있었다. 쪼그려 앉은 모습이 달빛에 연하게 반사되어 풀숲으로 기괴한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 때 그 순간은 분명 나에게 익숙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난 어느새 내가 용감한 사내아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훌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흘러 어둠속에서 달빛이 더더욱 밝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막연한 공포와 기약 없는 기다림, 그리고 좀처럼 참기 힘든 배고픔으로 인해 내 훌쩍임은 더욱더 고조되어갔다.

그런데 꼬맹이의 훌쩍임에 장단이라도 맞추는 듯 어디선가 간간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그 소리를 듣고 미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 내가 어느새 훌쩍임을 그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에 개구리 울음소리는 어느덧 우렁찬 합창으로 변해 있었다.

막혔던 귀가 갑자기 뻥 뚫린 듯이,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소리를 한 번에 뿜어내는 듯이 커다랗게 들려오던 개구리 울음 소리.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하모니를 연출하며 들려오던 개구리 울음소리는 또 어느 순간은 문득 끊겼다가 논두렁 저쪽에서 목청 좋은 놈이 기세 좋게 울기 시작하면 그 소리를 시작으로 다시금 여기저기서 서서히 끓어오르듯 넘쳐나고 있었다.

난 한 동안 개구리 울음 소리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세상에 나 혼자라는 막연한 기분도 잊고 있었다. 아니 그 고요한 밤하늘 밑에 쓸쓸함으로 한껏 지쳐있던 내 마음은 우렁찬 교향악단의 연주와 같이 신나게 울어 제치는 개구리 울음 소리로 인해 어느 순간 화려한 연극 무대 위에 들어 올려진 기분이 들었다.

달빛도 환하게 빛나는 그 밤에 어디서 들리는지 막연히 짐작만 할 뿐 뚜렷한 소리의 근원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내 정신을 온통 빼앗아 간 우렁차고 매혹적인 개구리 울음 소리에 마냥 취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은 분명 나에겐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누가 볼세라 한껏 웅크렸던 몸을 나도 모르게 활짝 펴고 일어나 그 흥겹고 우렁찬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던 내 모습을 보고 놀란 건 우리 엄마였다. 저 놈이 이 오밤중에 저 언덕에서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서 있는가, 하고 놀라움에 바라보는 우리 엄마를 난 한참이 지나서야 알아보았다.

내가 이내 '엄마~'하고 소리치며 언덕을 한달음에 내달려 어머니 품에 안겼을 때엔 이미 개구리 울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내 자신의 찡찡대는 울음소리만이 온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젊은 엄마 등에 업혀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잠깐 동안 경험했던 내 슬픔이며 고독이며 외로움이며 아득함에 빠져 그 우렁찬 개구리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음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자 문득 내 어머니의 구부러진 등이 생각났다. 이제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한없이 좁아진 어깨며 새우처럼 구부러진 등만을 가지게 된 어머니를 떠올리자 한때 내 고독이며 쓸쓸함을 함께 하던 개구리 울음소리는 어느덧 늙음을 가져오는, 매정한 세월에 대한 악다구니의 발악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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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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