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가 너무해"

연착으로 환승기차를 놓쳐 버린 사연

등록 2005.06.20 00:54수정 2005.06.2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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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업무상 간혹 서울로 출장을 가는 나는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시간이 단축된다는 이유 때문에 KTX를 이용한다(기차를 탈 때는 집과 가까운 왜관역을 이용하기 때문에 서울에 가려면 동대구역에서 KTX로 갈아탄다).


물론 예전에 오전 8시경에 있었던 새마을호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요금은 부담스러웠지만 기적의 기차로까지 불리우는 KTX를 탄다는 설렘이 컸었다.

하지만 타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기차여행의 묘미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창가 쪽에 앉는다는 것이 KTX에서는 망설여진다.

a 기차를 놓쳐버리고 멍하니 앉아있는 시각, 맞은 편에서는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가 도착해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기차를 놓쳐버리고 멍하니 앉아있는 시각, 맞은 편에서는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가 도착해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 권미강

좌석과 좌석 사이가 좁다 보니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옆에 앉은 사람이 일어서야 한다.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는 그냥 살짝 다리만 옆으로 비켜주면 되지만 KTX는 꼭 일어서야 한다. 만약 옆 사람이 잠을 잘 경우는 깨워야 할지 상당히 난감하다.

천장에 달린 TV모니터는 화면만 보일 뿐 도무지 들을 수가 없다. 새마을호의 경우 이어폰을 사용할 수 있어서 기차에서 구입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다. 특실은 무상 제공해준다.

그런데 서비스가 더 좋아야 할 KTX는 들을 수 없다. 예전에 승무원에게 물으니 아직까지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준비가 안됐다는데 그럼 뭐 하러 모니터를 설치해놨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러저러한 불만이 가중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KTX를 이용하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이런 불만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드디어 지난 금요일 'KTX'로 인해 분통 터지는 일을 겪게 됐다. 그날도 서울 출장이 있었던 나는 왜관역에서 아침 8시 7분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8시 49분 서울행 KTX로 갈아 타 10시20분 서울에 도착해 바쁜 일정을 끝내고 다시 기차를 탔다.


볼 일이 더 있었지만 서울에서 밤 8시 30분 기차를 탔는데 이유는 동대구역에서 왜관으로 오는 기차를 빠르게 환승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차였기 때문이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예매를 했음에도 좌석이 없었고 자유석이라는 표를 주었다. 자유석은 기차 맨 마지막 칸인데 아무 데나 앉으면 된다고 했다. 서둘러 기차에 올랐는데도 자유석의 순방향이 거의 찼다. 할 수 없이 통로쪽 끝에서 두 번째에 앉았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해서야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는 걸 알았다. 자유석 표를 들고 늦게 탄 사람들은 좌석이 없으면 입석처럼 서서 가야 한단다.

하루종일 지친 몸이 노곤해졌다. 눈을 감으려고 하니 뒷좌석에 탄 남자 승객이 계속 통화를 하는 바람에 신경이 쓰여 눈을 붙일 수 없었다. 피곤했지만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지 않고 그냥 당연히 제 시각에 도착했겠지 생각하고는 여느 때처럼 환승 승강장의 번호를 전광판에서 찾아보고는 나가는 입구로 향했다.

자유석이 맨 끝이라서 그런지 입구까지는 상당히 멀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시간을 보니 10시 26분이었다. 환승해서 왜관으로 떠나는 기차가 10시 27분이니 1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아차' 싶어 그때부터 뛰기 시작했다. 앞서 가는 사람을 밀치고 기진맥진 내려가니 기차가 출발을 하고 있었다. 앞서 간 아저씨 한 분이 올라탔다. 나도 뒤따라 올라타려니 승무원이 안 된다며 제지를 했다.

a 기차를 놓치고 앉아있는 기분은 늦은 시간 텅빈 역 내 풍경만큼이나 을씨년스럽고 허탈했다.

기차를 놓치고 앉아있는 기분은 늦은 시간 텅빈 역 내 풍경만큼이나 을씨년스럽고 허탈했다. ⓒ 권미강

이거 왜관 가는 기차 아니냐며 역내에 있는 다른 승무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기차는 이미 떠나버렸다. 정말 허탈했다. 그런데 내 뒤를 이어 아주머니 한 분도 기차를 놓쳤다며 속상해 했다.

그 분도 나처럼 18호 자유석을 탄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시간을 보니 기차가 연착해서 보따리를 들고 정신없이 뛰어왔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기차가 연착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3분 정도 연착했으니 줄 서서 내리고 입구까지 걸어서 다시 환승할 기차를 타려면 빠듯한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양 손에 짐을 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연착이 됐으면 환승할 승객들을 위해 KTX 내에서 안내 방송을 하든지 아니면 승객들이 제대로 환승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승무원이 양쪽에서 대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만약 연세 지긋한 어른들이나 장애인들이 환승해야 할 경우 어떨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그날 역사무실로 가서 항의를 했지만 결국 '미안하지만 다음 차를 이용하라'는 말만 들었다. 아주머니와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30분 이상을 기다려 다음 기차를 탔다.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쯤 됐다.

나는 그날 KTX의 연착으로 귀중한 1시간을 잃어버렸고 남은 거라곤 물먹은 솜뭉치 같은 피곤한 몸과 시간 절약을 위해 또 다시 KTX를 타야 한다는 짜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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