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흔들릴 때 부르다 눈물 쏟은 노래

눈부시게 아름다워 더욱 서러운 찔레꽃

등록 2005.05.29 22:14수정 2005.05.3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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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산자락을 타고 오르던 찔레 덩굴에 눈부시게 하얀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어릴 때 뛰놀며 자라던 들녘의 추억을 떠올릴 때면 늘 떠오르던 꽃이 찔레꽃입니다. 찔레꽃이 피기 전부터 막 자라기 시작하는 찔레 순을 꺾어 먹던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옛 추억이 그리워 아들 녀석에게 찔레 순 꺾어 먹어보라고 하면 이런 걸 어떻게 먹느냐며 쳐다봅니다. 하루 세 끼 끼니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던 시절의 아이들에겐 찔레 순이 허기를 달래주기도 했지만 배불리 세 끼 먹고 간식마저 챙겨 먹는 아이들에게 가시 송송 돋은 찔레 순이 입맛을 끌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 터이지요.

이기원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80년대 대학 다니던 시절 많이 불렀던 찔레꽃이란 노래입니다. 막걸리에 취해 세상이 흔들릴 때 부르다 보면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던 노래입니다. 허기진 아이들이 따먹던 게 찔레 순만은 아니었지요.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던 시절의 모습은 맹인 가수 이용복의 노래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카시아꽃 하얗게 필 무렵이면 아이들은 아카시아꽃 한 송이씩 따서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찔레꽃을 먹은 기억은 없습니다. 그래도 노래 가사에 나온 것이니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하얀 꽃잎을 따서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씹어보았습니다. 새콤한 맛이 났습니다. 함께 산에 오르던 후배도 한 잎 따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했습니다.

"옛날 먹던 시경 맛인데요."


고향인 강원도 횡성에서 시경이라 부르던 풀이 있습니다. 잎새며 줄기를 따서 씹으면 시큼한 맛에 진저리가 날 정도입니다. 고양이 시경이라 부르던 풀도 있습니다. 토끼풀처럼 생겼는데 토끼풀보다는 훨씬 작고 연한 풀입니다. 노란 꽃도 피는데 그 잎도 시큼한 맛이 납니다. 찔레꽃 맛은 그렇게 진한 맛은 아니지만 새콤한 느낌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

이기원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찔레꽃 노래 2절입니다. 한창 바쁜 농번기 때 어른들은 깜깜한 밤중까지 들일을 하셨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농촌의 밤은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들일을 하던 어머니들은 집에 남겨진 아이들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겠지요. 집에 남아 엄마를 기다리다 깜빡 잠든 아이들은 꿈 속에서도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흘리다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아이들의 기다림은 하얀 찔레꽃이 지고 빨간 찔레 열매가 달릴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세다 아이들은 잠이 들고 꿈속에서 엄마가 돌아옵니다. 하얀 발목 바쁘게 뛰어왔습니다. 가쁜 숨 몰아쉬며 돌아온 엄마는 잠든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찔레꽃 하얀 언덕을 보면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가난과 굶주림의 모진 세월과 맞서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의 모습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찔레꽃이 떠오릅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더욱 서러운 꽃이 바로 찔레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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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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