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과 2005년, 그 무서운 반복
같은 사단에서 사병 8명 '개죽음'

[발굴] 당시 신문엔 한 줄 안나... 요일-동기도 같아

등록 2005.06.22 10:14수정 2005.07.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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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사단 전방 GP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이 안치되어 있는 분당수도병원 영안실 앞을 사병들이 지키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렇게 영안실만 '관계자외 출입금지' 상태이지만, 85년 28사에서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은 사건 자체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전면 출입금지' 상태였다. ⓒ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수류탄 투척과 총기 난사로 8명의 사상자를 낸 28사단에서 20년 전에도 흡사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으나, 철저하게 은폐되어 왔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당시 사망자는 똑같이 8명, 사고 일시도 일요일 새벽이다. 또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불만을 품고 내무반에서 잠을 자고 있던 동료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범행 동기나 수법도 이번 사건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년 전의 사고는 GP가 아닌 사단 화학지원대에서 일어났다는 것과 당시에는 언론에 단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는 점 정도다.

이같은 사실을 제보해온 이는 당시 28사단 의무대에 복무하면서 직접 사체를 수습했다는 이계승(44. 83년 1월 입대~85년 7월 25일 제대)씨였다.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당초 이씨의 전화제보를 받고서는 극적인 일치 때문에 오히려 쉽게 믿기 어려웠다. 이에 21일 밤 건국대 근방의 한 카페에서 전화제보자를 만났다. 현재 분당의 한 병원 방사선과에 근무하고 있다는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몸서리치면서 20년전 당시의 생생한 기억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20년간 묻어만 두었던 끔찍한 기억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내무실 바닥은 붉은 피로 젖어 있었다. 20년이 지났지만 당시 진동하던 피 냄새를 잊을 수 없다. 몇몇 병사들은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기도 했다."

사고가 일어난 날은 1985년 2월 24일 일요일 새벽.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던 28사단 화학지원대 내무실에서 박모 이병이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나 당시 이처럼 충격적인 사고는 언론 등에 공개되지 않았고, 3일만에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르고 정리됐다.

[제보받습니다] 은폐된 군대 내 사망사건들

당시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봉암리 28사단 의무대에 있던 이씨가 사고 처리를 위해 출동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건 2월 24일 오전 6시께. 이씨가 처음에 상부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총기 사고가 아니었다. 병사 다수가 식중독에 걸렸으니 구급차를 보내달라는 전화였다. 출동하는 사이에 사고 내용은 "식중독이 아니라 연탄가스 중독"이라고 변경됐다.

그렇게 현장에 출동한 군의관 2명과 이씨 등 의무병 5명이 목격한 건 처참한 주검이었다. 이씨는 "당시 헌병대와 보안대 등에서 많은 사람이 나왔지만 현장은 채 정오가 되기 전에 정리됐다"며 "우리 의무병들이 직접 시신을 수습하고 그들에게 깨끗한 군복을 갈아 입혔다"고 말했다.

이씨는 "연락을 받고 찾아온 유가족들조차 희생자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처참했다"며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이 빠진 채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병사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희생된 8명의 시신은 4명씩 각각 양주병원(현 국군양주병원)과 28사단 의무대로 옮겨졌다. 그리고 명확한 진상조사 없이 사흘만에 장례절차가 마무리 됐다고 이씨는 말했다.

순식간에 현장 정리... 범인 박 이병은 군사법원 마지막 사형수

이씨가 2시간여동안 기자와 만나 쏟아낸 충격적인 증언들은 22일 <오마이뉴스>가 군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전부 사실이었다. YTN도 22일 오전에 당시 사건의 또다른 목격자인 부대원의 증언을 들어 이 사건을 기사화했다.

이와 관련 군의 한 관계자는 "20년전 28사단 화학지원대에서 사고가 발생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선임병 3명에게 폭행 및 얼차려를 받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탄약고에 있는 실탄을 훔쳐서 취침중인 동료들에게 무차별 난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박 이병은 당시 도주했다가 자수했고, 군사재판에 회부된 뒤 사형이 집행됐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한 관계자는 "박 이병의 사형 집행은 지난 86년에 이뤄졌다"면서 "군사법정에서는 그 뒤에도 사형을 선고받은 사병들이 있지만, 그 이후 군사법원에서의 사형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이병이 군 내 마지막 사형수인 셈이다.

"당시 우리는 세상에 진실을 말하면 안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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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기도 연천군 모부대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사망한 병사들의 시신을 태운 구급차가 국군덕정병원 영안실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정원

한편 증언자 이계승씨는 "당시 우리 28사단 병사들은 당연히 세상에 진실을 말하면 안되는 것으로 알았다"며 "사고 직후 3개월 동안 외출 외박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GP내 사고를 보면서 20년 전의 참상이 떠올랐다"며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됐는지 아니면 그냥 사건이 묻히고 말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유가족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이번 사고와 더불어 20년 전 28사단에서 있었던 사고도 명확하게 진상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젠 국가가 나서서 당시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신이 여전히 기억하는 피 냄새를 지워줬으면 하는 게 이씨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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