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의 자식, 색을 빚다

[인터뷰]낙안읍성 황토염색 체험장 김두례씨

등록 2005.05.13 13:13수정 2005.05.1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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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맑은 웃음을 간직한 순천 낙안읍성 황토염색 체험장의 김두례씨.

맑은 웃음을 간직한 순천 낙안읍성 황토염색 체험장의 김두례씨. ⓒ 서정일

그녀는 농사꾼의 자식이다. 그래서 흙을 좋아했고 황토염색을 시작한 것을 필연이라 말한다. 거창하게 문화라 포장하여 표현하는 것들에 거부감을 느끼며 가식적인 꾸밈에 손사레를 친다.


어릴 적부터 흙을 만지며 살아왔고 토속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김두례(50)씨, 3년 전 낙안읍성으로 들어와 황토염색을 하면서 옛것들과 벗하며 살아가고 있다.

낙안읍성 369번지 황토염색 체험장, 고개를 숙여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나지막한 초가집이다. 부뚜막 옆엔 지난 겨울 동안 지피고 남은 장작이 한 무더기 쌓여 있다.

그 위에 염색 재료들은 바구니에 담겨져 고양이 마냥 부뚜막을 바라보고 앉아 있고, 넓은 마당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장대 위엔 염색된 천들이 5월의 햇살을 받으며 흐느적거리고 있다.

하얀 천이 황토물에 목욕하고 발그레한 얼굴로 마당에 서 있으면 물기는 어느새 수증기 되어 날아가 하늘이 되고 바닥으로 떨어져 땅이 된다. 처음엔 땅에 가깝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과 가까워지는 옷감들. 하늘과 땅의 전령이다.

a 5월의 햇살 아래서 곱게 물든 옷감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5월의 햇살 아래서 곱게 물든 옷감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서정일

"술은 빚었지만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를 회상한다. 찹쌀 다섯 마지기와 밀농사를 지었는데 고구마, 찰밥 등을 유난히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것이 특별메뉴인 셈. 아버지의 식성 따라 자신의 입맛도 길들여졌다 말한다.

소를 몰고 들에 다녀오실 때면 콩을 조끼 주머니에 가득 담아와 자신의 손에 꼭 쥐어주던 아버지. 유난히 아버지는 넷째 딸인 김씨를 잘 챙겨주셨다고 한다.


어릴 적 하늘은 왜 그리도 맑았던지 그리고 들판은 왜 그리도 푸르던지, 바람에 휩쓸려 출렁이는 들판과 멋지게 어우러지는 뭉게구름은 오십이 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서 펼쳐진다는 김씨.

소에게 풀을 먹인다고 몰고 나가지만 자연 속에 있고 싶은 김씨에겐 그건 핑계일 뿐. 흙을 만져보고 풀을 입에 물고 하늘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다정다감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 속이지 않는 정직함을 간직한 자연에 대한 추억들. 그래서 그녀는 아직 미혼이다. 인간보다 자연에서 받은 감동이 더 크기에 타인이 마음 속에 자리할 공간을 남겨놓지 않은 것. 여성이 세상을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a 나즈막한 초가집, 낙안읍성 369번지 황토염색 체험장

나즈막한 초가집, 낙안읍성 369번지 황토염색 체험장 ⓒ 서정일

그녀의 말을 빌자면 염색하는 과정은 '막일'이라고 한다. 감물 들이는 과정을 일례로 소개하는데, 9월 중순쯤 떫은 감을 따서 갈아 즙을 내는 일로 염색 일은 시작된다고 한다. 그 즙에다 천을 삶고 주물러서 짠 후 햇빛을 볼 수 있게 펴 놓는 일이 기초단계.

여기에 다시 감 즙에 넣고 펴서 말리고 맹물에다가 적시면서 널어준다. 5∼6일 동안 그 작업을 계속 반복되고 마무리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완성품이 만들어진다. 한 마디로 염색하는 사람이나 옷감 모두 진이 빠져야 되는 고된 작업이다.

같을 '여', 아름다울 '미', 옛 '고'. 옛것의 아름다움과 같다는 여미고는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이다. 황토염색을 하는 것을 보고 평소 존경하던 스님이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이름, 어울리는 이름이다. 옷을 매만진다는 여미고의 뜻까지 포함되어 친숙하고 오묘한 이름.

"심고 가꾸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키우고 재배해서 염색을 할 수 있도록 마당에 염색재료를 심고 싶다는 김씨, 그 계획까지 실현되어 아름다운 자연의 색으로 온 천지를 꾸미고 아이들부터 어른들의 마음 속까지 곱게 물들일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낙안읍성
http://www.nagan.or.kr

덧붙이는 글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낙안읍성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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