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친인척 연루 이권싸움 '해결사' 노릇?

[추적] 포항 골프장 위탁경영권 분쟁에서 생긴 '황당한' 일

등록 2005.06.15 16:25수정 2005.06.1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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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 서초동 대법원 본관 전경

서울 서초동 대법원 본관 전경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 현직 부장판사가 자신의 인척이 연루된 위탁경영권 분쟁에 개입해 사실상 '해결사' 역할을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대법원은 아무런 징계를 취하지 않아 '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고 있다.

경북 포항의 골프장인 오션힐스 포항CC의 직원 남아무개(35)씨는 지난 4월 14일 대법원에 한 통의 진정서를 접수했다. 당시 남씨가 진정을 접수한 내용은 A지방법원 이아무개 부장판사의 행태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현직 부장판사가 대법전 들고와 '계약 무효다' 으름장"

이 판사 "어려움 겪어 도와줬을 뿐"

인척의 위탁경영권 다툼에 개입해 물의를 빚은 이아무개 부장판사는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부장판사는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 다 지난 이야기를 왜 들춰내려고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장판사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휴가를 내서 도와주러 간 것일 뿐"이라면서 "그런 것 까지 문제 삼는다면 도대체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느냐"고 따졌다.

이 부장판사는 사실 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더이상 언급하기 싫다, 알아서 해라"면서 "징계를 안 받았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생겼다, 이보다 더 큰 피해가 어디 있느냐"며 전화를 끊었다.
이 부장판사의 언행이 문제가 된 시점은 진정 접수 하루 전날인 같은 달 13일.

남씨와 당시 현장에 있던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골프장 운영회사인 Y사의 대주주인 김아무개씨 매형인 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쯤 김씨의 처와 Y사 전직 간부를 비롯해 건장한 체격의 남성 등 10여명과 함께 골프장으로 들이닥쳤다고 한다.

당시 이 부장판사는 김씨와 골프장 위탁경영권 문제로 다툼이 있던 골프장 전무 박아무개씨의 사무실로 들어가 욕설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당시 이 부장판사는 묵직한 '대법전' 한 권을 들고 왔다.

이 부장판사는 박씨를 향해 김씨와 작성했던 위탁경영계약서를 내보이면서 "이 계약은 무효다"고 외치고는 가지고 온 대법전을 펼치면서 "계약 파기시 (김씨에게) 위약금 50억원 내라고 했다는데 공갈혐의로 너는 무기징역감이다"라고 으름장을 놨다는 것.


당시 이 부장판사는 시종일관 반말을 하면서 '니 목은 니가 졸랐다' '너는 이제 사회에서 끝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또 함께 온 사람들에게 "이 X 말로는 안되겠다, 들어내라"고 '지시'까지 했다는 것이 직원들의 주장이다.

다행히 이 부장판사와 동행한 일행의 만류로 박 전무에 대한 위해는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당시 이 부장판사와 일행의 폭언으로 인해 이들이 사무실에서 물러갈 때까지 사무실은 공포감에 휩싸여야 했다고 한다. 이 부장판사의 일행들은 남씨 등 직원들이 신고하거나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핸드폰을 뺐는 등 물리력도 행사했다고 직원들은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 50일만의 결론 "부적절하지만 징계사유 아니다"

a 대법원이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명의로 보내 A지방법원 이아무개 부장판사에 대한 진정 결과 회신

대법원이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명의로 보내 A지방법원 이아무개 부장판사에 대한 진정 결과 회신 ⓒ 오마이뉴스 이승욱

소동이 끝난 후 남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박 전무를 통해 이 부장판사가 현역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남씨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다음날 진정서를 대법원에 접수했다.

남씨는 최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내가 분쟁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런 언행을 한 사람이 현직 부장판사라는 소리를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면서 "이 부장판사가 강압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를 한 만큼 대법원에서 징계를 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씨의 기대와는 달리 대법원은 진정서 접수 50여일만인 지난 3일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명의의 답변을 통해 '징계 불가' 결론을 내렸다.

답신에서 대법원은 "이 부장판사가 1일 연가를 내고 골프장 사무실로 가서 박씨에게 다소 부적절한 언행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하지만) 더 나아가 직무를 유기하였거나 법관으로서의 직권을 남용하였다고 보기 어려워 징계사유에 해당할 정도의 잘못이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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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승욱

이 부장판사의 진정건을 조사한 인사제3담당관 윤강열 판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정인이 제출한 진정서와 이 부장판사에게 받은 경위서, 녹취록 등을 토대로 진정건을 조사했다"면서 "하지만 소명 자료가 충실하게 있었기 때문에 관련자들을 별도로 소환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윤 판사는 또 "이 부장판사가 욕설을 하고 일부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무기징역감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현직 판사로서 처신이 적절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가를 냈기 때문에 근무지를 이탈한 것이 아니고,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협박 등 범죄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다만 이 부장판사 징계를 하지 않는 대신 부적절한 언행과 관련해 A지방법원장에 통지해 업무감독에 참고토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정인 남씨는 "어떻게 50여일을 끌어놓고도 진정인을 부르거나 연락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을 수 있냐"면서 "피진정인들의 자료만 제출받아 검토하고 징계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자기 식구만 봐주는 꼴 아니냐"고 분통을 떠뜨렸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행태 보여준 꼴" 지적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발언의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상황에서 징계 여부에 대해 판단하고 신중해야 할 필요도 있다"면서 "하지만 분명한 협박이 없었다고 해도 현직 부장판사라는 신분만으로도 상대방에게는 상당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대법원도 판사의 진정사건에 대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행태를 보여서는 안되고 가급적 관련자들을 소환하는 등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징계 대신에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도 승진 대상자인지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고 해당 법관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언행에 걸맞는 징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탁 계약 무효' 논란... 애꿎은 직원들만 해고 수모
오션힐스 포항CC 위탁경영권 다툼 논란이란

포항 최초 골프장인 오션힐스 포항CC 경영권 다툼은 대주주이면서 사실상 소유주인 김씨와 위탁경영 계약서를 작성한 골프장 운영 회사 Y사의 박 전무간 분쟁에서 비롯됐다.

오션힐스 포항CC는 지난 2001년 24홀 규모로 착공된 후 현재 18홀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이 골프장은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오는 8월 준공돼 정식 오픈할 예정이다.

위탁경영권 다툼은 김씨와 박 전무가 지난 1월 6일부터 오는 2007년까지 2년 동안 골프장을 박 전무가 위탁경영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빚어졌다.

이때부터 박 전무가 골프장을 위탁운영해왔지만 지난 5월부터 김씨가 계약서의 결격사유를 지적하면서 '계약 무효'를 주장하고 나와 논란이 되고 있는 것.

현재 박 전무는 김씨가 골프장 위탁경영 계약을 위반했다며 업무방해로 고소를 한 상황이고 반면 김씨는 이에 대응해 박 전무를 업무방해와 공갈·횡령 혐의 등으로 고발한 상태. 따라서 이들의 다툼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위탁경영권 다툼이 벌어지면서 골프장 운영회사 Y사는 김아무개 영업부장·남아무개 과장 등 직원 8명을 해고했다.

해고된 직원들은 지난달 4일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측이 정식 오픈 전 시범라운딩에서 카터비 등을 받아 부당이득을 챙겼다"면서 "골프장 불법 운영 의혹을 제기한 운영부 직원 8명을 부당해고 했다"며 복직을 촉구했다.

당시 회사측은 "불법영업 한 사실이 없다"면서 "골프장 파행 운영과 관련해 책임을 물어 직원들을 해고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Y사는 지난달 4일 해고 직원들이 기자회견을 갖는 당일 해고 무효와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복직된 후에도 해고 직원들은 "회사측이 위탁계약 이후 입사한 우리들과 박 전무와의 관계를 의심해 해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린 그저 회사에 고용된 사람일뿐, 박 전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 "회사가 업무복귀를 약속하고도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자리를 옮기게 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결국 해고된 8명 중 5명의 직원들은 회사측과 합의하에 퇴직했고 현재 김 부장 등 직원 3명이 지방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내놓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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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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