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해당되나요?" 신불자 문의전화 폭주

[현장] 2차 배드뱅크 '희망모아' 신청접수 첫날 표정

등록 2005.05.16 18:00수정 2005.05.1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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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자산관리공사 본사에 설치된 2차 배드뱅크 희망모아 콜센터. 접수 첫날인 16일 대상 여부를 묻는 채무자들의 문의전화로 콜센터 상담요원들은 하루 종일 분주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자산관리공사 본사에 설치된 2차 배드뱅크 희망모아 콜센터. 접수 첫날인 16일 대상 여부를 묻는 채무자들의 문의전화로 콜센터 상담요원들은 하루 종일 분주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제2차 배드뱅크 '희망모아' 프로그램 접수 첫날인 16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자산관리공사 콜센터는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해 보였다. 쉴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소리에 80여명의 콜센터 상담요원은 숨을 돌릴 여유조차 잊어버린 듯 했다.

이렇게 아침부터 폭주한 문의전화는 오후 5시45분을 넘기면서 무려 5만건에 육박했다. 1차 배드뱅크 프로그램인 '한마음금융'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추세라면 접수 첫날인 16일 하루에만 6만여건의 문의전화가 걸려올 것으로 자산관리공사쪽은 내다봤다.

희망모아는 1차 배드뱅크인 '한마음금융' 대상자 180만명 중 이미 채무조정을 신청한 채무자 등을 제외한 나머지 다중 채무 연체자를 구제하기 위해 설립됐다. 대상자는 한마음금융 때보다 54만명 가량이 줄어든 126만명이다.

'희망모아' 타깃은 30∼40대 다중 채무자... 문의전화도 30대가 많아

이번 '희망모아' 프로그램은 경제활동의 재개가 시급한 30∼40대 다중 채무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다중 채무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때문인지 30대 초중반 다중 채무자들의 문의전화가 이날 빗발쳤다.

오전 11시10분께 콜센터로 상담전화를 걸어온 회사원 홍아무개(29)씨. 그는 현재 L카드에 2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L사로부터 끊임없이 걸려오는 추심 전화 탓에 좀처럼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홍씨는 지옥같은 추심 전화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해방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라며 특히 중도 일시 상환이 가능한지 궁금하다고 했다. 목돈을 생기면 곧바로 상환하고 털어버리기 위해서다.


서울 강남 개포동에 거주한다는 김아무개씨의 처지도 비슷했다. 자신을 30세라고 밝힌 김씨는 핸드폰 이용요금과 신용카드를 포함 약 220만원의 부채를 떠 안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신청 대상자에 포함되는지 그리고 신청절차는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대상자 우편 발송에도 불구 대상 여부 묻는 전화가 다수


접수 첫날 콜센터로 걸려온 전화는 김씨나 홍씨처럼 대상자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문의가 대부분이었다. 자산관리공사쪽이 대상자에게 안내 우편을 발송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홍보가 되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에 거주한다는 송아무개(48)씨는 "신문을 보니까 배드뱅크가 언급돼 있어 전화를 걸어봤다"고 밝히는 경우도 있었다. 신용불량자들의 절박감을 반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터넷 혹은 직접 방문 등의 형태로 희망모아 프로그램을 신청한 다중 채무자는 소정의 자격심사를 거쳐 이자를 면제받게 된다. 이후 7∼8년 동안 원금을 분할 상환하면 된다. 상환방식도 점증형과 균등형 두가지로 나뉜다.

점증형은 7년동안 상환액을 늘려가면서 갚되 원금의 10%는 마지막에 상환하는 방식이다. 반면 균등형은 원금을 8년동안 고르게 갚되 20%는 마지막에 갚도록 하고 있다. 특히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있는 신청자는 3% 선납금을 납부하지 않고 채무 조정을 받을 수 있다. 상환 도중에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면제된 이자까지 더해져서 추심 대상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추심 위협삼아 돈장사하나" 비판
자산관리공사 "추가이익 금융기관에 되돌려 줘" 반박


하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벌써부터 자격 요건이 까다롭고 문턱이 높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소득 결여로 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자에겐 '희망모아'가 '절망모아'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원금의 4∼5%에 채권을 매입해 원금 그대로 되팔아 돈 장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지금까지도 채권기관의 살인적인 빚 독촉에 시달려 온 과중채무자에게 2차 배드뱅크는 적극적인 빚 구제는커녕 '추심'을 위협삼아 '돈 장사'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권영대 희망모아 관리부장은 "부실채권을 원금의 4∼5% 정도 가격에 매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추가이익은 해당 기관에 돌려준다"고 반박했다. 채무자로부터 원금을 모두 회수하더라도 자산관리공사가 대부분의 이익을 취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농협 등 일부 금융기관이 희망모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점도 채무자들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부분이다. 당장 희망모아 프로그램을 통해 신용회복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농협 등에 빚을 안고 있는 채무자는 계속 빚 독촉에 시달려야 한다. 상환 기간이 7∼8년으로 비교적 짧은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자산관리공사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상자의 10%인 12만명 가량이 채무 재조정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협 등 일부 금융기관의 불참으로 인해 신청을 망설이는 경우가 더러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강력한 추심에 돌입할 것이라는 '경고'가 신청율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게 자산관리공사쪽의 설명이다.

"농협 등 금융기관의 희망모아 불참은 기관 이기주의"
[인터뷰] 권영대 한국자산관리공사 희망모아 관리부장

▲ 권영대 희망모아 관리부장
권영대 한국자산관리공사 희망모아 관리부장은 1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농협 등 일부 금융기관이 희망모아 협약에 불참한 것은 기관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공동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신불자들을 해방시켜줘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아쉽다"고도 했다.

다음은 권영대 희망모아 관리부장의 일문일답이다.

- 상담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하던데 현재까지 얼마나 접수됐나.
"오후 5시45분을 기준으로 5만723건의 전화를 받았다. 그 가운데 5549건에 대해 상담을 했다."

- 전체 신용불량자 126만명의 대상자 가운데 어느 정도가 이번 프로그램으로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나.
"지난해 1차 배드뱅크 때 170만명이 대상이었다. 그 중 10%인 17만명이 혜택을 봤다. 대상자 126만명 중 12만명 정도가 이번 2차 배드뱅크를 통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 원금의 3%를 선납하는 조건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단 급하기 때문에 3%를 선납했다가 1∼2달 이후에 못 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분들이 '한마음' 때 많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지가 약해진 탓이기도 하고 경제상황이 호전되지 않은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3% 선납금을 면제해 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다만 정기적인 소득증명이 되면 가능하다. 급여명세서나 원천소득징수 서류가 있으면 된다. 그리고 점증형과 균등형이 있는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2차 '희망모아'가 다른 점은 1차 때와는 달리 신청을 하지 않으면 공동 추심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 채무자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만약 이번에도 신청하지 않으면 강도 높은 추심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 이 점 때문에 추심을 위협 삼아 돈 장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부실채권을 원금의 4∼5% 정도 가격에 매입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추가이익은 해당 기관에 돌려준다. 민주노동당이 그런 주장을 했는데 그건 오해다. 그리고 개인파산제에 대한 홍보를 왜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파산제는 사법부의 영역이다. 우리가 개입할 수가 없다.

그리고 사법부의 파산제는 모럴 해저드를 더 부추긴다. 파산제는 채무 면제를 의미하지 않나. 그리고 개인회생제도도 절반은 면제해 준다. 파격적인 제도다. 이 제도를 장려할 경우 모럴 해저드는 더 커질 것이다. 무리한 요구라고 본다."

- '희망모아' 프로그램에 농협 등 일부 금융권은 참여하지 않았다. 희망모아를 통해 회복된다 하더라도 농협 등 불참 금융권에 부채를 지닌 신불자는 또다시 빚독촉에 시달려야 한다. 왜 참여하지 않은 것인가.
"기관 이기주의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채권액이 많지는 않다. 추정키로 1.5조원에서 2조원 가량 된다. 해당 기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신불자들을 해방시켜줘야 하는데 아쉽다. 희망모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추심 비용이 적게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도 참여하지 않았다. 강제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 7∼8년으로 한정된 상환기간을 좀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형평성 때문이다. 1차 배드뱅크에서 최장 8년까지 상환할 수 있도록 못 박았다. 법원의 회생제도도 8년이다. 만약 10년 이상으로 연장하게 되면 채무자들에게는 좋겠지만 이미 1차 배드뱅크를 통해 상환 중인 분들에게는 시빗거리를 만들 수 있다."

- 1차 때와 조건도 다르지 않은데 신불자들이 많이 신청하겠는가.
"추심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마지막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만약 이 원칙이 허물어진다면 다들 기다려 보자는 식의 모럴 해저드가 생길 수밖에 없다."

- 목표치 10%를 채운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90%는 여전히 신불자로 남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채권 회수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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