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 직무정지', 법원에 뒤통수 맞은 금융노조

중앙집행위-금발협 갈등 계속... 14일 '봉합' 고비

등록 2005.06.13 16:39수정 2005.06.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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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월 시작된 금융노조 내부 갈등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김기준 위원장에 대한 직무정지 처분을 받아들여 금융노조가 크게 당황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대책회의 모습.

지난 1월 시작된 금융노조 내부 갈등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김기준 위원장에 대한 직무정지 처분을 받아들여 금융노조가 크게 당황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대책회의 모습. ⓒ 금융노조

"이대로 같이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금발협이라고 해봐야 4∼5개 은행(지부) 밖에 더 되나. 회비납부도 거부하고 있는데, 상급단체인 금융노조가 제명조치를 취하든지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한다."(조흥은행지부 소속 간부)

"부정선거 때문에 (김기준 위원장 등 집행부가)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처분신청을 낸 지부 대의원들의 생각이었다. 선거에 이기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아량도 보여줘야 하는데, 노조를 정파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서울은행지부 소속 간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위원장 김기준)이 조직 설립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월 19일 실시된 노조위원장 선거의 '부정' 시비로 촉발된 갈등이 5개월째 지난 지금까지도 봉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8만 은행원을 조합원으로 거느린 대조직이 두 갈래로 쪼개질 판이다.

법원 '김기준 위원장 등 직무정지' 명령

애초 위원장 선거에서의 대립으로 시작된 금융노조 갈등 사태는 지난 3, 4, 5월을 거치면서 조금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지난 1월 22일 개표 과정에서 불거진 우리은행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김기준-양병민 두 후보 진영이 합의안을 도출하고, 양병민 후보측이 개표 결과에 승복하면서 겉으로는 갈등이 봉합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립은 여전했다. 선거에서 양병민 후보를 지지했던 우리·신한·서울·산업·기업·수출입은행 등 13개 지부가 지난 4월 '금융노조발전협의회'(금발협, 회장 마호웅 우리지부위원장)을 구성하면서 갈등은 계속됐다. 금발협은 김기준 위원장의 중앙집행위 인선 등에 반발해 독자적인 교섭권을 요구하는 등 내부의 '안티세력'으로 등장했다.

이 가운데 급기야 지난주에는 법원 판결로 김기준 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는 사태마저 일어났다.


앞서 금융노조 서울은행지부(위원장 이태수)는 지난 3월과 4월 선거무효소송과 함께 '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6월 10일자로 김기준 위원장과 최병휘 수석부위원장, 김문호 사무처장 3인에 대해 직무정지 명령을 내렸다. 법원이 산별노동조합 위원장에 대해 직무정지 명령을 내린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금융노조 내부의 갈등은 또 다시 밖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김기준 위원장을 지지하는 금융노조 지부에서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이제는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다"는 격앙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조흥노조 간부는 "이대로는 같이 갈 수 없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른 간부들도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가처분신청을 낸 서울지부 간부는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신호를 수 차례 (중앙에)보냈지만,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만큼 본안소송(선거무효소송)이 진행될 것"이라며 "이제는 일개 지부에서 감당하기 어려워 금발협과 함께 논의해서 진로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노조-금발협 양쪽 모두 '당황'... 14일 임시대의원대회

금융노조는 김기준 위원장 등의 직무정지 결정에 크게 당황스러워하는 눈치다. 금융노조로서는 뜻하지 않게 법원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셈이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또 법원의 결정이 봉합돼 가던 내부 갈등을 재촉발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10일 성명을 내고 "법원의 결정은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한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금융노조 고위관계자는 "사실 이번 결정은 예상치 못한 것으로 우리도 매우 당황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만큼 이제는 본안소송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안소송을 취하하려면 서울은행지부가 다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취하 결정을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지부대의원 대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직무정지 상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노조 중앙집행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금발협 역시 법원의 직무정지 결정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금발협은 김기준 위원장에 반대해 왔지만, 법원이 직무정지에 이어 선거무효판결까지 내린다면 금융노조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금발협 소속 지부위원장들도 서울은행지부의 소송취하를 적극 설득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단 금융노조는 위원장 직무정지 사태를 해결하는데 온힘을 모으고 있다. 금융노조는 14일 오전 10시 제일은행 대회의실에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조직화합의 건'을 안건으로 상정해 집단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날 대의원대회는 금융노조 중앙집행위와 금발협 소속 대표자들도 모두 참석할 예정이어서 첨예한 설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융노조는 김기준 위원장의 직무정지 명령에 따라 양정주 현 금융노조부위원장을 위원장직무대리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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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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