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요즘 꽁치가 풍년이래"

아내와 주문진에서 1만원에 60마리짜리 꽁치를 사다

등록 2005.06.05 17:55수정 2005.06.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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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요즘 꽁치가 풍년이래."

며칠 전부터 아내가 꽁치 타령입니다. 1만 원에 60마리나 준다며 가까운 동해안 항구에 가서 사오자고 조릅니다. 그 많은 꽁치 사다가 다 뭐할 거냐고 하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싱싱한 꽁치 사오면 몇 마리 주겠다고 여기저기 약속까지 했답니다.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6월 5일 새벽에 주문진항에 가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 했더니 선약이 있답니다. 준수는 문화원에 가서 봉사활동 한다고 하고, 광수는 친구들과 놀러갈 거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아라 따라 나서던 녀석들이 제 할 일 따로 정해두고 "엄마, 아빠끼리만 다녀오시라"고 합니다.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과정이겠지만 조금은 서운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내는 새벽부터 일어나 밥 안치고 반찬을 준비했습니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어 가야 싱싱한 생선을 살 수 있다며 일찍 출발하자고 서둘렀습니다. 인기척에 광수가 눈 비비며 일어났습니다. 준수 녀석은 꼼짝도 않고 잠에 떨어져 있습니다.

"광수야, 형아 일어나면 같이 밥 잘 챙겨 먹어."
"엄마, 아빠는 안 먹어?"
"응, 우린 밥 싸 가지고 가."

밥이 다 되자 아내는 도시락을 쌌습니다. 준수 봉사활동 갈 때 입을 옷과 광수 놀러 갈 때 입을 옷을 챙겨 거실에 놓았습니다. 부리나케 머리 감고 드라이로 말립니다. 화장대 앞에 앉아 간단한 화장을 했습니다. 외출할 때면 아내는 늘 바쁩니다.

아내가 바삐 서두른 덕분에 여섯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는 많지 않았습니다. 아침 햇살의 포근함과 신록의 싱그러움을 담뿍 느끼며 달렸습니다.


이기원
여덟시 조금 넘어 주문진항에 도착했습니다. 차 세울 공간이 마땅치 않아 이리저리 기웃대다 겨우 한 군데 찾아 가까스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항구로 들어갔습니다. 배가 벌써 들어왔는지 꽁치와 오징어가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꽁치 싸게 드려요."
"싱싱한 오징어도 있어요,"


이기원
이기원
고깃배 들어온 뒤의 항구에는 역동적인 삶의 힘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막 잡아 온 생선들의 힘찬 몸짓과, 생선 손질하랴 손님 맞으랴 바삐 움직이는 아주머니들의 바쁜 손놀림이 잠시도 쉴 겨를이 없습니다.

그 활기찬 모습과 역동적 힘에 취해 서 있는 사이에 아내는 물 좋고 값이 싼 꽁치와 오징어를 사려고 여기저기 발품·말품 팔며 돌아다녔습니다. 만 원에 스무 마리를 준다던 오징어를 서른 마리 샀습니다. 물론 값은 똑같이 1만 원입니다.

이기원
"애기 엄마가 첫 손님이라 특별히 많이 주는 거야."

과연 아내 뒤에 서 있던 아저씨는 만 원에 스무 마리를 샀습니다. 아내가 듣던 대로 꽁치는 만원에 60마리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만 원에 천 원이 더 붙고, 나중에는 만 이천 원까지 불렀습니다.

"저쪽에서는 만 원이던데 여긴 왜 비싸요?"
"꽁치 굵기가 달라요."
"내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데요."

이기원
끈질기게 협상을 하더니 드디어 만 원에 60마리를 사는데 성공했습니다. 여리고 순해 보이는 아내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항구의 활기찬 기운이 아내에게 전염이라도 되었나 싶습니다.

싼값에 싱싱한 생선을 많이 사서 기분이 좋아진 아내를 태우고 아침 먹을 장소를 찾았습니다. 주문진 소돌 해수욕장에 있는 솔밭에 가서 먹기로 했습니다. 아이들과 여름 피서 장소로 몇 번 찾았던 곳입니다.

솔밭에 앉아 싸온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아이들 키우면서 좀처럼 찾기 힘들던 둘만의 아침입니다. 밥 한 덩이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본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 환한 웃음에 취해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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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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