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개신교·불교 함께 올린 생명·평화 108배

[이색현장] 석탄일 앞두고 성당에서 화합한 3대 종교

등록 2005.05.12 14:46수정 2005.05.1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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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구 계산성당에서 불교 신자와 천주교·기독교 신자들이 함께 생명과 평화를 위한 108배 절을 올리는 의식을 가졌다. 사진 오른쪽 두번째부터 허운 은적사 주지스님, 평화교회 김락현 목사, 고산성당 정홍규 주임신부가 108배를 하기 앞서 합장을 하고 있다.

대구 계산성당에서 불교 신자와 천주교·기독교 신자들이 함께 생명과 평화를 위한 108배 절을 올리는 의식을 가졌다. 사진 오른쪽 두번째부터 허운 은적사 주지스님, 평화교회 김락현 목사, 고산성당 정홍규 주임신부가 108배를 하기 앞서 합장을 하고 있다. ⓒ 김동우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다는 것을 알며…"
"지나간 일은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근심하지 말며…"


자신을 수양하는 소망의 문구가 끝날 때마다 정성스럽게 일배(一拜)를 올린다. 천천히 온 몸을 이용해 절을 올리자 몸과 마음 모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다.

오는 15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불교와 천주교, 그리고 개신교 등 3대 종교 신자들이 모여 108배를 하는 이색적인 행사가 열려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1일 저녁 7시 대구의 고산성당(주임신부 정홍규)에서 열린 이 행사는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종교를 넘어 화합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108배 행사에는 고산성당 신도 뿐만 아니라 지난 2년여 동안 고산성당과 교류하고 있는 은적사 주지 허운 스님과 신도, 그리고 개신교인 평화교회 김락현 목사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a 108배를 하기 위해 합장한 신부와 목사.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 절을 '우상숭배'로 불온시하지만 이들은 '열려진 종교'와 수행의 한 방법으로써 가치를 평가했다.

108배를 하기 위해 합장한 신부와 목사.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 절을 '우상숭배'로 불온시하지만 이들은 '열려진 종교'와 수행의 한 방법으로써 가치를 평가했다. ⓒ 김동우

참석자들은 이날 경기도국악관현악단 김영동 예술감독이 직접 제작한 명상앨범 <생명의 소리 108배>에 맞춰 절을 올렸다. <생명의 소리 108배>는 종교를 넘어 몸과 마음을 수양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의 내용을 108개의 문구로 정리해 놓은 앨범.

참석자들은 한 문구가 끝날 때마다 절을 올리고 몸을 추스렸다. 40여분간의 108배를 올린 참석자들은 마지막 순서로 음악을 들으며 명상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날 108배 행사에 참가했던 천주교 신도 송정숙(59·세례명 아네스)씨는 "처음 절을 한다는 것이 꺼려졌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절을 올리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가졌다"고 말했다.

불교 신자인 권정행성(56)씨도 "평상시 사찰에서 올리던 절과는 달리 성당에서 108배를 해 색다른 경험이었다"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절을 하니 좀더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3대 종교 신자들이 모여 올리는 108배 행사는 '절'을 매개로 종교간 화합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개신교와 천주교 모두 우상숭배로서의 '절'을 불온시 하는 것과 달리 수양의 한 방법으로써 절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됐다.

은적사 주지 허운 스님은 "사찰이 자비를 실천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다면 성당이라는 공간도 하늘이라는 행복의 세계로 가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사찰이나 교회·성당이 과정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을 수양하고 종교의 차이에서도 자유로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직접 108배를 올린 평화교회 김락현 목사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로 인정할 필요도 있다"면서 "낯설긴 하지만 절을 올리면서 마음의 평화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절을 하면서 듣는 명상앨범의 문구가 교회에서도 수련하는 내용인만큼 부담스럽지 않았다"면서 "종교를 넘어 자신을 갈고 닦는 길은 별반 틀리지 않다"고 덧붙였다.

"참다운 종교는 열려있어야...절은 수행의 한 방법"
[일문일답] 108배 행사 가진 고산성당 정홍규 신부

-어떤 계기로 성당에서 108배 행사를 갖게 됐나?
"은적사와는 2~3년 전부터 교류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절(拜)이 가지는 가치를 알았고 성당에서 신도들과 함께 행사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히 절은 종교를 넘어 함께 행할 수 있는 수행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108배 행사에 대해 신도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나?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식의 문제라고 본다. 신도들도 무덤덤한 분들이 많았지만 해보면 달라진다. 결국 (부정적이라는) 생각만 가질 것이 아니라 실제 체험해서 수양의 효과를 체험하면 시각도 달라질 것 같다."

-절이 천주교나 개신교에서는 우상숭배로 배척되고 있는데.
"결국 그것은 교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을 전통 문화의 하나로 인식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직도 종교간 배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래서 108배 행사가 더욱 화제를 모은 것 같다.
"참다운 종교일수록 (다른 종교에) 더 열려있어야 한다. 배타적인 시각은 종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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