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진서(眞書) 뱀뱀이책'

<김성동 서당1·2>를 읽고서

등록 2005.05.19 14:04수정 2005.05.20 10:54
0
원고료로 응원
오늘 우리가 쓰고 있는 '한문(漢文)'이나 '한자(漢字)'라는 말은 본디 우리말일까. 아니면 중국에서 나온 말일까. 그저 우리말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그건 우리가 붙인 말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것을 '참글' 곧 '진서(眞書)'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진서' 대신에 '한자'나 '한문'이라고 비뚤어서 썼을까. 그건 우리 겨레말이 빛이 났고 또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서'가 중국 한나라 때 만들어진 것을 우리가 따 왔다고 억지를 편 것이었다.


책 겉그림입니다.
책 겉그림입니다.청년사
그러나 '진서'는 한 나라 이전인 진 나라 때도 있었고, 진나라 앞인 주 나라 때도 있었고, 또 주나라 앞인 은 나라 때도 있었다. 흔히 갑골문자를 만들어 냈다고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은나라 역시 단군 조선이 세운 지방정권에 지나지 않았다. 그처럼 진서가 지닌 빛난 우리 역사를 받아들일 수 없던 탓에 그들은 그저 한문 또는 한자라고 그럴 듯하게 갖다 붙였던 것이다.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초등학생들도 손쉽게 알 수 있도록 김성동씨가 쓴 <김성동 서당1·2>(청년사.2005)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른바 초등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맞춘 '진서(眞書) 교양서'인 셈이다. 헌데 진서하면 으레 <천자문>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 책은 <천자문>이 아니라 <320字>이다. <320字>란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사물들 이름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책은 큰 틀에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아우르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주치는 자연현상과 예절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맞부딪히는 여러 가지 사물들 이름들도 알려 준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과 식구와 붙이 같은 사람 사이 이음 고리를 말해 줍니다. 오행·빛깔·철·방위·숫자·사람몸뚱이·문방구·병장기·집·옷차림·먹을거리·곡식·실과·양념·꽃·나무·물고기·곤충·새·숨탄것·부림짐승·상서로운 동물 이름을 알려줍니다."(머리글)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진서만을 깨우쳐 주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라든지, 예절이라든지, 또 자연과 어떻게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지, 동식물과는 또 어떤 자세를 가다듬고 대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들을 쉽고 알차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성동 하면 으레 순 우리말 우리글을 떠올리듯이, 이 책에도 김성동만이 지니고 있는 우리말 우리글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또한 '김성동식 우리역사'를 대하듯, 이 책에는 우리 선조들 속에 숨겨져 있는 위대한 인물과 역사들도 하나하나 캐내어 알려 주고 있다. 이를테면 백제 광복군을 이끌었던 고승 도침(道琛)이라든지, 박지원·박제가·유득공과 함께 조선시대 문장 사대가로 불렸던 이덕무(李德懋)라든지, 그리고 석류 시인 조운(曹雲)이라든지….


"흔히 '가족'(家族)이라고 말하는데, '가족'은 왜식 표현입니다. 우리도 '가족'이라는 말을 안 썼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 되는 뭉뚱그린 생각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는 것이니, 이른바 '가치관'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가족'이 홑되게(단순히) 짜인 틀거리 긴한 일만을 말한다면, '식구'는 짜인 틀거리 안 알맹이를 말한다는 것이지요."(1권, 55쪽)

"용을 가리키는 우리 토박이말은 '미르'입니다. 또는 '미리'라고도 하고요. '미르'는 물을 가리키던 '믈'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미리'는 이제도 쓰이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기 전에'·'앞서서'라는 뜻이지요. "미리 알려고 하지 마라." 여기서 나온 것이 '미륵'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미래불(未來佛)'이지요. 앞으로 이 세상을 건져 주러 오실 부처님을 말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스스로 '미륵'이라고 하는 이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앞이 캄캄하여 비틀거리는 풀잎사람들 손을 잡아 주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궁예가 그렇고 묘청이 그랬으며 신돈이 그러하였지요."(2권, 118쪽)



끝으로 이 책 속에는 따로 조그마하게 만든 <우리말 사전 320자 자전>도 들어 있다. 마치 우리말 사전과 진서 사전을 합해 놓은 것 같은 손바닥만한 책자이다. 그리 두툼하지 않고 얇긴 하지만 순 우리말과 그 뜻풀이를 비롯해 가나다라 순으로 아주 잘 정리가 돼 있고, 뒤쪽에는 320자 자전이 그대로 들어차 있다. 그러니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이 작은 책자 하나만 들고 다니면서 봐도, 정말로 값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가히 이 책은 '진서 뱀뱀이책'이기에 충분하다.

뱀뱀이책- 본데책, 가르쳐 기르는 책. 교양서(敎養書).
부림짐승- 집에서 기르는 짐승.
빗글뜨기- 탁본(拓本).
톺아오르다- 가파른 산길을 발을 옮겨 디디며 오르다.
(<우리말 사전 320자 자전> 중에서)

김성동 서당 2 - 사물의 개념을 잡아 주는 320자 2

김성동 지음, 오은영 그림,
청년사, 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