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7천만원'과 할머니의 '2백만원' 가치는?

'노점상 할머니의 돈 '200만원'을 찾습니다' 현수막이 걸린 이유

등록 2005.06.17 09:09수정 2005.06.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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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파트 앞에서 '카풀'하는 후배를 기다린다. 오늘은 좀 늦다. 나는 시계를 본다. 6시 5분이다. 후배 차가 미끄러지듯 내 앞에서 멈춘다. 나는 승용차 문을 열었다. 그런데 후배가 안전띠를 푼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김밥을 사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후배를 제지했다. 내가 사온다고 했다. 나는 승합차 김밥 집을 향해 뛰어갔다.


김밥 아줌마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는 1인분을 주문한다. 나는 처음에 아줌마가 무릎을 꾸부린 자세로 김밥을 만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줌마는 승합차 의자에 앉아서 김밥을 만들고 있었다. 여러 가지 김밥 도구들 때문에 승합차 의자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줌마, 손님 많지요?"
"생각만큼 많지 않아요."

아줌마가 수줍게 웃었다. 아줌마는 능숙한 솜씨로 김밥을 말았다. 이곳 말고도 승합차 김밥은 근방에 여러 곳 있다. 그런데 이곳 김밥이 제일 맛있다. 무엇보다도 이곳 김밥은 내용물이 많다. 밥도 차지다. 어떤 김밥 집은 내용물도 적고 밥도 퍼석퍼석했다. 아줌마가 김밥을 다 만들었나 보다. 도시락이 든 비닐 봉지를 내게 건넨다. 나는 2천원을 주고 김밥을 받았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후배가 김밥도시락을 연다. 김밥에 기름기가 자르르 흐른다. 후배가 김밥 한 개를 들어 보인다. 내용물이 김밥에 꽉 찼다. 후배는 이런 김밥이 맛있다고 했다. 나도 한 개 먹어보았다. 고소한 게 아주 맛있었다. 후배가 김밥을 먹다말고 말한다.

"오피스텔 분양 있잖아요. 그제 당첨자를 발표했잖아요. 프리미엄이 대단하대요.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7천만원을 받고 팔았대요."
"7천만원?"
"억이 넘는 것도 있답니다."

후배는 김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지 물을 거푸 들이켰다. 비단 김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투기에 대한 못마땅함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이번 오피스텔 분양에 4만 5천명이 몰렸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며칠동안 밤을 지샌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계약금만 1조5천억원이 몰렸다는 신문보도도 있었다.


a 노점상 할머니의 돈 200만원을 훔쳐간 범인을 찾는 현수막

노점상 할머니의 돈 200만원을 훔쳐간 범인을 찾는 현수막 ⓒ 박희우

나는 현수막 하나를 떠올린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걸려 있다. 현수막에는 ‘철저한 문단속으로 도난사건을 예방합시다’란 글씨가 적혀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흔한 현수막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연을 알고 나면 그렇지를 않다.

현수막이 걸린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에 근방에 사는 할머니가 돈을 분실했다. 할머니가 어렵게 번 돈이었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채소를 팔았다. 깻잎도 팔고, 고추도 팔고, 가지도 팔았다. 그렇게 한푼 두푼 모은 돈이 2백만원이 되었다.


2백만원 속에는 10원짜리 동전도 들어있었다. 물에 젖어 꾀죄죄한 천원짜리 지폐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돈을 도둑맞았으니 할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래서 내걸린 현수막이었다. 범인은 40대 초반의 여자라는데 아직 잡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 할머니와 대비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한 자리에서 7천만원을 벌었다. 아니 몇 억을 번 사람도 있다. 그들은 노력하나 하지 않고 그만한 돈을 벌었다. 나는 공무원생활 17년째다. 퇴직금은 8천만원 남짓 될 것이다. 내 평생 퇴직금과 맞먹는 돈을 그들은 하루 만에 벌었다. 할머니는 뙤약볕 밑에서 힘들게 장사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이 2백만원이었다. 그것마저 지금은 도둑맞고 없다.

후배가 김밥 몇 개를 남긴다. 더 못 먹겠다는 것이다.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나는 종이컵에 커피를 탄다. 후배에게 한잔을 권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일을 시작하다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래도 열심히 살자. 사노라면 때로는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바쁘게 등기신청서를 넘긴다. 후배의 등기신청서 넘기는 소리가 사각사각 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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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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