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할머니, 여기를 보세요"

장수사진 찍은 광양시 옥곡면의 100세 할머니 한몽길

등록 2005.05.15 11:29수정 2005.05.1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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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루에 앉아 온화한 미소를 하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한몽길(100) 할머니

마루에 앉아 온화한 미소를 하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한몽길(100) 할머니 ⓒ 서정일

모두들 기다리는 눈치다. 그러나 50명, 60명, 100명이 넘어가도 보이지 않는다. 행사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데도 도무지 나타날 기미는 없다. 무슨 이유일까? 행여 큰일이라도 당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행사에 참가한 이들은 서로의 얼굴만 흘깃흘깃 쳐다볼 뿐 선뜻 먼저 말문을 열려 하지 않는다. 이윽고 광양소방서의 서재식 소방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아무래도 우리가 찾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a 옥곡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이미숙씨. 화장을 해드리고 있다.

옥곡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이미숙씨. 화장을 해드리고 있다. ⓒ 서정일

가정의 달인 5월 두째주 토요일 14일, 광양소방서(서장 강대중)는 광양시 옥곡면 옥곡초등학교에서 이 지역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사랑의 119'라는 이름으로 경로잔치를 벌였다. 매년 봉사활동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건강과 미용 봉사 활동을 비롯해 60세 이상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장수 사진을 찍어주는 의미 있는 행사다.

올해는 국사봉 철쭉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축제 형식을 빌어 치러졌다. 다양해진 프로그램 덕에 좀 더 많은 볼거리가 있어 지역 주민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화사하다. 특히 옥곡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분에게 수여하는 '장수노인상'은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의미 있는 순서.

김은철, 김성근 의무소방관은 행사장 안내를 맡아 때론 몸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행사장으로 부축해 드리는 등 대민봉사의 일선에서 일하는 소방의 모습을 실천했다. 옥곡면사무소에서 나온 이미숙, 강명영씨는 옷매무새와 화장을 고쳐 주며 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진에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a 한몽길 할머니 집을 방문하여 장수 사진을 찍어 드리고 있다.

한몽길 할머니 집을 방문하여 장수 사진을 찍어 드리고 있다. ⓒ 서정일

1세기를 살아왔다. 1905년생, 옥곡면 매동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몽길 할머니. 그분이 바로 오늘 장수노인상의 주인공이다. 행사장을 찾으면 예쁘게 꽃단장도 해 드리고 건강 진단은 물론 오래 사시라는 의미에서 장수 사진도 찍어드리려는 계획이 이미 서 있었던 것.


행사가 시작되는 아침에도 행사 관계자들은 한몽길 할머니의 참석을 굳게 믿고 있었다. 비록 자유롭게 거동은 못하지만 가족들의 부축을 받고 나오실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하지만 행사 막바지에 행사장에 참석하기 힘들것 같다는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딸이 대신해서 참석한다는 것.

그런데 딸이 장수 노인 상을 대신해서 수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장수 사진(영정 사진)은 본인만이 가능한 일, 찍어드리려는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어쩌면 이번 사진이 한몽길 할머니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게 될 사진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에 태어난 지 1세기 만의 사진이라는 매우 큰 뜻이 있었기 때문에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은 더했다.


의미 있는 행사인 만큼 "집에 찾아가서 가능하면 모시고 나오자"는 의견과 "현장에서 사진 촬영해 드리자"는 두 가지 의견이 나왔다. 결국 먼저 방문해서 판단하기로 결론이 났다. 부랴부랴 설치했던 사진장비들을 챙기고 앰뷸런스에 오른다. 번거로운 작업이긴 했지만 불평하는 이는 없다.

a 앰뷸런스에 사진 장비를 싣고 출발하는 행사 참가자들

앰뷸런스에 사진 장비를 싣고 출발하는 행사 참가자들 ⓒ 서정일

불러도 인기척이 없다. 마당에 강아지만이 큰 소리로 짖는다. 한참을 마당에 서 있으니 이윽고 방문이 살며시 열린다. 할머니는 누워 계셨다. 행사장까지 가는 데는 다소 힘들어 보였지만 사진 촬영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할머니는 또렷한 목소리로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하지만 순천디카 모임의 회장 이종철씨는 "방문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광양시 옥곡면에서 가장 장수한 올해 나이 100세의 한몽길 할머니. 1세기를 살아오면서 나라의 온갖 일들을 직접 보고 겪으신 살아 있는 역사인 셈. 할머니의 얼굴엔 그런 모든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남아 있다. 마루에 앉아 카메라 앞에서 온화한 미소를 보내던 그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그 모습 그대로 또다시 뵙기를 기대하는 것은 방문했던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랑의 119 봉사활동에는 순천금당병원, 동광양미용학원, 순천디카모임 등이 참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사랑의 119 봉사활동에는 순천금당병원, 동광양미용학원, 순천디카모임 등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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